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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능호 : 유릉
▪ 위치 : 경기도 남양주시 금곡동
▪ 지정번호 : 사적 제207호
▪ 조성시기 : 1926년 6월 11일
▪ 능의 구성
유릉은 조선의 마지막 왕릉이며, 조선 왕릉 중 한 능침에 세 명의 수장자를 합장한 유일한 동봉삼실형이다. 겉으로 보기엔 봉분이 하나여서 단릉처럼 보이지만, 그 아래 순종과 그의 두 왕비가 잠들어 있다. 홍릉과 같은 황제릉 양식으로 조성하여 정자각 대신 침전이 자리하고, 기린, 낙타, 코끼리 등 이전에 볼 수 없었던 다양한 형태의 석물이 있다.
홍릉에 비해 능역 규모가 다소 좁긴 하지만, 문무석인을 비롯하여 전체 석물의 조각은 홍릉의 것보다 사실적이면서 뛰어난 수법이 보인다. 특히 문석인은 특정인을 모델로 한 것처럼 사실적인 조각 수법을 보이고 있으며, 홍릉의 문석인과 같이 머리에 금관을 쓰고 있다. 능침 주변에는 화문을 새긴 병풍석과 난간석이 둘러져 있고, 가운데 혼유석과 사각 장명등이, 양 옆에는 망주석이 새워져 있다. 홍살문과 침전의 바깥 공간에는 어정(御井)이란 이름의 우물터가 남아 있다.
▪ 능의 역사
순명효황후는 순종이 즉위하기 전인 1904년(광무 8년) 11월 5일 경운궁에서 세자빈의 신분으로 춘추 33세에 승하하였다. 오늘날의 성동구 능동에 있는 어린이대공원인 양주땅 용마산 기슭의 유릉에 같은 달 29일 안장되었다. 그러나 그로부터 20여 년이 지난 1926년 4월 25일 순종이 53세로 승하하자 그 해 6월 11일 순종을 홍릉 왼쪽 산줄기 언덕에 장사지내면서 순명효황후의 능을 천장해 와 합장하였다.
순종의 인산일인 6월 10일에는 일반 백성들에 의한 6ㆍ10 만세 운동이 일어나기도 하였다. 1966년에는 순종의 계비 순정효황후가 1월 13일 춘추 71세로 창덕궁 낙선재에서 승하하여 유릉에 함께 안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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