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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얼굴, 감출
수 없는
내면의 지도

그리스 신화 얼굴의 상징

신화 속의 얼굴에서 인간의 가면까지

페르세우스의 모험

얼굴에 대해 인류학적, 철학적으로 보다 깊이 분석해 들어가기에 앞서 유명한 그리스 신화 하나를 잠시 살펴보고 넘어가자. 이 신화와 이 신화가 내포하고 있는 상징이 앞으로 계속 언급될 것이므로, 지금 그 다양한 설화적 요소를 짚고 넘어가는 편이 나을 것 같다.

페르세우스는 제우스의 아들이다(제우스가 하늘의 상징성과 관계있는 영웅임을 기억해두자). 그의 할아버지는 아르고스의 왕이었는데, 다나에리는 딸만 있을 뿐 아들이 없었다. 절망에 빠진 그는 남자 자손을 하나라도 가질 수 있을지 예언자에게 묻지만, 손자가 자신을 죽일 것이리는 응답만 받는다. 왕은 그 끔찍한 예언을 피하기 위해 딸인 다나에를 청동으로 만든 방에 가둔다. 하지만 다나에를 사랑하게 된 제우스가 황금 빗물로 변해 그 방에 들어가고, 페르세우스가 태어나게 된다. 그리고 영웅으로서의 운명을 맞이한다. 페르세우스는 태어나자마자 어머니 다나에와 함께 외할아버지에 의해 조상들의 땅에서 추방된다. 왕은 자신의 딸과 외손자를 상자에 넣어 바다에 띄워 보낸다. 하지만 그들은 그대로 바다에 빠져 죽으리라는 예상을 뒤엎고 한 어부에게 구출되어 그의 섬으로 따라간다. 다나에의 아름다움은 곧 그 섬의 왕 폴리데크테스에게까지 알려지고, 왕은 다나에와 결혼하고 싶어한다. 그는 그녀와의 결혼을 위해 페르세우스를 제거하려는 계획을 세우고, 불가능하지는 않지만 엄청난 도전 과제를 내준다. 젊은 혈기로 가득차 있던 페르세우스는 그 과제를 받아들인다. 그것은 바로 서쪽 끝에 살고있는 세 고르곤(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괴물 세 자매) 중 하나인 메두사를 죽이고 그 머리를 베어오라는 것이었다.

메두사는 셋 중 유일하게 죽을 운명을 타고났다. 그녀의 입은 커다란 이빨(어떤 그림에서는 수퇘지의 이빨을 하고 있다)이 툭 불거져 나와 있어 무시무시했고, 울음소리는 지옥 불에 던져진 저주받은 영혼들의 비명소리라고 해도 좋을 만큼 끔찍했다. 로마의 시인 오비디우스에 따르면, 메두사는 원래 인간이었는데 넵튠에게 유혹당해 미네르바 여신의 신전에 갔다가 미네르바의 분노를 사는 바람에 아름다운 머리카락이 그만 끔찍한 뱀으로 변하고 말았다고 한다. 게다가 누구든 그 뱀을 보기만 해도 돌처럼 굳어버리는 저주까지 받았다고 한다. 어쨌거나, 메두사는 포르키스와 케토의 딸이다. 이 두 신은 괴물과 바다, 대지와 관련이 있다(이들은 대지의 여신 가이아와 바다의 신 폰토스 사이에서 난 자식들이다).

메두사가 여러 신화에서 바다의 왕인 포세이돈(로마신화의 넵튠)과 연관되어 등장하는 것을 감안하면. 메두사가 지하세계와 관련이 있음이 보다 분명해진다. 메두사는 포세이돈과 관계를 맺어 말인 페가수스를 낳는데, 이는 추수와 곡물, 대지의 여신인 데메테르가 포세이돈의 구애를 피해 암말로 변했다가 수말로 변해 따라온 포세이돈과 관계를 맺고 말을 낳은 것을 상기시킨다. 이 두신, 즉 포세이돈과 데메테르가 대지, 더 나아가 깊은 지하 세계와 관계가 있다는 점에 주목하자. 포세이돈은 그리스인들이 출현하기 전부터 그리스 군도에 존재했던 토속 신으로 알려졌으며, 지하 세계, 지진, 동굴의 신으로 여겨진다. 나중에 바다의 신이 되었으나, 본래의 상징은 해저나 지하의 비밀스러운 지옥과 관련이 있다. 데메테르는 종종 지하의 신 하데스와 결혼한 딸 페르세포네와 함께 언급된다. 이를 감안할 때 데메테르 역시 지하 세계의 힘과 자연, 그리고 그 싹트는 에너지와 관계가 있다고 볼 수 있다. 고대 그리스에서 메두사가 말을 닮은 모습으로 표현되는 이유를 바로 이 모든 것에서 찾을 수 있다. 말은 대지와 죽음의 무시무시한 심연과 깊은 관계를 맺고 있는 밤의 괴물의 상징이며, 페르세우스와 메두사 신화의 전 단계에 걸쳐 등장한다.

메두사의 머리

카라바조, 1595~159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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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리데크테스는 페르세우스가 살아 돌아올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어떤 생명체든 고르곤을 똑바로 바라보면 돌로 변할 것이기 때문이다. 페르세우스는 신의 도움 없이는 성공적으로 메두사의 머리를 벨 수 없었다. 그는 고르곤을 찾아가는 길에 아테나 여신의 도움을 받아 메두사와 맞서 싸울 황금 방패를 얻는다. 아테나는 헤르메스를 시켜 페르세우스에게 날개 달린 신발을 빌려주도록 한다. 신기만 하면 하늘을 가로질러 멀리까지 날아갈 수 있는 신발이었다. 오랫동안 위험한 여행을 계속한 끝에 그는 두 개의 무기를 더 얻는다. 메두사의 머리를 벨 수 있는 특별한 칼과 개가죽으로 만든 하데스의 모자인데, 이 모자를 머리에 쓰고 있으면 그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을 수 있었다. 이 무기들 덕분에 페르세우스는 메두사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지 않고서도 무찌를 수 있었다. 최근의 한해석에서는 그가 방패를 거울삼아 거기에 비친 메두사를 바라보며 다가가는 방법을 써서 직접 대면하지 않고도 목을 벨 수 있었다고 하고, 또 어떤 신화에서는 메두사가 방패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고 돌로 굳어지는 바람에 페르세우스가 머리를 쉽게 벨 수 있었다고도 한다.

아무튼 메두사의 잘려 나간 목에서는 곧바로 페가수스와 크리사오르가 태어난다. 페가수스는 날개 달린 말로 나중에 제우스의 메신저가 되고, 크리사오르는 황금 칼로 괴물들을 무찌르는 영웅이 된다. 또 어떤 신화에서는 페르세우스가 섬으로 돌아가는 길에 해안으로 떨어지는 메두사 머리의 핏방울에서 페가수스와 크리사오르가 태어났다고 한다. 그러나 이 에피소드는 페르세우스 신화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페르세우스는 그 후에도 자신의 특별한 자루에 메두사의 머리를 넣어가지고 세상을 돌아다니며 괴물이 나타날 때마다 그것을 꺼내 물리 친다. 메두사는 죽었지만 그 머리의 힘은 그대로 유지되어 페르세우스에 맞서는 괴물을 돌로 만든다. 페르세우스는 그때마다 고개를 돌려 메두사의 저주를 피한다. 나중에 페르세우스는 자신을 도와준 아테나 여신에게 그 머리를 전리품으로 바치고, 아테나 여신은 자신에게 도전하는 이들을 ‘꼼짝 못하게' 하기 위해 자신의 방패에 그것을 붙인다. 페르세우스가 우연찮게 (신화에 과연 우연이라는 것이 있기는 할까?) 경기 중 던진 원반이 그의 할아버지에게 날아가 결국 죽게 만들고, 그렇게 신탁이 실현되었다는 점에 주목하자. 그리고 페르세우스와 그의 모험은 여기에서 마치자.

메두사 얼굴의 진실

인용문
메두사의 머리가 지금도 존재한다면?

이 신화에서 우리는 페르세우스가 최소한 두 번 태양의 상징과 관계되었다는 것을 분명히 알 수 있는데, 바로 그 아버지가 제우스라는 점과 모험의 결과로 페가수스를 얻었다는 점이다(페가수스는 제우스에게 벼락화살을 날라다 준다). 태양의 영웅인 그는 태양이 지는 곳, 서쪽 땅에 사는 괴물과 싸워야 한다. 어떤 분석가는 이 신화가 ‘겨울'에 맞선 생명력의 승리를 담은 이야기라는 그럴듯한 말을 한다(가계도에서 이미 보았듯이 고르곤은 대지와 연관된 괴물이다. 그리고 스쳐 지나는 모든 것들을 ‘얼어붙게' 만든다). 하지만 더 흥미를 끄는 것은 이 신화 속 머리의 역할과 얼굴 상징이다. 우리는 날개 달린 마법의 신발을 신고 하늘을 나는 페르세우스에게 주어진 임무(메두사의 머리를 베는 것)에 내포된 수직성과 태양친화성(solar tropism)에 주목해야 한다. 메두사의 머리는 뱀으로 이루어진 머리카락과 수퇘지의 이빨을 가진 존재로 매우 잔인하고 동물적이다.

하지만 페르세우스의 역할은 그 야성을 제압해 자신을 위해 사용하는 것이다. 반짝이는 둥근 방패는 거울의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더 중요한 사실은 이 태양의 거울이 여기서는 칼보다 더 위험한 무기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메두사는 이 태양을 닮은 방패에 비친 자기 자신, 말하자면 자기 자신의 얼굴, 즉 끔찍한 자아를 보고 ‘얼어붙는다'. 이 신화에서 언급되지는 않았지만, 눈 상징 또한 매우 중요하다. 우리는 또한 페르세우스가 지혜의 신 아테나의 도움을 받았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가 메두사라는 고르곤을 이길 수 있었던 것은 무기뿐만 아니라 그 ‘기지' 덕분이기도 하다. 그는 영리하고 간교했으며, 그 덕에 율리시스(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영웅 오디세우스의 라틴어 이름)처럼 모든 상황에서 승리를 거둘 수 있었다. 이 모든 것을 볼 때 우리는 응집된 신화적 상징의 집합체에서 메두사 ・ 죽음 ・ 대지 ・ 밤과 그 정반대인 눈 ・ 태양 ・ 말씀 ・ 지성 ・ 아테나 ・ 페르세우스 등의 이미지들이 차지하고 있는 위치를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아테나가 메두사의 머리를 자신의 방패에 달아 하나의 상징으로 삼은 것을 다시 생각해보자. 지식의 여신인 아테나가 중앙에 메두사의 머리가 달린 커다란 ‘눈 모양'의 방패를 들고 우리를 지켜보고 서 있다. 이 얼마나 선명한 이미지인가! 그렇다면 이 신화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무엇일까? 명백한 것은 지하 세계에 사는 이무기처럼 생긴 밤의 괴물을 남성인 태양의 영웅이 무찌른다는 것이다. 이는 분명 그리스 신화의 상상계에서 낮이 밤을 이기고 봄이 겨울을 이기는 주기적인 승리를 은유적으로 표현하는 이야기일 수 있다. 이런 신화는 ‘우라니아(ourania, 하늘과 관계된)'의 신들 위주인 인도유럽의 영웅 찬양과 유사하다.

그러나 철학적 수준에서 이 신화는 훨씬 더 많은 것, 특히 얼굴에 대한 우리의 의문에 대해 많은 것을 알려준다. 아테나는 자신의 방패에 순화되고 중립화된 메두사의 머리를 둠으로써 무시무시한 지식의 힘을 나타낸다. 지식은 잘못 사용될 경우 치명적일 수 있다. 더욱이 우리의 시각으로 볼 때 이 고르곤의 얼굴은 얼굴을 직면함에 내포된 무서운 힘이다. 어떤 면에서 이 이야기는 그 황금 방패처럼 우리 눈이 감당하기에는 너무 밝은 진실을 똑바로 바라보려 할 때 마주하게 되는 위험을 말해주는 것인지도 모른다. 또한 단순히 눈으로 자신의, 또는 상대의 얼굴을 바라보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이며 심지어 위험하기까지 할 수도 있는가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는 것인지도 모른다. 분명 이 신화는 얼굴이 갖고 있는 미스터리, 즉 얼굴이라는 표면적인 것 그 ‘너머'에 있는 무엇, 지금 우리가 물어보아야 할 보다 깊은 그 무엇을 우리에게 말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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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얼굴, 감출 수 없는 내면의 지도
얼굴, 감출 수 없는 내면의 지도 | 저자저자 벵자맹 주아노, 옮김 신혜연 | cp명21세기북스 도서 소개

한마디로 규정할 수 없는 얼굴의 모든 것을 다루기 위해, 인간이 만들어낸 신화와 가면 등의 도구, 그리고 예술작품을 중심으로 철학과 정신분석, 미학, 인류학 등의 관점..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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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um백과] 그리스 신화 속 얼굴의 상징얼굴, 감출 수 없는 내면의 지도, 저자 벵자맹 주아노, 옮김 신혜연, 21세기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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