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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북유럽 신화
여행

오줌 강을 건너 거인을 처치한 토르

꾀보이면서도 연일 사고를 일으키는 로키의 이야기는 도통 끝날 줄을 모른다. 로키는 토르가 묠니르도 없이 맨몸으로 거인들의 소굴에 들어가게 한 적도 있었다. 로키의 꾀임에 빠졌던 토르가 어떻게 위험에서 벗어났는지 알아보자.

로키는 매로 변신해 하늘을 날고 있었다. 평온하기만 한 아스가르드의 생활에 좀이 쑤셨던 나머지 재미있는 일을 찾아보고자 프리그의 깃옷을 빌려 입었던 것이다. 목적지도 없이 한참을 날아간 로키는 어느새 와본 적이 없는 요툰헤임 깊은 곳까지 들어가 있었다. 로키는 그곳에서 거인 게이로드(Geirröd)의 크고 화려한 집을 발견했다. 호기심이 생긴 로키는 지붕에 올라앉아 집 안을 훔쳐보기 시작했다. 게이로드는 창을 통해 지붕에 매 한 마리가 앉아 있다는 걸 발견했다. 그는 매의 덩치가 크고 깃털에 윤기가 흐르는 것을 보고 하인을 불러 산 채로 잡아오라고 시켰다. 잡아서 사냥용 매로 훈련시킬 요량이었다.

게이로드의 하인들이 자신을 잡으려고 지붕 위로 올라오는 걸 본 로키는 슬슬 장난기가 발동했다. 로키는 못 본 척 가만히 있다가 하인들이 손을 뻗으려고 하면 푸드덕 날갯짓을 해 조금 떨어진 곳으로 물러났다. 로키는 당황해 하는 하인들의 모습이 그렇게 재미있을 수가 없어서 같은 짓을 몇 번이고 반복했다. 하지만 로키는 조금씩 지붕 끝 쪽으로 몰려가고 있었다. 잠시 후 로키는 정말로 공중으로 날아가지 않으면 더 이상 하인들을 피할 수 없는 곳까지 몰렸다.

‘쳇 재미있지만 계속 이렇게 노는 건 무리로군.’

로키는 날개를 활짝 펴고 날아오르려고 했다. 하지만 이게 웬일인가. 발이 공중으로 떠오르지 않았다. 매의 날카로운 발톱이 지붕 틈에 끼어버린 탓이다. 하인들은 그 때를 놓치지 않고 로키를 붙잡았다. 그들은 매가 날개를 펴지 못하도록 끈으로 몸통을 칭칭 감아 게이로드에게 가져갔다.

“어라, 이놈 보게. 이건 진짜 매가 아니잖아. 네놈은 누구고 뭐하는 놈이지?”

게이로드는 하인들이 가져온 매를 보자마자 누군가 변신한 것임을 단박에 알아챘다. 매의 눈에서 나는 이상한 광채를 발견한 것이다. 그는 매의 정체를 알아내려 계속 다그쳤지만 로키는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가지도, 자신의 정체를 말하지도 않았다.

“흥, 입을 열지 않겠다는 수작인 것 같은데, 어디 네가 얼마나 버티는지 한번 보자.”

게이로드는 찍소리 내지 않는 매를 상자 속에 집어넣고 뚜껑을 닫아버렸다. 그리고 석 달 동안 물 한 모금 주지 않았다. 석 달이 지나고 나서 게이로드는 굶주림에 축 늘어진 새를 상자에서 꺼냈다.

“자, 아직도 네가 누군지 말하지 않을 텐가. 상자 속에서 굶어죽는 것보단 입을 여는 게 나을 것 같은데.”

배가 등에 붙어버린 로키는 어쩔 수 없이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자신이 거인 라우페이의 아들인 로키이며, 아스가르드에서 왔다는 것도 말했다.

“아하, 네가 그 유명한 로키로군. 거인이면서도 오딘이나 토르 같은 신들에게 찰싹 붙어서 다닌다는 녀석 말이지.”

게이로드는 잠시 무엇인가 골똘히 생각하더니, 이내 로키에게 제안을 하나 하겠다고 말했다.

“석 달이나 쫄쫄 굶었으니 배가 많이 고프겠군, 로키. 분명히 음식이 엄청나게 먹고 싶을 거야, 그렇지? 네가 한 가지만 맹세하면 이 성에 있는 음식을 마음껏 먹게 해주겠어.”

“맹세요? 무엇을요?”

“토르를 이 성에 데려오겠다고 맹세해라. 다만 그가 올 때 묠니르를 가져와서는 안 돼. 힘이 세어지게 하는 허리띠를 둘러서도 안 되고, 쇠 장갑을 끼어서도 안 된다. 맨몸으로 그를 이곳으로 오게 만드는 거야. 어때 할 수 있겠지?”

게이로드의 말은 속셈이 너무 뻔히 들여다보였다. 빈손으로 터덜터덜 들어온 토르를 손쉽게 해치우겠다는 게 아닌가. 게이로드는 흐룽니르를 포함해 토르의 망치에 스러져 간 수많은 거인의 복수를 하려는 것이었다. 로키는 순간 고민했다. 토르를 위험에 빠트리는 게 내키진 않았지만 게이로드의 말을 듣지 않고 이 자리에서 벗어날 방도는 없을 것 같았다. 무엇보다도 로키는 지금 너무너무 배가 고팠다. 게이로드가 지금 당장 풀어준다고 해도 아스가르드로 돌아갈 힘이 없을 지경이었다.

“알았어요. 그렇게 하겠어요. 토르가 자신의 무기를 들지 않은 채 당신의 집으로 오도록 하겠다고 맹세합니다. 그러니까 이제 저를 좀 놓아주세요, 제발.”

게이로드는 만족한 듯 웃으며 로키를 풀어주고 음식을 대접했다. 로키는 한참 동안 걸신들린 듯이 배를 채웠다. 그런 뒤엔 잠시 게이로드를 노려보더니 아무 말 없이 아스가르드로 날아가버렸다. 아스가르드로 돌아간 로키는 온갖 술수를 써서 토르를 꾀어냈다. 평소에 로키와 종종 다른 세상 여행을 다녔던 토르는 이번에도 별 의심 없이 로키를 따라나섰다. 진짜 신기한 건 토르가 정말로 그의 분신과도 같은 묠니르와 힘의 허리띠, 쇠 장갑을 몽땅 놓아두고 길을 나섰다는 사실이다.

로키가 대체 무엇이라고 토르에게 속살거렸는지 너무나 궁금할 것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이에 대해 전하는 문헌이 없기 때문에 우리로선 그 내용에 대해 전혀 알 도리가 없다. 각자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수밖에 없는데, 여기선 로키가 ‘아주 인품이 훌륭한 거인이 있는데 너에게 소개시켜주겠다. 그런데 그런 자리에 무기를 가져가면 분위기가 나지 않으니, 빈손으로 가서 우리의 호의를 보여주도록 하자’는 정도로 토르를 설득했다고 생각하자.

어쨌든 길을 떠난 토르와 로키는 중간에 그리드르(Gridr)라는 거인 여인의 집에서 하룻밤 머물렀다. 그녀는 오딘과의 사이에서 힘이 아주 세고 말수가 적은 비다르(Vidar)각주1) 라는 아들을 낳은 적이 있다. 토르는 오딘의 아들이니 그리드르와 토르는 양어머니와 양아들 관계라고 할 수 있다. 이 때문인지 그리드르는 토르에게 아주 호의적이었다. 그리드르는 토르가 맨몸으로 게이로드를 찾아간다는 말을 듣고 펄쩍 뛰었다.

“아니, 그게 무슨 말씀이오. 게이로드가 어떤 거인인지 정말 하나로 모르는구려.”

그녀는 토르가 마주칠 거인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해줬다.

“그는 힘도 세지만 무엇보다도 거인 중에서도 가장 영악하기로 이름이 높다오. 특히 흐룽니르가 죽은 후로 당신에게 이를 갈고 있어요. 아무 무기도 없이 그를 만나러 가는 건 정말 위험해요. 암 그렇고말고. 아무래도 묠니르만큼은 못할 테지만 이거라도 가져가는 게 좋을 것 같소.”

18세기 필사본

농기구를 상징하는 쇠망치 묠니르는 토르의 힘 그 자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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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드르는 토르에게 자신이 갖고 있던 힘의 허리띠와 쇠 장갑을 빌려줬다. 그리고 그리다르볼(Griðarvolr)이라고 하는 무기로 쓸 수 있을 만한 튼튼한 지팡이도 함께 내주었다. 토르는 뜻밖의 충고를 해준 그리드르에게 감사했다. 게이로드의 속셈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지만 무슨 말을 할 입장이 못 되는 로키는 그저 눈만 끔뻑일 따름이었다.

다음 날 아침, 토르와 로키는 다시 게이로드의 집을 향해 길을 나섰다. 한참을 걸은 그들 앞에 비메르(Vimer)라고 하는, 세상에서 가장 넓은 강이 나타났다. 토르는 힘의 허리띠를 조이고, 손에 쥔 지팡이로 몸을 버텨가며 한발 한발 물살을 헤쳐나갔다. 로키는 혹시라도 물에 쓸려갈까 봐 토르의 허리띠를 붙잡고 고목나무에 달린 매미마냥 그에게 찰싹 달라붙어 있었다.

둘이 강의 한가운데쯤을 지났을 때, 갑자기 물이 불어나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물이 어깨 높이까지 차오르자 토르는 원인을 알아내기 위해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물의 근원지는 바로 게이로드의 딸 그얄프(Gjalp)였다. 그녀가 강의 상류에서 강둑 양편에 다리 하나씩을 올리고 서서 줄기차게 오줌을 누고 있었던 것이다. 토르는 폭포수같이 쏟아지는 오줌 줄기에 기가 찼지만, 이내 커다란 돌을 하나 집어들고 오줌이 나오는 곳으로 냅다 던졌다.

“물을 잡으려면 수원지를 막는 게 최고지.”

토르가 던진 돌은 정통으로 그얄프를 맞췄고 오줌 줄기도 멈췄다. 하지만 이미 물이 너무 불어난지라 토르는 로키를 몸에 매단 채 강 한가운데서 허우적거릴 수밖에 없었다. 까딱하면 그대로 익사할 찰나, 토르의 손에 마가목 가지가 잡혔다. 그는 나뭇가지에 의지해 겨우 물에서 몸을 빼낼 수 있었다. 마가목이 ‘토르를 구한 나무’라고도 불리게 된 건 이때부터다. 홀딱 젖은 토르와 로키는 비메르 강을 벗어나 한참을 더 간 뒤에야 게이로드의 집에 도착했다. 게이로드는 둘을 접대한답시고 손님방으로 안내했다. 하지만 그곳은 의자가 하나밖에 없는 한낱 헛간일 뿐이었다.

대놓고 하는 푸대접에 토르는 슬슬 짜증이 났다. 하지만 게이로드가 직접적으로 적의를 드러낸 것은 아니었다. 게다가 토르는 강을 건너느라 무척 피곤했다. 그는 일단 좀 쉬려고 의자에 앉았다. 갑자기 토르가 앉은 의자가 천정을 향해 치솟았다. 게이로드의 두 딸인 그얄프와 그라이프(Greip)가 의자 밑에 숨어 있다가 토르를 천장에 부딪쳐 죽게 하려고 의자를 들고 벌떡 일어선 것이었다. 토르는 그리드르가 준 지팡이를 천장에 대고 버텼다. 그러다 토르가 팔에 힘을 강하게 주자 도리어 그얄프와 그라이프가 그의 힘을 버티지 못했다.

우지끈 소리와 함께 의자가 도로 땅으로 떨어졌고, 토르는 자리에서 일어나 의자 밑을 살폈다. 게이로드의 두 딸은 의자에 깔려 척추가 부러진 채 죽어 있었다. 상대의 능력을 알아보지 못하고 섣불리 덤빈 자의 비참한 말로였다. 그때, 게이로드가 보낸 하인이 들어와 주인이 기다리고 있다는 말을 전했다. 게이로드는 홀에 커다란 불을 피워두고 그 곁에 서서 토르와 로키를 기다리고 있었다. 토르는 홀로 들어가 게이로드의 반대편에 섰다.

게이로드는 느닷없이 부젓가락으로 불 속에서 시뻘겋게 달아오른 쇳덩이를 꺼내 냅다 토르를 향해 던졌다. 게이로드는 맨몸으로 온 토르가 그걸 받아낼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겠지만, 천만다행으로 토르는 그리드르가 준 쇠 장갑을 끼고 있었다. 토르는 쇳덩어리를 공중에서 붙잡아 게이로드에게로 되던졌다. 게이로드는 혼비백산해 쇠기둥 뒤로 숨었지만 힘의 허리띠를 조여 맨 토르의 힘은 너무나 셌다. 기둥을 박살 낸 쇳덩어리는 그대로 게이로드의 몸을 관통하더니, 벽까지 뚫고 나간 뒤에야 땅에 떨어졌다. 토르는 이렇게 게이로드를 처치하고 위험에서 벗어났다.

이 이야기는 로키와 토르, 거인이 얽혀 있는 북유럽 신화의 일상적인 모험을 그리고 있다. 하지만 그얄프가 오줌으로 세상에서 가장 큰 강을 넘치기 직전까지 몰고 가는 대목은 상당히 흥미로운 부분이다. 여기에 대해서만 좀 더 자세히 알아보도록 하자.

거인의 몸으로 세상이 창조되었다는 것은 전형적인 거인 설화의 이야깃거리 중 하나다. 태초거인 미미르가 죽어서 어떻게 세상이 되었는지, 또 거인화생설이라고 하는 이런 종류의 이야기가 북유럽 외의 다른 지역에서는 어떻게 나타났는지 ‘자연이 된 거인’에서 이미 살펴봤다.

그얄프가 한 것처럼 거인이 눈물이나 똥, 오줌 같은 배설물로 산천을 이루거나 세상을 변화시킨다는 이야기는 이런 거인화생설화의 변형이라고 볼 수 있다. 거인의 초인간성, 신성성을 희화화하면서 거대한 몸과 강력한 힘에 수반되는 그들의 능력을 인정하고자 할 때 거인의 배설물이 부각되는 것이다.

우리나라에도 거인의 배설물, 특히 오줌과 관련된 이야기가 몇 개 있는데, 신화는 아니고 민담이나 전설에 가까운 것이다.각주2) 이들 이야기는 대부분 ‘누군가가 꿈을 꾸었는데, 꿈속에서 높은 곳에 올라가 소변을 보았더니 그 물이 온 나라에 가득 찼더라’라는 식으로 구성된다. 이를 ‘선류몽설화(旋流夢說話)’라고 한다. 선류몽은 ‘오줌을 누는 꿈’이라는 뜻이다.

이 중 사람들이 많이 알고 있는 게 신라의 장수 김유신(金庾信)의 여동생이 김춘추(金春秋)와 혼인하게 된 이야기일 것이다. 김춘추는 후에 삼국을 통일한 태종무열왕(太宗武烈王)이 되는 인물이다. 《삼국유사(三國遺事)》 권1, 〈태종춘추공조(太宗春秋公條)〉에는 이렇게 전한다.

김유신에게 보희(寶姫)와 문희(文姬)라는 두 누이동생이 있었다. 하루는 언니인 보희가 서산에 올라 오줌을 누었는데, 양이 워낙 많아 신라 금성의 온 장안이 오줌에 잠겨버리는 꿈을 꾸었다. 이 꿈은 원래 왕후가 될 꿈이었는데, 보희는 이를 대수롭지 않게 여겨 다음 날 아침, 동생 문희에게 꿈의 내용을 말해줬다. 문희는 이야기를 듣더니 자기가 그 꿈을 사겠다고 했다. 보희는 이를 허락했고 문희는 비단 치마 한 벌을 주고 꿈을 사들였다.

얼마 후, 김유신은 김춘추와 같이 정월 오기일(午忌日)에 자기 집 앞에서 공놀이인 축국(蹴鞠)을 하게 되었다. 김유신은 놀이 도중 일부러 김춘추의 옷을 밟아 옷끈을 떨어뜨렸다. 그러고는 김춘추에게 자기 집에 들어가 옷끈을 다시 달자고 말했다. 김유신은 먼저 보희에게 옷끈을 꿰매라고 했지만 보희는 이를 거절했다. 김유신이 다시 문희에게 부탁하니 문희는 그 뜻을 알고 말없이 옷끈을 꿰맸다. 그 뒤부터 김춘추는 문희를 마음에 두고 김유신의 집에 오가게 되었다.

결국 문희는 김춘추의 아이를 가지게 되었는데, 김유신은 부정하게 임신한 문희를 꾸짖었다. 그는 선덕여왕이 행차하는 때에 맞추어 마당에 장작더미를 쌓고 불을 질러 문희를 태워 죽이려고 했다. 선덕여왕은 이를 보고 문희가 애를 갖게 한 자가 누구인지 신하들을 다그쳤는데, 김춘추의 안색이 돌변하는 걸 보고 그가 아이의 아버지라는 것을 알았다. 선덕여왕은 문희를 구하고 김춘추와 혼인하도록 했으며, 문희는 후에 신라 제29대 태종무열왕의 비인 문명왕후(文明王后)가 된다. 왕후가 될 꿈을 치마 한 벌에 팔았던 보희는 이를 한탄하다가 나중에 태종무열왕의 후궁이 되었다.

‘문희가 꿈을 샀다’는 뜻의 문희매몽설화(文姫買夢說話)라고도 불리는 이 이야기에서 오줌으로 홍수를 일으키는 꿈은 김춘추에게 신성성을 부여하는 역할을 한다. 김춘추의 부인이 꾼(또는 사들인) 꿈은 김춘추 자신이 꾼 것과 마찬가지다. 문희매몽설화를 통해 사람들은 무의식적으로 김춘추에게 세상을 창조하거나 지형이나 자연을 변화시킬 수 있는 거인의 능력과 속성이 있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설화를 통해 김춘추에게 거인의 능력이 부여된 건 그가 비정상적인 상황에서 왕위에 올랐기 때문이다. 선덕여왕을 마지막으로 신라에선 부모가 모두 왕족인 성골의 대가 끊겼고, 김춘추는 김유신 등의 강력한 지지에 힘입어 부모 중 한쪽만 왕족인 진골 출신 중 처음으로 왕위에 올랐다. 즉, 문희매몽설화는 ‘그는 원래 초인적인 능력이 있다’는 식으로 상대적으로 기반이 약했던 왕의 권위를 높여주는 역할을 했다.

그런데 왜 이 설화는 ‘꿈’을 통해 김춘추를 신격화한 것일까? 그냥 김춘추가 오줌을 눠서 지형을 변화시켰다든지, 김춘추가 너무나 힘이 세서 흙을 퍼 나르다가 떨어트린 흙무더기가 산이 되었다는 식으로 말할 순 없었을까? 이에 대한 답은 아마 ‘사람들이 좀 더 쉽게 믿게 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우리나라에는 거인 신화, 거인 설화가 많이 남아 있지 않은데, 신라 때도 마찬가지였다고 한다.

거인에 대한 믿음 자체가 부족한 상황에서 직접적으로 거인을 강조하면 사람들은 그저 황당무계한 이야기로만 받아들일 것이다. 하지만 어떤 일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은 ‘꿈’이라는 형식을 빌리면 자연스럽고 편안하게 누군가를 거인과 동일시할 수 있다. 바꿔 말하자면, 사람들이 거인설화를 더 잘 믿게 하려는 ‘합리적 사고에 따른 현실화의 방향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나타난 것이 ‘거인설화적 속성을 유지한 채 꿈의 외피를 빌린 형태’인 선류몽이라는 것이다.

선류몽 이야기는 이쯤 하고 다시 북유럽 신화로 돌아가자. 이미 말했듯이 토르를 빠져 죽기 직전까지 몰고 갔던 그얄프의 오줌은 희화적으로 표현되긴 했으나 거인의 막강한 힘을 나타낸다. 게이로드도 토르에게 한 방에 골로 가긴 했지만 매로 변한 로키의 본모습을 한눈에 알아채는 것이나 간교한 계략을 쓰는 걸 보면 꽤 대단한 능력의 소유자란 걸 알 수 있다.

그런데 북유럽 신화를 읽다 보면 신들이 거인들을 너무 쉽게 처치한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마법의 도움을 받을 때가 많긴 하지만 아제 신들, 특히 토르는 망치 하나로 수많은 거인을 볏짚마냥 가볍게 쓸어버린다.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수많은 거인 중에는 아제 신보다 뛰어난 능력을 가진 자가 하나도 없는 것일까? 서리 거인, 산악 거인이 도리어 토르나 오딘을 통쾌하게 곯려먹은 일은 한 번도 없었을까? ‘신에 버금가는 거인들, 난쟁이들’에서 이 점에 대해 살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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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 권태효, 《‘선류몽’담의 거인설화적 성격》, 구비문학연구 제2집, 한국구비문학회, 1995.

최순욱 집필자 소개

대학에서 신문방송학을 전공한 뒤 전자신문과 매일경제신문에서 약 6년 간 IT 분야 전문 기자로 활동했다. 저서로는 《인터넷에 관한 몇 가지 진실과 오해》 《훤히 보이는 신재생에너지》(공저) 등이..펼쳐보기

출처

북유럽 신화 여행
북유럽 신화 여행 | 저자최순욱 | cp명서해문집 도서 소개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북유럽 신들의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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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um백과] 오줌 강을 건너 거인을 처치한 토르북유럽 신화 여행, 최순욱, 서해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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