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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2016 1
2가지 트렌

도시로 성큼 들어온 팝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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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가을, 고무로 만들어진 오리 모양의 장난감, 러버덕(Rubber duck)이 한국 석촌호수에 모습을 드러냈다. SNS에 접속하면 노란 오리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은 사람들의 모습이 가득했다. 교각 밑을 지나며 머리를 부딪힌 러버덕 사진에 '나 머리 쿵해쪄'라는 제목을 붙이거나, 바람이 빠져 호수에 주둥이를 박은 러버덕 사진에 '목말라쪄'라는 제목을 붙이는 등, 러버덕의 다양한 모습에 각종 해시태그들이 달리며 SNS를 뜨겁게 달궜다.

어릴 적 욕조에서나 가지고 놀던 평범한 고무 오리와 찍은 사진을 자랑하고, 어른들도 자녀가 아닌 자신을 위해 러버덕 인형을 구입하는 등, 많은 이들이 러버덕을 통해 잠시나마 즐거움과 행복을 느꼈던 것 같다.

서울 석촌 호수에 설치된 러버덕의 모습

ⓒ 러버덕 프로젝트 공식 인스타그램 | 저작권자의 허가 없이 사용할 수 없습니다.

2007년 네덜란드의 설치 미술가 플로렌타인 호프만(Florentijn Hofman)은 26m 크기의 고무 오리를 내놓으며, '즐거움을 전 세계에 퍼뜨리다(Spreading joy around the world)'라는 제목으로 러버덕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현재까지 세계 주요 도시 30여 곳에서 러버덕은 그 샛노란 자태를 뽐내며 세계인들의 얼굴에 미소가 번지게 했다. 건축물도 아니고, 전통적인 도시 조형물도 아닌 '설치 미술'에 왜 도시인들은 열광한 것일까?

현대인이 사랑하는 팝아트

팝아트(Pop Art)는 생각보다 그 역사가 깊다. 1950년대 말부터 1960년대 초 미국과 영국을 중심으로 시작된 팝아트는 현대 미술 분야에서 가장 눈에 띄는 장르로 자리 잡았다. 팝아트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등장했는데, 이 시기엔 미국을 중심으로 서방 사회가 다시 풍요를 되찾아 중산층이 형성되고, 엘비스 프레슬리(Elvis Presley)와 메릴린 먼로(Marilyn Monroe)가 라디오와 텔레비전을 통해 큰 인기를 누렸다. 또한 베트남 전쟁에 대한 반전운동과 미국 내 흑인 인권운동 같은 문화혁명이 일어나는 시기이기도 했다. 아마도 이때 등장한 팝아트 작품이나 팝 아티스트의 이름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친숙할 것이다. 앤디 워홀(Andy Warhol)의 토마토스프 통조림 깡통 그림이나 로이 리히텐슈타인(Roy Lichtenstein)의 만화 회화 같은 초기 팝아트는 대개 광고나 일러스트레이션 같은 상업 미술에서 출발했다.

앤디 워홀의 작품

ⓒ 뉴욕 현대미술관(MoMA) 홈페이지 | 저작권자의 허가 없이 사용할 수 없습니다.

로이 리히텐슈타인의 작품

ⓒ 뉴욕 현대미술관(MoMA) 홈페이지 | 저작권자의 허가 없이 사용할 수 없습니다.

제조업과 매스미디어가 큰 발전을 보이던 당시 시대 흐름에 힘입어, 팝아트는 급속도로 인기를 끌며 일상과 예술 두 분야 모두에 퍼져나갔다. 팝아트는 하이컬처(고급문화)와 로컬처(저급문화) 간의 경계를 허물겠다는 의지로, 대중문화의 요소를 회화나 조각 등의 예술로 표현하여 새로운 장르를 열었다.

특히 1980년대 이후에는 '네오팝아트(Neo-pop Art)'라고 불리는 예술 사조로 이어졌고, 미술관을 넘어서 광고와 그래피티, 티셔츠, 열쇠고리 같은 상품과 결합해 오늘날까지 인기를 이어오고 있다. 키스 해링(Keith Harring) 같은 네오팝 아티스트의 작품과 일본의 SPA 의류브랜드인 유니클로(Uniqlo)의 컬래버레이션은 예술이 제품과 결합해 얻은 비즈니스 성과를 보여주는 좋은 사례이기도 하다.

유니클로에서 판매하는 키스 해링 작품이 인쇄된 의류

ⓒ 유니클로 온라인 쇼핑몰 | 저작권자의 허가 없이 사용할 수 없습니다.

팝아트로 도시의 정체성을 표현하다

미국 플로리다주 마이애미에 가면, 시내 곳곳에서 알록달록한 조형물들을 만날 수 있다. 눈에 자주 띄는데도 불구하고, 그저 마이애미의 분위기와 너무 잘 어우러져 있어서 특별히 예술 작품이라고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미식축구 경기장과 관광객이 가장 많은 마이애미 비치 몰, 시내의 주차요금기에서까지 찾아볼 수 있는 작품들은 모두, 현대 미술가 로메로 브리토(Romero Britto)의 것이다. 그의 작품은 이미 마이애미의 상징적인 아이콘이 되었다. 실제 로메로 브리토는 브라질 출신이지만, 1989년부터 마이애미에 정착해 작품활동을 하고 있다.

마이매미 비치 몰 앞의 로메로 브리토의 작품

ⓒ 마이애미 무역관 | 저작권자의 허가 없이 사용할 수 없습니다.

로메로 브리토는 작품활동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한 보드카 브랜드의 병 디자인 컬래버레이션에 참여하게 되면서, 특유의 화려한 색상과 회화 패턴을 세상에 알리게 되었다.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리는 가장 큰 IT·가전 분야 전시회 중 하나인 CES(The International Consumer Electronics Show) 전시회에서도, 우리나라 대형 전자회사가 자사 텔레비전의 기술적인 장점을 부각하기 위해 로메로 브리토의 작품을 디스플레이에 띄운 바 있다.

시계, 자동차 등의 글로벌 브랜드 기업들과 연달아 협업하면서 상업적인 명성을 얻게 되면, 대부분의 팝 아티스트들은 개인 갤러리나 유명 미술관, 순회 전시회를 열어 작품 세계를 사람들에 널리 알리려고 할 것이다. 그런데 막상 그의 작품은 마이애미 길거리에서 가장 흔하게 발견된다.

물론 대도시의 길거리나 공공장소에서 예술 조형물을 발견하는 것이 어려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대부분은 일상 공간에서 분리되어 있으므로 만질 수 없으며, 눈으로만 감상해야 한다. 하지만 로메로 브리토의 작품은 조금 다른 방법으로 전시되면서 대중의 사랑을 받고 있다. 도시 사람들의 일상 공간에 녹아들어 있기 때문이다. 보통 사람들이 흔히 지나다니는 공간에 실제로 만질 수 있도록 설치된 그의 작품은 예술 작품이 갖는 특유의 권위와 거리감보다 친근감과 재미를 선택한 듯 보인다. 길거리에 잠시 차를 세워두기 위해 사용하는 주차 요금기, 경기장 관람석에 입장하기 위해 올라가는 계단, 식료품이나 잡동사니를 사기 위해 들어가는 쇼핑몰 입구 같이 도시 사람들의 일상에 로메로 브리토의 작품들이 들어온 것이다. 이렇게 실제로 만지고, 밟고, 쉽게 볼 수 있는 예술이야말로, 미술관에 걸린 값비싼 작품보다 오늘 도시를 사는 이들에게 더 의미 있는 가치를 부여하는 게 아닐까 싶다.

팝아트로 꾸며진 마이애미 시내의 주차 요금기

ⓒ 마이애미 무역관 | 저작권자의 허가 없이 사용할 수 없습니다.

로메로 브리토의 작품은 어쩌면 유치하다 싶을 정도로 단순한 형상과 눈에 띄는 원색이 특징이다. 어린아이들과 동물들이 작품의 주인공인 경우가 많다. 이러한 작품의 특성은 마이애미라는 도시에 대한 사람들의 기대와 아주 잘 맞아떨어진다. 도시에 방문하는 사람들이 기대하는 재미와 즐거움, 도시를 터전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원하는 재충전 등, 마이애미의 정체성을 알록달록한 색상과 남녀노소 모두 공감하는 소재를 통해 표현한 것이다. 삭막하고 지친 도시 사람들에게 밝은 기운을 불어넣고, 마이애미에서 새로운 도전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역동적인 느낌을 주는 것 또한 도시 속 팝아트가 감당하고 있는 역할이다. 뛰어난 예술적인 안목을 갖고 있지 않아도 누구나 주목하고 아름답게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것이 팝아트가 사랑받는 이유인 것이다.

일상 속 감상의 즐거움

도시는 삶의 수요가 충족되는 공간이다. 다시 말해, 도시에서는 먹고사는 중요한 문제가 일정 부분 해결된다. 이러한 이유로 도시인들은 더 높은 차원의 욕구를 무의식중에 찾는다. 생계의 문제와는 다소 거리가 있는 즐거움과 재미 충족의 욕구 말이다. 예술, 특히 도시 공간과 팝아트의 결합은 물론이요, 마이애미에서는 요즘 들어 눈에 띄는 특이한 디자인의 자동차나 파격적인 패턴과 디자인의 패션이 자주 목격된다. 도시 안의 산업과 소비 전반에 걸쳐 예술을 접목시킨 재미를 찾는 욕구가 드러난 것으로 보인다.

몇 년 전부터 등장한 이러한 트렌드를 두고, 언론은 '키치(kitsch)하다'라는 기상천외한 표현까지 서슴없이 쓰고 있다. 키치한 트렌드는 한동안 계속될 것 같다.

일상 속에서 감상하는 즐거움을 위해 예술이 대중화되는 현상을 비난하는 이들도 많다. 하지만 팝아트가 도시와 만나 사랑받게 된 데는, 상업적 가치를 좇은 예술가의 의도적인 전략이나 예술을 통해 수익성을 얻으려는 사업가의 의도가 없었다. 단지 도시가 움직이는 법칙이 그러하듯, 원하는 사람과 원하는 것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만나 자연스럽게 서로 상생하며 이익을 나누게 된 것이다. 도시 속의 팝아트는 어렵고 비싼 예술품이 아닌, 일상 속에 들어온 익숙한 매체로, 앞으로도 더 자주 소셜미디어에 등장할 것 같다.

아름다움, 즐거움에 대한 추구는 인간의 기본적인 욕망이며, 도시에서는 이러한 욕망을 채우려는 사람들의 노력이 계속되고 있다. 예술 작품을 접하며 기초 교양을 쌓고 싶어 하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지만, 아직까지 대중들에게 미술관이나 박물관의 벽은 높은 듯 보인다. 이에 따라 도시의 거리로 나온 팝아트가 사람들의 욕망을 대신 채워주고 있는 건 아닐까?

처음부터 '대중들이 쉽게 즐기고 감상할 수 있는 예술'이라는 목적으로 탄생한 팝아트답게 팝아트를 활용한 유통과 대중의 소비도 엄청난 규모로 성장하고 있다. 러버덕 프로젝트처럼 대기업이 후원하는 프로모션 사업이 있는가 하면, 로메로 브리토의 작품처럼 작품 라이센싱(Licensing) 업무만 담당하는 기업이 따로 있을 정도다.

이러한 세계적 움직임에 발맞춰, 우리나라의 각 도시에서도 예술과 비즈니스를 융합한 다양한 프로젝트를 만나볼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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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미성 집필자 소개

KOTRA 마이애미 무역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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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12가지 트렌드
2016 12가지 트렌드 | 저자KOTRA | cp명알키 도서 소개

전 세계 85개국에 흩어진 KOTRA의 주재원들이 2015년 한 해 지구촌 곳곳에서 직접 발로 뛰며 취재한 생생한 정보들을 12가지 트렌드로 분류하여 담은 책이다. 각..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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