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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26대 충선왕 개혁 정치 시행
시대 | 1298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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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대륙 | 한국 |
충렬왕이 지나친 원나라의 간섭과 왕비의 죽음으로 정치에 싫증을 느껴 아들 왕중앙(충선왕, 재위 1298년, 1308년~1313년)에게 왕위를 내 주고 태상왕으로 물러나 원나라로 들어갔다.
충선왕은 즉위하자 정방(최우, 정방 설치 참조)을 폐지하고 권문세족각주1) 이 소유한 드넓은 토지를 몰수해 백성들에게 나눠 주었다. 또한 군사 제도와 조세 제도도 정비하고, 원나라에 대해서도 자주적인 태도를 취했다. 그러자 충선왕과 사이가 나빴던 그의 왕비 계국대장공주가 친정인 원나라 황실에 불만을 토로하고 원나라도 그를 괘씸하게 여겨 옥새를 빼앗는 사태가 벌어졌다. 결국 충선왕은 왕위에 오른 지 7개월 만에 쫓겨나고 아버지 충렬왕이 복귀했다.
원종이 쿠빌라이와 ‘불개토풍(고려와 몽골 전쟁 종식 참조)’에 합의했지만 오랜 원 간섭기를 거치면서 몽골의 풍습이 고려에 들어와 일부는 정착되기도 했다. 변발과 호복은 대표적인 몽골 풍속이었다. 당시 들어온 몽골의 언어와 풍속은 그 일부가 고려 사회에 남아 지금까지도 전해지고 있다. ‘장사치’, ‘벼슬아치’ 등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을 가리키는 ‘치’와 임금의 음식상을 가리키는 ‘수라’는 몽골어에서 비롯됐다.
또한 오늘날 한국인이 즐겨 먹는 만두, 설렁탕, 소주 등도 몽골에서 들어온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여자들의 풍속인 다리(여자의 머리숱이 많아 보이게 하기 위해 덧넣는 땋은머리), 도투락댕기, 두루마기와 저고리 같은 옷 등도 몽골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신부가 뺨에 연지를 찍는 풍습이나 여성이 옷고름에 차는 장도 등도 몽골풍으로 여겨져 왔으나, 삼국 시대에도 이와 비슷한 풍습이 있었기 때문에 단정하기는 어렵다. 한편 원나라에도 고려인이 들어가 살면서 고려의 옷, 신발, 모자, 그리고 떡과 같은 고려 음식이 보급되기도 했는데, 이를 ‘고려양’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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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조
- ・ 시대 구분은 한국사의 흐름에 맞추었다.
- ・ 서기 1년 이전의 시대는 교과서에서 쓰이는 ‘기원전’ 대신 ‘서기의 앞 시기’ 라는 뜻에서 ‘서기전’으로 표기했다.
- ・ 한국사의 연대는 1895년까지는 음력, 태양력을 도입한 1896년 이후는 양력으로 표기했다. 세계사의 연대 표기는 중등 교과서에 따랐다.
- ・ 한글 맞춤법과 외래어 표기는 중등 교과서와 국립국어원에 준하되 편집의 필요에 따라 부분적으로 변화를 줬다.
출처
한국사와 세계사가 동시에 펼쳐지는 신개념 통합 역사 교양서한국사, 이제는 세계사와 함께 봐야 더 깊이 보인다! 청소년부터 성인까지 세대를 아우르는 최고의 역사 시리즈한..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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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um백과] 고려 26대 충선왕 개혁 정치 시행 – 세계사와 함께 보는 타임라인 한국사 2, 다산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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