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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대 철종

2008년 연감 보러가기 / 자료편 / 문화재와 명산 / 조선왕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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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능호 : 예릉

▪ 위치 :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원당동 산37의1

▪ 지정번호 : 사적 제200호

▪ 조성시기 : 1863년(철종 14년)

▪ 능의 구성

예릉은 조선 25대 임금 철종과 비 철인왕후의 능이다. 조선시대 ‘국조오례의’, ‘국조속오례의’, ‘국조상례보편’에 의거한 상설제도로서는 마지막 능이다. 봉분은 병풍석을 세우지 않고 난간석을 둘렀으며, 이는 쌍릉으로 연결되어 있다. 난간석의 석주에는 음각 세로선과 원문을 새기고 원문 안에 방위를 나타내는 문자인 십이간지를 새겨 넣었다.

일반적으로 조선의 능침은 상중하계의 3단으로 되어 있는데 영조의 원릉부터는 중계, 하계의 구분을 두지 않고 문무석인을 같은 단에 배치하였다. 특히 예릉은 하계 앞 강(岡)이 길며 장명등을 중계가 아닌 하계의 끝에 배치한 것이 특이하다. 이는 조선시대 유일한 배치방법이다. 장명등은 다리가 길어졌으며 지붕 위에는 둥근 파문이 몇 겹 겹쳐 있다. 가운데에는 원형 틀 안에 꽃문양을 새기고 있어 전체적인 느낌이 이국적이다.

무석인은 갑옷으로 층이 나 있고 문석인은 효릉에서 약간 보이기 시작하던 소매 주름의 반전이 역력히 보이고 있다. 홀은 턱 아래에 붙여서 큰 머리를 받치고 있는 듯하다.

맞배지붕의 정자각은 다른 능에 비해 웅장하고 크며 처마마루의 잡상도 기존의 3개에서 5개로 많다. 참도 역시 기존의 향도와 어도의 2단에서 3단으로 되는 변화를 볼 수 있다. 이는 이후 고종의 홍릉과 순종의 유릉에서 3단으로 이어진다. 정자각을 보고 섰을 때 오른쪽에 비각이 있고 그 아래에 복원되지 않은 초석들이 수복방의 자리이다.

▪ 능의 역사

철종은 재위 14년 6개월 만인 1863년 33세의 나이로 승하하였다. 고종은 철종의 능을 거창하고 웅장하게 꾸며 왕실의 오랜 세도정치를 타파하고 왕권을 강화하고자 하였으므로 예릉의 석물과 부속 건축물들은 웅장한 규모로 조영되었다.

평소 부덕이 높았던 철종의 비 철인왕후가 1878년(고종 15년)에 42세로 승하하면서 이곳에 함께 안장하여 쌍릉을 이루었다. 1908년(융희 2년) 7월 30일 철종장황제와 철인장황후로 각각 추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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