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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신성불사상 現身成佛思想
    한다. 광덕과 엄장의 왕생은 신라의 미타신앙과 관련된 최초의 기록이지만, 그 초기부터 광명을 타고 극락정토로 나아간 것으로 표현한 점은 주목된다. 성덕 때 백월산(白月山)에서 도를 닦았던 노힐부득(努肸夫得)과 달달박박(怛怛朴朴)은 신라인의 현신성불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인물이다. 그들은 어느 날 밤 백호...
    유형 :
    개념용어
    분야 :
    종교·철학/불교
  • 보은 법주사
    부처님의 법이 머문다는 뜻의 법주사는 속리산 자락에 위치하고 있으며 신라 진흥왕 14년(서기 553)에 의신조사가 창건하고 성덕과 혜공왕이 중창하였는데 이때부터 대찰의 규모를 갖추기 시작하였다. 고려 홍건적의 침입 때는 공민이 안동으로 피난을 왔다가 환궁하는 길에 들르기도 하였고 조선 태조는 즉위하기...
    위치 :
    충청북도 보은군 속리산면 법주사로 405
    참고 :
    세계문화유산 등재
  • 패강진 浿江鎭
    이남에 걸친 광범위한 지역이었다. 신라는 나당전쟁에서 승리하여 대동강 이남 지역을 실질적으로 점유했으나 적극적인 영토화는 뒤늦게 이루어졌다. 735년(성덕 34)에 당나라로부터 그 영유권을 공식적으로 인정받으면서 적극적인 개척에 착수하여 748년(경덕왕 7)에 아찬 정절(貞節) 등을 보내 북변을 살펴보게 하고...
    도서 다음백과 | 태그 통일신라
  • 신목왕후 神穆王后
    수 없다. 태후는 효소왕과 황복사 석탑을 조성하였다. 효소왕이 702년(효소왕 11) 16세의 나이로 사망하니 동모제(同母弟)인 김흥광(金興光)이 성덕으로 즉위하였다. 성덕은 뒤에 사리와 불상·다라니를 황복사 탑 속에 봉안하였다. ‘황복사석탑금동사리함명(皇福寺石塔金銅舍利函銘)’에 따르면, 태후는 700...
    시대 :
    고대/남북국/통일신라
    출생 :
    미상
    사망 :
    700년(효소왕 9)
    유형 :
    인물
    직업 :
    왕비
    성별 :
    분야 :
    역사/고대사
  • 물시계 각루
    누각(漏刻)·누호(漏壺)·각루(刻漏)·경루(更漏)라고도 한다. 가장 오래된 우리의 기록은 〈삼국사기〉 권38 직관지(職官志)에 나타나 있다. 718년(신라 성덕 17)에 물시계를 담당하는 관청인 누각전(漏刻典)을 처음으로 설치하고 박사(博士) 6명과 사(史) 1명을 두었다고 한다. 누각은 한대(漢代) 이후 중국에서...
    도서 다음백과 | 태그 과학 일반
  • 김흔질 김흠질(金欽質), 金釿質
    생애 및 활동사항 ‘김흠질(金欽質)’이라고도 기록되어 있다. 성덕의 동생으로, 726년(성덕 25) 당나라에 입조사(入朝使)로 가서 낭장(郎將)의 관직을 받고 돌아왔다. 참고문헌
    시대 :
    고대/남북국/통일신라
    출생 :
    미상
    사망 :
    미상
    유형 :
    인물
    직업 :
    왕족
    분야 :
    역사/고대사
  • 통일신라의 경제
    소유지의 평균 면적은 촌락에 따라 차이가 있기는 하나 10결에서 15결 정도이다. 연수유전·답이 국가에서 지급한 토지였다고 할 때 관련지어 언급되는 것은 성덕 21년(722)에 지급된 정전(丁田)이다. 즉 ‘연수유(烟受有)’라 하여 토지를 받는 대상이 연(烟)으로 되어 있음은 정전제에서 토지지급 대상이 호(戶...
  • 경주 황룡사 구층목탑 금동찰주본기 황룡사구층목탑 사리함기, 慶州皇龍寺九層木塔金銅刹柱本記
    경문 11)부터 872년(경문 12)까지의 중수 과정을 사리내함에 정리했다. 편찬/발간 경위 황룡사 9층목탑은 645년(선덕여왕 14)에 건립되었다가 718년(성덕 17)과 720년 9층목탑이 건립됨에 중수된 뒤 문성(文聖王)대에 다시 기울어졌다. 이에 872년에 탑을 헐고 다시 중수해 873년에 마쳤다. 이 과정에서 872...
    시대 :
    고대/남북국/통일신라
    저작자 :
    박거물(朴居勿)
    문화재 지정 :
    보물 제1870호
    창작/발표시기 :
    872년
    성격 :
    복장유물, 사리함기
    유형 :
    문헌
    권수/책수 :
    사리내함(舍利內函) 내·외면 총 6면에 음각
    분야 :
    역사/고대사
    소장/전승 :
    경상북도 경주시 일정로 186, 국립경주박물관
  • 발해 역사의 전개
    현실화되지 않아 발해가 새 왕조 건설의 안전을 보장받았기 때문이다. 발해와 신라의 교섭 분위기는 고왕 말기부터 대립관계로 전환되기 시작하였다. 신라가 성덕 12년(713)에 발해와의 접경지역인 개성에 성을 쌓았기 때문이다. 대립 분위기는 발해 왕권이 확립되는 제2대 무왕 때 더욱 굳어졌다. 직접적인 계기는...
  • 호법룡 護法龍
    金庾信, 595-673)의 후신과 이 호법룡한테서 받게 된다는 설화로 증명되고 있다. 이와 같은 호법룡신앙은 문무에 대한 흠모와 아울러 그 뒤 역대 에게 계승되어 효성왕과 성덕도 그 유명(遺命)에 따라 동해에 산골되었으며, 혜공왕과 경문은 감은사로 행행하여 멀리 바다를 망견(望見)하기도 하였다. 우리 나라...
    유형 :
    개념용어
    분야 :
    종교·철학/불교
  • 김태렴 金泰廉, Gim tae-ryum
    시기에 배후에 있던 일본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 온건한 대일외교를 전개하였지만, 삼국통일이 마무리된 이후에는 정상적인 대일외교를 전개하려 하였다. 성덕이 733년 당의 요구를 수용하여 발해의 남쪽국경을 공격함으로써 나당관계가 복원되고 친선관계를 유지하게 되면서 외교정책에 변화가 반영되었다. 이러한...
    시대 :
    고대/남북국/통일신라
    경력 :
    대아찬(5관등)
    유형 :
    인물
    관련 사건 :
    752년 대일 교역
    직업 :
    왕족
    성별 :
    분야 :
    역사/고대사
  • 보경사 寶鏡寺
    하자 은 연못을 메우고 지명법사가 진 나라에서 구해 온 팔면보경을 그 못 가운데에 묻고 금당을 세우고 이를 보경사라 이름하였다는 것이다. 723년(성덕 22)에는 각인(覺仁)과 문원(文遠)이 “절이 있으니 탑이 없을 수 없다.” 하고 시주를 얻어 금당 앞에 오층석탑을 조성하였다. 사명대사가 1588년에 지은 <내...
    시대 :
    고대/삼국
    유형 :
    유적/건물
    분야 :
    종교·철학/불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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