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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이야기 고려
왕조사

덕종

고려 9대왕, 德宗

태평성대의 씨를 뿌리다

거란 침입을 막아내며 국내외의 안정기반을 이룩한 현종은 불행히도 천수를 누리지 못했다. 결국 1031년 나이 40세, 재위 22년 만에 세상을 떠났다. 그 뒤를 이어 현종의 장남 흠(欽)이 왕위에 오르니 이가 제9대 왕 덕종(德宗)이다.

덕종은 제3비 원성왕후 김씨의 소생으로 현종 7년(1016)에 태어났다. 5세 때 연경군에 책봉되었다가 2년 뒤에 태자가 되었다. 즉위할 때 그의 나이는 16세에 불과했다. 비록 어린 나이에 즉위한 덕종이지만 선왕인 현종이 닦아 놓은 안정치세를 이어간 왕으로 평가받고 있다.

덕종은 즉위하자 사면령을 내려 죄수들을 풀어주고 현종대의 중신들인 서눌, 왕가도, 최충, 황주량 등을 임용하여 조정의 안정을 기했다. 또 거란에 대한 유화책도 잊지 않아 거란의 성종이 죽자 공부낭중 유교를 보내서 조의를 표하게 하고 뒤이은 흥종의 즉위식에는 낭중 김행공을 축하사절로 보내기도 했다. 이와 함께 거란 측에다 압록성(보주와 선주의 두 성)과 여기에 설치한 다리를 철거하고 억류된 고려 포로들을 송환해 줄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거란측이 거절하자 고려는 거란 연호의 사용을 중지하는 등 거란과의 국교를 단절하였다.

고려의 강경일변도 태도에 거란은 1032년 정월 사신을 보내 화해하려 했으나 고려는 사신의 입국을 거절하고 만일에 있을 거란의 침략에 대비하여 삭주와 영인진에 성을 쌓았다. 고려의 예측대로 거란은 이듬해 10월 정주를 침략하여 삭주와 영인진의 성축공사를 방해하려 했지만, 고려군에 패배하여 퇴각하고 말았다. 이 무렵 고려는 현종대에 2, 3차에 걸친 거란 침략을 겪으면서 어느덧 군사적으로 강성한 나라가 되어 있었다. 반면 침략에 패배한 거란은 정국 혼란까지 겹쳐 과감한 군사적 도발행위는 일으키지 못하였다. 고려는 거란과 팽팽한 긴장관계를 지속했으나, 여진과는 매우 협조적인 관계를 유지하는 정책을 폈다.

정치·외교 분야에 역량을 발휘한 덕종은 교육 분야에도 손을 대었다. 즉위한 해에 국자감에 시험 제도를 도입하여 국자감을 명실상부한 고려 제일의 교육기관으로 격상시켰다. 실력을 불문하고 명망 있는 집안의 자제들이 손쉽게 입학하던 곳이 국자감이었다. 입학시험을 도입함으로써 실력 있는 인재들도 입학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준 것이다. 3년 뒤에는 양반 및 군인, 한인(閑人)의 전시과를 개정하였으며 형벌경량주의에 입각하여 사형에 처한 자들을 감형해 주기도 했다.

개성 성균관

고려 시대 최고의 교육기관으로 그 명칭은 국자감, 국학, 성균관으로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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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를 안정기에 올려놓은 덕종이었지만, 병약한 체질을 오래 견디지 못하고 재위 3년 만인 1034년 9월 급작스럽게 사망하고 말았다.

3년 치세를 뒤로 하고 요절한 덕종에 대해 이제현은 이렇게 평했다.

“덕종은 부모상을 당하여서는 자식으로서 효도를 다하였고, 정치를 함에 있어서는 부왕이 하던 일을 고치지 않았으며 원로인 서눌, 왕가도, 최충, 황주량 등을 신임하여 조정에서는 서로 기만하는 일이 없었다. 이 덕분에 백성들의 생활이 편안했으니 그의 존호에 덕(德)자를 붙인 것은 당연한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단지 3년이라는 짧은 치세를 기록한 덕종이 실제로 얼마나 정사에 간여했을까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한다. 어쩌면 재임 기간 그가 잘한 것이라고는 부왕에 대한 효심을 바탕으로 원로 중신들을 여전히 신임했다는 점뿐일지도 모른다.

아들 없이 요절한 덕종

덕종은 경성왕후 김씨를 비롯한 5명의 부인을 두었으며 이들로부터 2명의 공주를 얻었다. 때문에 덕종은 왕위계승자를 얻지 못하고 죽음을 맞았다.

제1비인 경성왕후 김씨는 현종의 딸이며 원순숙비 김씨 소생으로 덕종과는 이복남매간이다. 덕종 사망 후 52년간을 더 살다 1086년에 죽었으니 상당히 장수한 왕후라 하겠다.

제2비 경목현비 왕씨는 중서령 왕가도의 딸이다. 경성왕후보다 먼저 덕종의 부인이 된 듯하나 왕족 출신이 아닌 까닭으로 제2비로 밀려났다. 경목현비의 부친인 왕가도는 청주 출신의 호족으로 본명은 이자림이다. 현종대에 반란을 진압하는 공을 세워 재상의 반열에 오르게 되었으며 현종으로부터 왕씨 성을 하사받고 왕가도로 개명했다.

이후 왕가도는 그의 두 딸을 각각 현종비와 덕종비로 바치는 등 외척으로 세도를 누리기도 했는데 덕종대의 대거란 강경책은 왕가도의 정책이 반영된 것이다. 그러나 현종의 장인이었던 서눌과 김은부 세력에 밀려 덕종이 죽자 실각하고 말았다.

제3비 효사왕후 김씨도 현종의 딸로 원혜왕후 김씨가 어머니이다. 덕종과는 이복남매간이고 제11대 왕 문종과는 친남매간이다.

국외 시대 고려
에스파냐, 다수의 소국으로 분열1031덕종 즉위
경종 즉위, 서하 건국1032혁차·수질노·뇌등석포 등 무기 제작
  《7대 실록》 편찬
송, 인종의 친정 시작됨(경력의 치)1033천리장성 쌓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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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희 집필자 소개

1964년 인천에서 출생하여 경상대학교 인문대 사학과를 나왔으며 한국정신문화연구원 한국학대학원에서 한국사를 전공으로 석사와 박사과정을 마쳤다. 한국학중앙연구원 책임연구원을 거쳐, 현재는 대전대학..펼쳐보기

출처

이야기 고려왕조사
이야기 고려왕조사 | 저자정성희 | cp명청아출판사 도서 소개

고려왕조의 찬란한 흥망성쇠를 살펴보는 <이야기 고려왕조사>. 태조부터 공양왕까지 500년 고려왕조사를 다양한 유물, 유적, 영웅들의 이야기와 함께 생생하게 그려내었다...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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