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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한국독립운동
인명사전

김원주

다른 표기 언어 金源柱 동의어 금해원주, 金海源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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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1921년 6월 18일, 전라북도 전주(全州)
사망 미상
주요활동 1941년 비밀결사 조직
포상훈격 1995년 건국훈장 애족장

1921년 6월 18일 전라북도 김제군(金堤郡) 월촌면(月村面) 신월리(新月里)에서 태어났다. 창씨명은 금해원주(金海源柱)이다.

1940년 2월 경성사립 공과학교(京城私立, 工科學校) 광산과(鑛山科) 졸업 후 그 해 7월 광양광업소(光陽鑛業所)에서 근무하다가 1941년 9월에 그만 두었다. 광양광업소 근무 당시 일본인과 한국인을 차별대우하는 것과 ‘내선일체’에 문제의식을 가졌다.

'내선일체' 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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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양광업소에서 함께 근무하며 교유하고 있던 김채룡(金彩龍)의 주도하에 같은 학교 출신의 전호영(田浩榮)과 함께 한국 독립을 위한 활동을 결심했다. 김채룡과 광양광업소에 근무할 당시 한국 독립을 도모할 것과 이를 위해 기독교를 중심으로 활동할 것, 독립 활동을 위한 그룹을 결성할 것을 주장하고 한국 역사와 민족의식을 기반으로 한 독립 의식을 설파하였다.

1941년 2월부터 김채룡과 함께 동지들을 규합하여 일제 강점 하 한국인들의 노예와 같은 현실에 대한 비판을 하고 하루 빨리 일본의 지배로부터 벗어나야 한다는 의식을 공유하였다. 또한 독립을 위해서는 청년들이 나서서 독립운동의 선구자가 될 의무를 짊어져야 하며, 독립운동의 선구자가 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지식과 인격을 수양하고 동지를 규합할 것을 주장하였다. 그 방법의 하나로 우리 문학을 연구하여 스스로를 알고, 한국 청소년과 한국 민중에게 민중의식을 고양 시킬 것을 제시하였다.

이러한 활동으로 인해 김채룡, 전호영과 함께 붙잡혀 이른바 치안유지법 제5조 형법 제55조에 해당된다고 하여 징역 2년 6월을 받았다.

판결문(전주지방법원, 1941. 11.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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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집필자 : 정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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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 ・ 「판결문」, 전주지방법원, 1941. 11. 27
  • ・ 국사편찬위원회, 『일제침략하 한국36년사』 13, 1978
  • ・ 국사편찬위원회, 『한국독립운동사』 5, 1969

출처

한국독립운동 인명사전
한국독립운동 인명사전 전체항목 도서 소개

<독립운동가의 업적을 인명사전으로> 3.1운동,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기하여 그동안 축적된 연구기반 위에서 독립운동가의 업적을 사전적으로 종합, 정리하기 ..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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