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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 그리고 무한~도전!
2011년 7월 30일 미사리 조정경기장에서 ‘STX배 제53회 전국조정선수권대회’가 무사히 끝났다. 전 국민에게 사랑받는 MBC 예능프로그램 ‘무한도전’이 참가하면서 많은 관심을 모은 경기다. 멤버들이 힘 모아 젓는 노에 따라 씽씽~ 물 위를 가르던 조정 보트. 이 멋진 모습 덕에 한여름 더위를 시원하게 날려버린 사람들도 많으리라.
그러나 조정은 여전히 생소한 스포츠다. 우리나라에서는 잘 알려지지 않은 비인기 종목인데다 배나 노도 우리에겐 낯설기 때문이다. 2km를 몇 분 안에 이동할 정도로 빨리 달리려면 배의 모양도 노 젓는 법도 특별할 것 같다. 씽씽 달리는 조정 보트의 비밀은 무엇일까?
● 온몸으로 노 젓는 조정 보트의 비밀… ‘움직이는 의자’
배는 사람이 타고 물을 건너는 도구다. 그러니 사람이 앉을 자리도 마련돼야 한다. 보통 보트의 의자는 고정돼 있다. 그런데 조정 보트에 있는 의자는 바퀴가 달려 있어 슬라이드 식으로 움직인다. 조정 보트를 ‘활석정(滑席艇 : 미끄러지는 의자를 갖춘 배)’이라고 부르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보트의 속도를 빠르게 하려면 ‘스트로크’ 동작이 강하게 이뤄져야 한다. 스트로크는 노를 물에 넣고 뒤로 미는 동작, 즉 노를 선수 앞으로 당기는 동작이다. 미끄러지는 의자는 선수가 팔뿐 아니라 다리와 온몸까지 이용해 노를 당길 수 있게 돕는다. 덕분에 노를 더 강하게 저어 빠르게 달릴 수 있다.
무한도전 멤버들이 훈련 때 사용했던 조정용 로윙 머신(rowing machine)도 의자를 앞뒤로 움직일 수 있게 돼 있다. 일단 발걸이에 발을 얹고 다리를 쭉 피면 의자가 뒤로 움직인다. 이때 곧은 자세로 손잡이를 힘껏 당기면서 앞뒤로 몸을 움직이는 게 조정의 노 젓기 방법이다.
● 좁고 날렵한 조정 보트, 나노처리로 씽씽~
조정 보트는 보트의 판을 만드는 방식에 따라 ‘너클 보트’와 ‘셸 보트’ 두 종류로 나뉜다. 너클 보트는 키잡이가 있는 4명이 노를 젓는 보트다. 일본조정협회가 보트 경기를 보급하기 위해 만든 보트인데 너비가 넓고 안정도가 높다. 덕분에 너클 보트는 초보자가 타도 쉽게 균형을 잡을 수 있다.
셸 보트는 빠른 속도를 최우선으로 해서 만든 보트다. 너클 보트는 바닥에 모가 나 있어서 안정성이 좋은데 반해 셸 보트의 바닥은 반원이다. 또 배의 폭이 좁고 길이가 길어 날렵하게 쭉 빠진 모양을 하고 있다. 이런 모양은 물살의 마찰저항을 줄이는 역할을 한다.
최근에는 물살의 마찰저항을 줄이기 위해 최첨단 과학이 도입되기도 한다. 이중에 눈에 띄는 것이 나노표면처리다. 과거에는 물에서 잘 달리기 위해서는 매끈한 표면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돌고래나 상어처럼 물속에서 사는 생물을 관찰한 결과 그렇지 않다는 걸 알게 됐다.
돌고래의 피부조직에는 나노미터 크기의 구멍들이 있다. 이 구멍은 돌고래가 헤엄칠 때 부분적인 잔물결을 일으켜 물과의 저항을 적게 만든다. 상어 몸에 있는 미세한 돌기도 물의 저항을 줄이는 데 사용된다. 상어 비늘에 있는 돌기가 물속에서 헤엄칠 때 생기는 소용돌이 물결을 줄여주는 것이다. 이런 구조는 자동차나 비행기, 잠수함, 수영복 등 공기나 물의 저항을 받는 운송 수단에서 활발하게 이용된다.
중국에서는 이런 나노구조를 조정 보트 바닥에 이용했다. 겉으로는 보트 표면이 굉장히 매끄럽게 보인다. 그러나 전자현미경으로 100만 배 확대해 보면, 나노 입자에 의해 선체 바깥 표면이 고르게 정리된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선박 전문가들에 따르면 얇은 층의 나노막이 물에 대한 저항력을 낮춘다고 한다. 게다가 나노막은 조정 보트의 색깔과 무게에 영향을 주지 않아 국제조정경기규칙에 위반되지 않았다. 덕분에 2005년 조정월드컵 영국시리즈에서 중국의 여성 8인조 팀이 우승할 수 있었다.
● 카누는 앞으로 조정은 뒤로, 누가 더 빠를까?
조정은 뒤로 노를 저어 앞으로 가는 스포츠다. 선수들이 뒤돌아 있기 때문에 방향을 알려줄 키잡이가 한 명씩 더 타는 것도 조정의 특징이다. 무한도전 멤버들이 도전했던 ‘에이트’가 9명의 선수로 이뤄진 것도 키잡이가 한 명 포함돼서다. 물론 키잡이가 타지 않는 조정 경기도 있다.
조정과 비슷한 카누는 앞으로 노를 젓는다. 두 경기의 목표는 모두 결승선에 빨리 도착하는 것. 그렇다면 둘 중 누가 더 빠를까? 지난 2008년 4월 EBS에서 방송된 ‘하와이’라는 프로그램에서는 조정과 카누로 100m와 200m 경주를 했다. 그 결과 100m에서는 카누가 조금 앞섰고, 200m에서는 조정이 월등하게 빨랐다.
이는 노의 형태와 노 젓는 방식 때문이다. 카누의 노는 짧고 넓적해 보트와 분리된 채 저을 수 있다. 어깨와 팔만 이용해서 젓는 카누의 노는 처음에 힘을 많이 내서 빨리 움직이는 데 유리하다. 반면 조정의 노는 길고 좁게 생긴데다 보트에 고정돼 있다. 긴 노를 온몸으로 저으므로 처음에는 속도를 내기 어렵다. 대신 시간이 지나도 지치지 않고 오히려 가속도를 낼 수 있어 장거리에 유리하다.
또 조정 보트에 고정된 노도 큰 힘을 내는 데 도움을 준다. 노 젓는 힘은 작용-반작용의 원리에서 나온다. 사람이 노로 물을 밀어내면(작용) 그만큼의 힘으로 물이 보트를 미는 것(반작용)이다. 보트와 분리된 카누의 노에는 이런 작용-반작용의 원리만 적용되지만 보트에 고정된 조정의 노는 지렛대 효과도 얻을 수 있다.
아르키메데스가 ‘충분히 긴 장대와 지구를 받칠 수 있는 받침대만 준다면 지구를 들 수 있다’고 말했을 정도로 지레를 이용하면 힘을 효과적으로 쓸 수 있다. 조정 보트에서는 노가 물에 잠긴 부분이 받침점이고 보트에 받쳐진 부분이 작용점, 노의 손잡이가 힘점이 된다. 힘점과 받침점 사이의 거리가 받침점에서 작용점까지의 거리보다 길기 때문에 적은 힘으로도 큰 효과를 보게 되는 것이다.
미끄러지는 의자, 좁고 날렵한 모양, 나노 표면 처리, 고정된 노. 이런 장치들의 도움이 있어 조정 보트는 카누 등에 비해 오랫동안 빨리 달릴 수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함께 노 젓는 사람들의 마음이다. 키잡이를 따라 한마음이 돼야 최고의 기록이 나온다는 걸 잊지 말았으면 한다.
글 : 박태진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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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 2011-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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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um백과] 카누와 조정, 누가 더 빠를까? – 과학향기, KISTI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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