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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대 중종

2008년 연감 보러가기 / 자료편 / 문화재와 명산 / 조선왕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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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능호 : 정릉

▪ 위치 : 서울 강남구 삼성동 131

▪ 지정번호 : 사적 제199호

▪ 조성시기 : 1562년(명종 17년)

▪ 능의 구성

정릉은 조선 11대 왕 중종의 능이다. 중종에게는 3명의 왕후와 7명의 후궁이 있었으나 사후에는 어느 왕비와도 함께 있지 못하고 아버지와 어머니의 능인 선릉 옆에 홀로 묻혀, 조선시대의 몇 안되는 단릉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

정릉의 상설은 성종의 선릉과 같이 ‘국조오례의’를 따르고 있다. 석양과 석호의 전체적인 자세는 선릉과 비슷하면서도 세부적인 표현에 있어서는 조금 더 사실적인 묘사가 돋보인다. 반면 전체적으로 형식화된 경향이 있다. 문무석인은 높이가 3m가 넘을 정도로 큰 편이다. 문무석인 얼굴의 퉁방울눈이 특이하며 코 부분이 훼손되고 검게 그을려 있어 정릉의 수난을 상기시켜 준다. 석호의 익살스러운 입 모양은 보는 사람을 흐뭇하게 한다.

정릉의 원찰인 봉은사는 보우가 주지로 있던 사찰로, 794년 연회국사가 견성사(見性寺)란 이름으로 창건한 이후 1498년(연산군 4년)에 중창하면서 봉은사로 개칭하였다.

▪ 능의 역사

인종은 1545년(인종 1년) 1월 5일 중종을 고양에 예장하고 능호를 희릉(禧陵)이라 하였다. 그리고 약 한 달 후, 고양시의 현재 서삼릉 능역 내에 있는 중종의 첫 번째 계비 장경왕후 윤씨의 능 오른쪽 언덕에 능을 새로 조영하고, 능호를 정릉으로 고쳤다. 그로부터 17년 후인 1562년(명종 17년) 에 두 번째 계비 문정왕후에 의해서 중종의 아버지 성종과 어머니 정현왕후의 능이 있는 현재의 강남구 삼성동으로 옮겨졌다.

문정왕후가 봉은사 주지 보우와 의논하고, 그곳은 풍수지리가 좋지 않으며 선릉의 동쪽이 풍수상 길지라 하여 옮긴 곳이었으나 지세가 낮아 여름철 홍수 때면 재실과 홍살문이 침수되는 피해를 자주 입었다. 결국 중종과 함께 안장되기를 바랐던 계비 문정왕후는 그 뜻을 이루지 못하고, 현재 태릉(泰陵)에 단릉(單陵)으로 안장되어 있다.

문정왕후의 바람으로 인해 천장된 현재의 정릉은 임진왜란 때 선릉과 함께 왜구에 의해 능이 파헤쳐지고 재궁이 불태워지는 수난을 겪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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