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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익선관 翼善冠
    조선 시대 왕의 상복(常服)으로 복두(幞頭)에서 연유한 관모로 양소각을 첨부하여 절상시킨 것이다. 익선관의 절상각이 위로 향한 것은 질서정연하고 규율이 엄격한 봉(蜂)의 세계 중 왕봉을 상징한 것이다. 익선관의 형제(形制)는 일률적으로 정해진 것이 아니라 당시의 미적 감각에 따라 모양을 달리 하여 시기별로 다...
    도서 패션큰사전 | 태그 의류
  • 익선관 翼蟬冠
    조선시대 때 왕·세자가 시무복(視務服)인 곤룡포(袞龍袍)에 쓰던 관(冠).|내용 형태는 모체(帽體)가 2단으로 턱이 지고 앞보다 뒤쪽이 높으며 뒤에는 매미날개 모양의 소각(小角) 2개가 윗쪽을 향해 달려있다. 모(帽) 위에는 앞면의 청사변(靑絲辮)이 뒷면의 두 절각(折角) 사이를 얽게 되어 있다. 겉감은 자색의 사(...
    시대 :
    조선
    유형 :
    물품
    분야 :
    생활/의생활
  • 익선관 翼善冠
    왕이 평상시 국가 일을 볼 때 머리에 썼던 관.|꼭대기에 턱이 져 앞턱은 낮고 뒤턱은 높았으며, 비단으로 싸고 꼭대기 뒤에 두 뿔이 뾰족하게 솟아올라 있다. 중국에서부터 기원되었으며 송나라 때는 절상건, 명나라 때는 익선관이라 불렸다. 곤룡포의 옷차림과 함께 머리에 썼는데 이것은 대한제국 말기까지 그대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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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익선관 翼善冠
    유물설명 임금이 편복(便服)으로 정무(政務)를 볼 때 쓰는 관이다. 관의 모체(帽體)가 2단으로 앞은 낮고 뒤는 높으며, 관 뒤에 부착된 양각이 위를 향해 솟아있다. 표면을 청색 사(紗)로 감쌌다.
    분류 :
    유물 > 의상
    크기 :
    높이: 20.6cmcm, 최대길이: 16.5cmcm
    재질 :
    견, 말총
  • 익선관 翼善冠
    익선관(翼蟬冠)은 복두(幞頭)에서 유래한 관모의 일종으로 명나라, 조선, 대한제국의 황제·황태자·친왕이 평상복인 곤룡포와 함께 착용한 관이다. 익선관은 조선시대 왕의 상복인 곤룡포를 입을 때 쓰는 관이다. 이 유물은 영친왕의 익선관으로 모체(帽體)가 2단으로 되어 앞쪽보다 뒤쪽이 높은 형태이다. 가죽과 말총...
    도서 위키백과
  • 전 고종 익선관 傳 高宗 翼善冠
    개설 조선 말기 고종이 착용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하여 ‘전(傳)고종익선관’으로 지정된 관모 1점이다. 1979년 1월 26일 국가민속문화재(현, 국가민속문화유산)로 지정되어 현재 세종대학교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왕실 관련 익선관은 이 외에도 청색 · 흑색 · 자적색으로 된 3점의 익선관이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
    시대 :
    근대
    유형 :
    유물
    분야 :
    생활/의생활
  • 면류관과 익선관 冕旒冠과 翼善冠
    는 눈을 가리는 것으로 나오는데, 왕은 이목(耳目)을 가까운 데 쓰지 않고 들리지 않는 먼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보이지 않는 먼 곳을 본다는 것을 상징한다. 익선관(翼善冠) - 왕이 평상시에 쓰는 관. 매미 두 마리의 날개가 달린 관으로, 매미가 이슬만 먹고 살듯이 욕심을 억제하고 하늘의 뜻을 받든다는 것을 상징...
  • 영친왕 익선관 英親王翼善冠
    검은색을 쓰는 것으로 나오지만, 현재 남아있는 유물은 진보라색이다. 상중(喪中)에는 백색을 썼다. 왕세자의 관례(冠禮) 때에도 의례 진행 단계에 따라 익선관을 착용하는 절차가 있었다. 곤룡포(袞龍袍) · 옥대(玉帶) · 화(靴)와 함께 착용한다. 이 유물은 영친왕의 익선관이다. 가죽과 말총에 옻칠을 하여 모체를...
    분류 :
    유물 > 의상
    크기 :
    전체 높이: 22cmcm, 앞 높이: 9.8cmcm, 바닥 세로: 17.5cmcm, 바닥 가로: 20.5cmcm
    재질 :
    견 · 말총 · 옻칠 · 금속 · 대모
  • 전(傳) 고종 익선관
    유형문화재 정보 전 고종 익선관(傳高宗翼善冠)은 고종의 익선관이라고 전해지는 관모이다. 익선관은 국왕의 상복인 곤룡포와 함께 착용하는 관모로서, 왕이 집무할 때 쓴관이다. 익선관의 착용은 세종 26년 3월에 명나라로부터 면복과 함께 상복삼습과 익선관을 사여 받은데서 비롯되었다. 고려도경 권7 왕복조에 보면...
    도서 위키백과
  • 방계에서 왕위를 계승하다
    명종은 평소 왕손들을 가까이하면 유심히 그들을 지켜보았던 모양이다. 하루는 명종이 궁중에서 학업을 하던 왕손을 불러들였다. 명종은 이들을 불러놓고는 익선관을 왕손들에게 써 보라고 하면서, “너희들의 머리가 큰가 작은가 알려고 한다.” 익선관이 무엇인가, 바로 국왕이 사용하는 관이 아닌가, 이런 관을 써...
  • 왕복 王服
    朝降)·조강(詔降)·진표(進表)·조현(朝見) 등에 착용하던 원유관(遠遊冠)·강사포(絳紗袍), 그리고 상복(常服)이라 할 평상 시사시(視事時)에 착용하던 익선관(翼善冠)·곤룡포(袞龍袍)가 있었다. 또, 국난을 당하여서는 전립(戰笠)에 융복(戎服)을 착용하기도 하였다. 왕복은 군왕(君王)의 표신(標信)이기도 하였던...
    성격 :
    의복
    유형 :
    물품
    분야 :
    생활/의생활
  • 상복 常服
    제조(提調)로 삼아 연구하게 하여 정리를 하였으나, 백관의 조복·제복·공복·상복 제도가 완성된 것은 결국 세종 8년 2월에 가서였다. 왕과 세자는 익선관(翼善冠)에 곤룡포(袞龍袍)를 착용하였다. 익선관은 원래 복두(幞頭)에서 생겨난 것으로 본다. ≪당서 唐書≫ 여복지(輿服志)에 의하면 이 복두는 북주(北周...
    시대 :
    조선
    성격 :
    의복
    유형 :
    물품
    용도 :
    궁중, 평상복, 관복
    분야 :
    생활/의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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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선관
익선관
익선관
익선관
전 고종 익선관
곤룡포를 입은 고종
영친왕 익선관
영친왕 익선관
영친왕 익선관
영친왕 익선관
전고종익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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