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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구인들은 커피를 이슬람 세계의 포도주라고 말한다. 포도주와 커피 문화의 차이가 서구와 이슬람 세계를 구분하는 가장 분명한 문화 잣대라고 분석하는 인류학자도 있다. 독일의 역사학자 하인리히 E. 야콥(1889~1967)은, “무슬림들이 사물의 특질을 절묘하게 끄집어내고 복잡한 사안에 대해 논쟁을 즐기는 것은, 냉철하면서도 정열적이고, 정열적이면서도 침착한 커피 문화와 같은 맥락”이라고 보았다. 또한 인간의 뇌에 작용하는 커피의 효과와 이슬람 건축을 관련지어 설명했다. 그는 알함브라에서 바그다드의 웅장한 모스크를 거쳐 인도 타지마할로 연결되는 이슬람 건축의 현란하면서도 기하학적인 결실은, 포도주를 마시는 술꾼들이 결코 이뤄 낼 수 없는 것으로, 그것은 커피 문화의 소산이라고 하였다.
커피는 이슬람 문화의 꽃이다. ‘커피’(coffee)는 아랍어 ‘카흐와’(qahwah)에서 유래되었다. 아랍에서 처음 약용으로 마시기 시작했고, 아라비아 남부에서 이슬람을 받아들인 뒤에는 명상을 위한 음료로 대중화되었다. 잠을 쫓는 카페인 성분은 밤 문화 중심인 중동의 환경에 그대로 스며들었고, 상업적 이익이라는 엄청난 매력 때문에 전 세계로 퍼져 나갔다. 유럽을 변화시키고, 세상 사람들을 커피로 빠져들게 했다.
오늘날 커피는 물 다음으로 인류가 많이 마시는 음료이자, 석유 다음으로 거래량이 많은 상품이 되었다. 인류는 매일 30억 잔 가까운 커피를 소비하고, 수천만 명이 커피 산업에 종사한다. 우리나라에서도 커피는 없어서는 안 되는 삶의 필수품이 되었다. 이슬람 세계에서 정착된 커피 문화가 이토록 광범위하게 세상을 바꿀 줄 누구도 짐작하지 못했다.
커피는 무슬림들의 자긍심이고, 신이 내린 선물이다. 만약 《꾸란》이 계시될 때 커피가 알려졌다면 틀림없이 대추야자만큼이나 예찬의 대상이자 예언자 무함마드가 최고로 좋아하는 음료가 되었을 것이다.
커피를 처음 마시고 알려지게 된 곳은 아라비아 남부, 예멘의 모카 지방이었다. 커피의 원산지는 에티오피아의 카파 지방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동부 아프리카의 뾰족한 곶을 따라 좁은 홍해를 건너면 바로 모카 지방이다. 인간이 커피의 효능을 알고 의도적으로 마시기 시작한 것은, 15세기경 예멘의 이슬람 신비주의자들이나 종교 지도자들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오랜 명상과 기도를 해야 했던 그들에게 커피는 최상의 효과를 가져다주었다.
잠을 쫓고 맑은 정신을 유지하게 도와주는 커피의 이점이 알려지면서 이슬람 세계로 계속 전파되었다. 1511년에는 이슬람 최고 성지 메카에서도 커피를 마신 것이 기록으로 확인되었다. 그 뒤 메카로 몰려든 순례객들을 통해 이집트, 시리아를 중심으로 급속하게 확산되었다. 예멘이 오스만 터키의 지배를 받으면서 커피는 이슬람 세계를 넘어 국제화의 길을 걷는다. 커피는 예멘의 특산물로, 오스만 제국의 궁정이 있는 이스탄불로 진상되었다. 그 결과 1554년 세계 최초의 카페인 ‘차이하네’가 이스탄불에서 문을 열었다. 16세기는 세계 제국 오스만의 터키가 가장 활력에 넘치던 시대였으며, 이런 시대를 반영하듯 수도 이스탄불에는 600개가 넘는 카페가 있었다. 화려한 카페 문화가 꽃을 피운 시기였다.
밤의 문화가 화려하게 꽃피었던 이스탄불 궁정에서 커피는 최고의 인기 음료였다. 특권층의 음료이기도 했는데, 특히 밤의 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유럽 외교관들은 잠을 쫓기 위해 커피를 매일 밤마다 마셨다. 그들은 점차 커피 중독자가 되어 갔고, 임기를 마치고 유럽으로 돌아갈 때쯤이면 이미 커피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오스만 당국이 커피 유출을 금지했지만 외교관들은 외교행랑을 이용해 원두를 본국으로 빼돌렸다. 그 결과 유럽에서도 커피를 마시게 되었다.
물론 유럽 사람들은 이미 동방의 커피 문화가 가져다준 삶의 변화를 일찍이 그곳을 방문한 유럽 여행가나 학자들을 통해 알고 있었다. 독일 의사 레온하르트 라우볼프(1535~96)가 1582년에 출간한 《동방 여행》에 커피에 대한 기록이 유럽 최초로 나타난다. 그는 중동 지역을 다녀온 뒤 당시 페르시아인들이 아침 일찍부터 커피를 마시는 풍습을 책에 묘사했는데, 시리아의 상업 도시 알레포에서 아랍인들이 ‘잉크처럼 검은 음료’인 커피를 마셨다고 소개했다. 같은 시기의 이탈리아 식물학자 프로스퍼 알피누스(1553~1617)의 책에도 당시 아랍과 이집트인들이 커피를 일상적으로 마셨다고 쓰여 있다. 1592년에 발간한 자신의 저서를 통해 이집트인들의 기호 식품인 커피를 자세하게 소개했는데, 커피 음료뿐만 아니라 커피나무와 꽃에 대한 정보를 전했다.
오스만 제국의 비엔나 공격 이후 커피를 향한 선망과 호기심은, 드디어 아르메니아 상인이 비엔나에 유럽 최초의 커피하우스를 여는 배경이 되었다. 곧이어 커피는 전 유럽을 강타했다. 1652년에는 영국 런던에 ‘파스카 로제 커피하우스’가 문을 열었다. 1683년경에는 런던에 3,000개의 커피하우스가 생겨났다. 그 후 유럽 주요 도시에 커피하우스가 문을 열었고, 유럽 상류 사회에 새로운 유행이 시작되었다. 이탈리아 최초의 카페 ‘플로리안’이 산마르코 광장에 문을 연 것은 1683년이다. 베네치아에는 플로리안 외에도 200개가 넘는 카페가 생겨났다. 플로리안에는 명사들의 발길이 멈추지 않았다. 나폴레옹, 괴테, 니체, 스탕달, 바이런, 릴케, 디킨스, 모네, 마네 등이 플로리안의 단골이었다.
커피는 유럽 지식인 계층과 상류사회를 뒤흔들면서 만남의 매개체이자 신분의 상징이 되었다. 부유한 부르주아들의 사교장인 ‘카페 클럽’이 만들어진 것도 커피 문화 확산의 결과였다. 카페는 진보적 지식인들의 담론의 공간이 되면서 새로운 세상을 꿈꾸고 설계하는 혁명의 진원지가 되기도 했다. 좋은 예가 1789년 7월 13일, 파리의 ‘카페 드 포이’에서 바스티유 감옥을 공격할 계획을 세운 것이다. 이 사건을 계기로 프랑스 대혁명이 일어났다.
그러나 커피가 순조롭게 유럽 사회에 정착한 것은 아니었다. 처음 중세 가톨릭교회는 시커먼 커피를 이교도가 마시던 음료라고 하여 악마의 화신으로 보았다. 커피를 마시는 것을 불경스럽게 여겨 금지했는데, 이를 어긴 수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거나 불이익을 당했다. 결국 교황 클레멘스 8세가 커피를 마셔 본 뒤, 커피를 기호 식품으로 인정했다. 커피에 세례를 내려 준 셈이었다. 이후 커피는 유럽에서 아무런 종교적 걸림돌 없이 모든 사람들이 즐길 수 있는 음료로 서서히 자리 잡게 되었다.
한때 유럽은 커피 열풍으로 홍역을 치렀다. 커피 원두 공급이 안정적이던 프랑스와 달리 독일은 해외 식민지가 없어 커피를 비싼 값에 들여와야 했고, 결국 국가 경제가 파탄될 위기에 처했다. 이런 상황에서 절대 군주 프리드리히 대왕은 커피 금지령을 내리고 강력하게 커피 소비를 단속했다. 이보다 앞서 영국의 찰스 2세도 커피를 금지하는 정책을 펴기도 했다.
당시 오스만 당국이 커피 생산과 유통을 장악하고 있었기 때문에 커피 값은 여전히 비쌌다. 유럽이 식민 통치를 하고 있던 인도네시아와 남아메리카는 아랍과 기후가 비슷했다. 유럽은 새로운 지역에서 직접 커피 농사를 짓기로 했다. 인도네시아에 대규모 커피 플랜테이션이 들어섰고, 남아메리카에도 값싼 노예 노동력을 동원하여 어마어마한 커피 농장이 생겨났다. 브라질은 세계 최대의 커피 생산국이 되었고, 베트남과 인도네시아가 그 뒤를 따르고 있다. 커피의 세계화가 급속히 이루어지면서 지금은 오히려 커피 원산지인 모카커피가 밀리는 상황이 되었다. 식민지에서 값싼 노동력을 동원해 대규모로 커피를 재배하면서 가격이 크게 떨어졌고, 커피 소비의 대중화를 촉진시키는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다.
커피가 널리 확산된 데에는 18세기 산업혁명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집을 떠나 직장에서 일하는 노동자가 점점 증가하면서 고된 노동으로 피로가 쌓인 유럽의 노동자들은 커피를 마시며 쉬는 것으로 시름을 달래곤 했다. 자본가들 입장에서도 노동자들이 알코올 음료보다 각성제가 들어 있는 커피를 마시는 편이 생산성에 도움이 되므로 적극 환영했다.
아랍에서는 그들만의 아랍식 커피를 마신다. 주둥이가 기다란 청동 커피포트에 담은 커피를 작은 잔에 따라 주는데, 초록 빛깔이 난다. 커피에 향신료를 절묘하게 배합한 뒤 대추야자와 함께 귀한 손님에게 대접한다. 그러나 이제 커피의 종주국인 예멘이나 터키, 아랍 국가에서도 아랍 커피나 터키 커피가 점차 유럽의 인스턴트 커피나 유명 브랜드 커피에 밀리고 있다. 웬만한 커피하우스에서는 브랜드 커피의 값이 터키식 커피보다 두 배 이상 비싸다. 사람들의 입맛도 바뀌었다. 그들은 유럽식 커피를 무조건 ‘네스카페’라고 부른다. 이 브랜드가 가장 먼저 진출하여 입맛을 바꿔 놓았기 때문이다. 불행히도 네스카페는 근대화와 엘리트 계층의 상징이 된 반면, 터키 커피는 이슬람과 보수 계층의 상징으로 굳어졌다.
미국이 커피 소비국의 중심이 되면서 커피는 미국 문화의 상징물이 되었다. 미국이 세계 커피 시장의 중심으로 떠오른 데는 보스턴 차 사건이라는 뼈아픈 역사가 있다. 북아메리카의 식민지 주민들은, 영국이 지나치게 세금을 거둬들이는 데 반발하여 1773년 12월 16일 보스턴 항에 정박한 영국 상선을 습격해 홍차 상자들을 바다에 던져 버렸다. 이는 미국 독립전쟁의 불씨가 되는 커다란 사건이었고, 미국인들은 차를 식민 통치의 상징으로 생각해 차 대신 커피를 마시게 되었다. 마침 브라질을 중심으로 남아메리카의 값싼 커피가 대량 유입되면서 미국의 화려한 커피 문화 시대가 열렸다. 미국 커피의 중심 도시는 시애틀이다. 마이크로소프트사와 보잉사를 중심으로 화이트칼라가 주도하는 첨단 산업의 메카 시애틀에서 미국 3대 커피 브랜드인 스타벅스, 시애틀 베스트, 툴리스가 탄생했고, 이제 커피는 세련된 서구 문화의 대명사가 되었다. 그나마 하나의 위안은 아직도 전통과 역사를 이야기할 때 터키 커피는 빠질 수 없는 아랍의 정서로 남아 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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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 세계가 중세에 이룩한 화려한 문명과 과학적 업적을 살펴봄으로써, 세상을 바꾼 이슬람 문화의 가치와 업적에 대해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계기를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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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um백과] 이슬람 커피 문화의 시작 – 세상을 바꾼 이슬람, 이희수, 다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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