백과사전 상세 본문
간행/발행 | 매일신보(1943년 08월 01일) |
---|
목차
접기기사 원문
금일 감격의 징병제 실시
병역은 최고의 영예
순국일념, 군문(軍門)으로 가자
오늘 8월 1일 감격의 조선 징병제는 드디어 실시되었다. 금일부터 7일까지 1주일간을 ‘징병제 실시 감사결의 선양 운동주간’으로 하여 총력연맹 주최로 1일 조선신궁대 전(前)에서 성대히 거행하는 징병제 실시 봉고(奉告)각주1) 와 필승 기원제를 위시하여 전 조선 방방곡곡에는 이 제도의 실시를 기념하고 반도 민중의 결의를 선양하는 행사가 다채롭게 전개한다.
손꼽아 기다리던 그날이 오고야 만 것이다. 보무도 당당히 민영(民營)으로 들어가는 자기의 자태를 눈앞에 그려보며 열광하는 청년들의 기세를 보라. 또한 그 어버이들의 기뻐하는 얼굴을 보라. 반도 2500만은 이렇게 오늘이 오기를 대망(待望)하였던 것이다. 조선인은 벌써 30년 전 합방의 그날부터 훌륭한 대일본제국의 국민이었다. 그러나 조선인의 가슴 한 구석에는 어딘가 명실공히 떳떳한 대일본 제국의 국민이라고 □보할 수 없는 □□이 있었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다만 조선에 징병제의 실시가 없었기 때문이다. 오늘 그 □□은 일거에 개어버렸다.
명실공히 떳떳한 국민으로 □보할 수 있는 이 기쁨은 조선인만이 알뜰히 아는 기쁨이다. 이 기쁨은 지극히 순수하고 거룩하다. 이렇게 대망하던 징병제가 오늘에 와서 실시를 보게 된 이유를 들자면 작년 5월 11일 이 제도 실시가 결정되었을 때 발표한 전 총독 남(南) 대장의 담화를 상기하면 족하다. 남 전 총독은 그 이유로서 1. 반도 민중의 내선일체의 실천을 묶은 것 2. 지원병 제도의 □□이 양호한 것 3. 반도 동포의 열망에 응한 것 등을 들었다. 실로 지나사변각주2) 이래 반도민중의 황민의 자질을 갖추자는 노력과 국가에 향한 적성(赤誠)각주3) 은 굉장하다. 반도 민중의 황국적 자질을 갖추자는 노력은 신사참배자 수의 격증, 국어□득운동의 전개 등 눈에 띄는 현상만 보아도 미루어 생각할 수 있다. 이런 피상적 현상뿐만 아니라 사변 이래 민중의 황민적 자각, 더욱이 지식층의 □□은 실로 놀랄 만하다. 반도 민중의 호국 적성도 또한 자타가 이를 인정하는 바와 같다. (이하 내용 계속)
해설
1943년 해군에도 지원병제를 도입한 데 이어 일제는 1943년 3월 징병제 실시에 관한 법령을 공포했다(시행은 8월부터였고 실제 징집은 이듬해부터였다). 이로 인해 일제가 패망할 때까지 조선 청년 20만 명 정도가 남의 침략 전장으로 끌려가 2만 2000여 명이 전사했다. 이와 관련해 이름을 대면 알 만한 친일 지식인 · 사회 지도층 인사들은 강연회, 언론 기고 등을 통해 출정을 독려하는 충성 경쟁을 벌였다. 이들의 논리는 “제국 신민이 될 기회”라는 막무가내 형에서 “독립을 위해 군사력을 키울 수 있는 기회”라는 궤변까지 다양했다. 그러나 힘 있는 자들은 자기 자식들은 회피시켜 대다수 ‘지원병’은 농촌 청년들이었다. 이 때문에 일본군내에서 조선 출신들에게 초급 일본어 교육을 시키는 진풍경이 벌어졌는가 하면 탈영하는 조선인들도 속출했다.
일제는 이것만으로도 부족했는지 ‘학도병 지원제’를 병행해 약 4500명의 전문학교 학생, 대학생을 총알받이로 동원했다.
본 콘텐츠를 무단으로 이용하는 경우 저작권법에 따라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위 내용에 대한 저작권 및 법적 책임은 자료제공처 또는 저자에게 있으며, Kakao의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글
출처
신문 기사를 통해 우리 근대사의 주요 사건을 더듬어 보았으며, 우리 근현대사가 오늘날 살아 숨 쉬는 사건으로 되살아나도록 구성, 편집, 해설을 하였다. 최초의 근대 신..펼쳐보기
전체목차
백과사전 본문 인쇄하기 레이어
[Daum백과] 징병제 실시 – 1면으로 보는 한국 근현대사, 김성희, 서해문집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저자 또는 제공처에 있으며, 이를 무단으로 이용하는 경우 저작권법에 따라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