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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케아 공의회
Councils of Nicaea니케아 공의회는 325년 고대 도시 니케아(지금의 터키 이즈니크)에서 열린 그리스도교 교회의 첫 번째 에큐메니컬 공의회(Ecumenical movement, 그리스도교의 각 교파들이 다양성을 인정하고 교류와 협력을 할 것을 주장하는 운동)이다.
콘스탄티누스 1세가 소집하여 개회식을 주재했으며 논의에도 참석했다. 회의의 동기는 아리우스 논쟁, 즉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神性)을 부정하는 아리우스파를 이단(異端)으로 단죄하여 분열된 교회를 통일시키고, 로마 제국의 안정을 이루기 위한 것이었다. 그는 아리우스주의 때문에 동방 교회에서 발생한 문제들을 이 공의회에서 해결할 수 있기를 바랐다.
회의는 325년 6월 19일 니케아에 있는 황제의 궁에서 콘스탄티누스가 참석한 가운데 시작되어 8월 25일 폐회될 때까지 약 두 달간 계속되었고 318명의 감독들이 참석했다.
이 공의회는 아리우스를 정죄하고, 일부 참석자들의 망설임이 있었으나 성자가 성부와 완전히 동등함을 나타내기 위해 성서에 없는 단어 '호무시오스('본질상 같은'이라는 뜻)'를 니케아 신경에 포함시켰다.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아리우스를 추방했는데, 이는 교회와 국가의 공고한 유대와 교회의 일에 세속의 후원이 중요함을 뚜렷이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이 공의회에서는 또한 부활절 날짜를 통일하려 했으며 성직자의 직위, 공적인 참회, 분열자들과 이단자들의 재입회, 예배의식의 규정 등을 논의했다. 또한 20가지 교회법을 반포했는데, 그 가운데는 주교 서품 절차, 성직자가 이자를 받고 돈을 빌려주는 것에 대한 정죄, 주교와 사제·부제가 한 교회에서 다른 교회로 옮겨가는 것을 금지하는 것 등이 있다.
5세기의 비잔틴 역사가 소크라테스 스콜라스티쿠스에 따르면 이 공의회에서 성직자의 독신을 규정하는 교회법을 제정하려 했으나 일부의 반대로 실패했다고 한다. 또한 알렉산드리아와 예루살렘이 각기 자기 지역에서 자신들의 관구가 다른 주교의 관구보다 우위에 있음을 분명히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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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중심에는 언제나 사람이 있다! 진시황제, 카이사르, 다 빈치, 갈릴레오, 링컨, 간디, 체 게바라, 마더 테레사 등 고대 영웅부터 현대의 성녀까지 100인으로 ..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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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um백과] 니케아 공의회 – 세계사를 움직인 100인, 김상엽, 청아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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