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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올림픽백과

제15회 헬싱키 올림픽 (1952년)

다른 표기 언어 Helsinki Olympics 동의어 1952년 하계 올림픽, 1952 Summer Olympics
요약 테이블
개최지 핀란드 헬싱키
대회 기간 1952년 7월 19일∼8월 3일
대회 규모 69개국 4,955명
주경기장 헬싱키 올림픽 스타디움
종목 17개 종목 149개 세부종목 (근대5종, 농구, 레슬링, 복싱, 사격, 사이클, 수영, 승마, 역도, 요트, 육상, 조정, 체조, 축구, 카누, 페사펠로, 펜싱, 하키 등)
최다 금메달리스트 빅토르 추카린(소련, 체조, 금 4개)
한국 선수단 규모 선수 21명, 임원 20명
한국 참가 종목 레슬링, 복싱, 사이클, 승마, 역도, 육상
한국 순위 37위(동 2)
사이트 https://www.olympic.org/helsinki-1952

요약 1952년 핀란드의 헬싱키에서 개최된 올림픽으로 경기보다는 이념 대결이 앞섰던 대회로 평가된다. 특히 소련은 공산주의의 우월함을 보여주려고 381명의 대규모 선수단을 파견하였는데, 민주주의 국가의 맹주인 미국에 크게 뒤졌다. 69개국 4900여 명의 선수가 17개 종목, 149개 세부 종목에서 실력을 겨루었으며, 우리나라는 21명의 선수가 참가하여 역도의 김성집이 지난 대회에 이어 동메달을 따냈고, 복싱 강준호도 동메달을 따냈다.

메달 순위

순위나라명금메달은메달동메달합계
1미국40191776
2소련22301971
3헝가리16101642
4스웨덴12131035
5이탈리아89421
6체코73313
7프랑스66618
8핀란드631322
9오스트레일리아62311
10노르웨이3205
11스위스26614
12남아공24410
13자메이카2305
14벨기에2204
15덴마크2136
16터키2013
17일본1629
18영국12811
19아르헨티나1225
20폴란드1214
21유고슬라비아1203
22캐나다1203
23루마니아1124
24뉴질랜드1023
25브라질1023
26인도1012
27룩셈부르크1001
28독일071724
29네덜란드0505
30이란0347
31칠레0202
32레바논0112
오스트리아0112
34멕시코0101
스페인0101
아일랜드0101
37한국0022
우루과이0022
트리니다드토바고0022
40베네수엘라0011
불가리아0011
이집트0011
포르투갈0011
헬싱키 올림픽 메달 순위

개요

소련이 처음으로 참가하며 올림픽이 동서 이념의 대결 무대가 되기 시작한 대회이다. 소련은 공산권 국가들의 선수촌을 별도로 마련해달라고 주장하여 소련 해군기지 근처에 동구권 국가들의 숙소가 마련되었다. 그럼에도 69개국이 참가하여 역대 올림픽 중 대회 규모가 가장 컸으며, 핀란드 국민의 절대적인 지원으로 대회는 성공적으로 치러졌다. 체코의 에밀 자토펙이 5000m와 1만m, 마라톤을 제패하며 최고의 영웅으로 올라섰고, 미국은 금메달 41개로 22개의 소련을 누르고 종합 우승을 차지하였다. 우리나라는 김성집이 2연속 동메달을 획득하였으며, 강준호가 복싱에서 동메달을 추가하였다. 마라톤에 출전한 최윤칠은 4위로 골인하여 아깝게 메달을 놓쳤다.

미국과 소련의 동서 세력 다툼의 무대

헬싱키 올림픽은 스포츠에서 동서 이념이 시작된 대회이다. 순수한 참가와 대결보다는 어떻게든 이기려하는 집착을 보여주었다. 특히 올림픽을 40년 동안 방관만 하던 소련이 381명이라는 대규모 선수단을 파견하여 올림픽이 미국과 소련의 세력 다툼의 무대가 되었다. 중국은 타이완의 반대 때문에 출전하지 못하였으며, 서독과 동독은 연합팀을 구성하는 것을 조건으로 IOC에 가입되었음에도 동독의 냉랭함 때문에 서독만 참가하게 되었다. 공산 국가와 민주 국가가 첨예하게 대립할 여지가 있어 선수촌조차 따로 마련해야 했다.

그럼에도 67개국에서 4800여 명이나 참가하여 역대 올림픽 중 최다를 기록하였으며, 매우 조직적이고도 성공적으로 대회 운영이 이루어졌다는 평가이다. 경기 종목은 17개에 149개 세부 종목이 펼쳐져 미국이 금메달 41개로 종합 우승을 차지하였으며, 소련은 22개로 2위를 차지하였다. 개막식에서 핀란드의 전설 ‘달리는 인간 기계’ 파보 누르미가 성화 최종 주자로 입장하여 관중들의 우레와 같은 박수를 받았다.

경기에서는 소련의 남자 체조 선수인 추카린이 금메달 4개, 은메달 2개를 획득하며 4관왕에 올랐고, 같은 소련의 여자 체조 선수인 마리아 호로크호브스카는 금메달 2개, 은메달 5개로 대회 최다 메달리스트가 되었다. 그러나 대회 최고의 영웅은 5000m와 1만m, 마라톤에서 우승하여 육상 장거리 부문을 모두 제패한 체코슬로바키아의 자토펙이었다. 이미 전 대회에서도 1만m 우승, 5000m 준우승으로 이름을 날렸으며, 아내 다나 자토페코바도 창던지기에서 우승하여 올림픽 최초로 육상 금메달리스트 부부가 탄생하였다. 이밖에도 미국의 밥 마티어스는 10종 경기 2연패의 신화를 이루어냈다.

우리나라는 한국전쟁 중임에도 참가하여 많은 관중으로부터 박수를 받았으며, 핀란드 대통령으로부터 최고 체육 문화상을 수상하였다. 경기에서는 김성집이 지난 대회에 이어 역도에서 동메달을 따냈고, 강준호가 복싱 밴텀급에서 동메달을 추가하여 동메달 2개로 종합 순위 37위에 올랐다.

헬싱키 올림픽 한국 선수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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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경기장, 헬싱키 올림픽 스타디움

헬싱키 올림픽 스타디움

ⓒ Soerfm/wikipedia | CC BY-SA 3.0

핀란드 최대 경기장으로 1934년 착공하여 1938년에 준공되었다. 1940년 일본이 포기한 올림픽을 이곳에서 열 예정이었으나 전쟁으로 무산되었다. 당시 수용 인원은 7만 명이었으며, 1990년부터 1994년까지 경기장 보수를 하여 4만 명으로 줄어들었다. 2005년 세계 육상 선수권 대회 때 주경기장으로 사용되었다. 경기장에 서 있는 72m 타워는 헬싱키 시내를 관망할 수 있는 관광 코스로 유명하다.

올림픽 이슈

선수촌을 두 곳 지은 이유는?

헬싱키 올림픽은 선수촌이 두 곳이었다. 이유는 소련이 공산 국가들의 선수촌을 별도로 마련해 달라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당시는 동서 이념 대결이 극심하던 때라서 생긴 일로, IOC는 소련의 요구대로 소련 해군기지 근처의 선수촌에 동구권 국가 선수들을 입촌시켰다. 이는 명백히 IOC 헌장을 위배한 것이다. 소련은 그동안 올림픽을 ‘자본주의의 산물’이라며 배척해오다 처음 참가한 올림픽에서 체제의 우월성을 과시하려고 381명이라는 대규모 선수단을 파견하였다. 그러나 종합 우승은 금메달 41개를 차지한 미국에게 돌아갔고 소련은 22개로 2위를 차지하였다.

달리기가 체조도 아니고, 어때서요?

보통의 장거리 육상 선수는 상체와 머리를 꼿꼿이 세우고 달리지만 에밀 자토펙은 상체와 머리를 옆으로 불안하게 움직이면서 달렸다. 고통스럽게 일그러진 표정을 하고 식식대며 달리면서도 금메달을 따내자 ‘인간 기관차(The Locomotive)’라는 별명이 붙었다. 그에게 누군가가 왜 그렇게 우습게 뛰느냐고 묻자 자토펙은 “마라톤은 체조도 아니고 피겨 스케이팅도 아니잖아요?”라고 답했다고 한다.

올림픽 영웅들

인간 기관차 자토펙(Emil Zátopek, 체코, 1922. 9. 19 ~ 2000. 11. 22)
자토펙(Emil Zátopek)

ⓒ wikipedia / MachoCarioca | CC BY-SA 3.0 de

1948년 런던 올림픽에서 1만m 우승, 5000m 준우승으로 스타에 오른 자토펙은 1952년 헬싱키 올림픽에서는 5000m와 1만m, 마라톤에서 우승하며 장거리 부문 3관왕에 올랐다. 이 세 종목에서 올림픽 3관왕을 이룬 이는 자토펙이 유일하다. 아내 다나 자토페코바도 창던지기에서 우승하여 올림픽 최초로 육상에서 금메달리스트 부부가 탄생하였다. 1968년 프라하의 봄 때 소련 공산주의에 맞서 싸웠다. 인간 기관차 이외에도 ‘신발을 신은 전갈’이라는 별명도 얻었다.

체조 4관왕 빅토르 추카린(Viktor Chukarin, 소련, 1921. 11. 9 ~ 1984. 8. 25)

남자 체조 부문 4관왕으로 은메달도 2개를 추가하였다. 1956년 멜버른 올림픽에서도 3관왕에 오르는 등 올림픽에서만 금메달 7개, 은메달 3개, 동메달 1개를 따냈다. 이밖에도 1954년 로마 세계 선수권 대회에서도 3관왕에 올랐다.

최다 메달리스트 마리아 호로크호브스카(Mariya Horokhovska, 소련, 여, 1921. 10. 17~2001. 7. 22)

추카린에 버금가는 소련의 여자 체조 선수로 체조 전 종목에 걸쳐 메달을 수확했다. 개인 종합과 단체에서 금메달을 땄고, 마루운동과 평균대 등 5개 종목에서 은메달을 수확, 금메달 2개, 은메달 5개로 대회 최다 메달리스트에 올랐다. 유태인이었던 그녀는 1990년에 이슬라엘로 이주하였고, 이후 죽을 때까지 체조 코치로 일하였다. 1991년에 국제 유태인 스포츠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최초의 올림픽 2연패 밥 마티아스(Bob Mathias, 미국, 1930. 11. 17~2006. 9. 2)
밥 마티아스 (Bob Mathias)

ⓒ Materialscientist/wikipedia | Public Domain

1948년 런던 올림픽에 이어 10종 경기에서 2연패를 이루어냈다. 미식축구 선수로도 유명하여 1952년 스탠퍼드 팀을 로즈볼(Rose Bow; 매년 1월 1일 치르는 미국 칼리지 풋볼의 최고 경기)로 이끌었다. 은퇴 후에는 배우와 캘리포니아 주 하원 의원으로도 활약하였다.

대한민국 성적

한국 전쟁이 끝나지 않은 상황에서도 참가한 대회로 복싱 밴텀급의 강준호 선수와 역도 미들급의 김성집 선수가 각각 동메달을 획득하는 쾌거를 올렸으며, 한국 선수단은 핀란드 대통령으로부터 최고 체육문화상을 받았다. 김성집은 한국 올림픽 사상 처음으로 2개 대회 메달을 따냈다. ((- >헬싱키 올림픽 대한민국 성적 보기)

종목세부종목메달선수
복싱밴텀급동메달강준호
역도미들급동메달김성집
대한민국 메달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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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올림픽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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