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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당정치의 폐해행동 때문이었다는 견해가 있기는 하지만, 붕당으로 인한 정치적 갈등과 궁중 여인들의 암투에 의해 희생되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당시 세자비였던 혜경궁 홍씨 역시 남편보다는 부친이 속한 노론의 입장에 서야 할 만큼 당파의 갈등은 뿌리 깊었다. 이와 함께 경종의 죽음이 영조의 독살이었다는 소문에서 자유...
- 시대 :
- 1749년~176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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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표의록 御製表義錄알고 자신 즉 영조를 위하여 사사로운 은혜를 끊었다고 하며 만약 이렇게 하지 않았다면 결국은 망국에 이르렀을 것임을 말하였다. 이로 인해 또한 혜빈(惠嬪, 혜경궁 홍씨)과 세손(世孫), 왕손(王孫)이 모두 보존될 수 있었다고 하면서 영빈이씨의 의열은 옛날에는 없던 것이라 한껏 포장하였다. 마지막으로 영빈의...
- 시대 :
- 조선후기
- 저작자 :
- 영조(英祖)
- 창작/발표시기 :
- 1764년(영조 30)
- 성격 :
- 어제(御製)
- 유형 :
- 문헌
- 권수/책수 :
- 1책(8장)
- 분야 :
- 역사/조선시대사
- 소장/전승 :
- 서울대학교 규장각 한국학연구원,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도서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화성행행도 팔첩병 화성능행도병(華城陵行圖屛), 華城行幸圖 八疊屛개설 1795년은 정조의 생부 사도세자의 탄신 60주년이 되는 해이며 생모 혜경궁홍씨(惠慶宮洪氏, 1735-1805)가 회갑이 된 해이다. 정조는 이를 기념하여 어머니를 모시고 화성행궁(華城行宮)에서 회갑연을 치르고 부친의 묘소 현륭원(顯隆園)에 제사를 지냈다. 이 행사는 임시로 조직된 정리소(整理所)에서 담당하였으며...
- 시대 :
- 조선 후기
- 유형 :
- 유물
- 분야 :
- 예술·체육/회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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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세자 사망영조가 세자를 뒤주에 가둔 채 방치해 세자가 8일 만에 굶어 죽었다. 세자는 노론의 영수인 영의정 홍봉한의 딸 혜경궁 홍씨와 혼인하고, 어릴 때부터 열심히 학문을 닦아 매우 총명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소론 계열의 학자들로부터 학문을 배우고, 신축 ・ 임인옥사 때 노론이 잘못했다고 비판하는 바람에 일찍...
- 시대 :
- 1762년
- 국가/대륙 :
- 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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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 완공져 왕권 강화를 추구하는 정조의 정치적 목적에 이용됐다. 정조는 종종 화성에 행차해 효심을 과시하는 한편 임금과 백성이 사대부의 중개 없이 직접 소통하는 '왕민(王民) 정치'를 추구했다. 화성이 마무리돼 가던 1795년에는 정조가 어머니 혜경궁 홍씨를 모시고 이곳에 행차해 어머니의 환갑잔치를 열기도 했다. 참조
- 시대 :
- 1796년
- 국가/대륙 :
- 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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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날, 개고기는 우리 겨레의 오랜 먹거리장 씨가 쓴 《음식디미방》에도 개장, 개장꼬치누루미, 개장국누루미, 개장찜, 누렁개 삶는 법, 개장 고는 법이 나와 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조선시대 혜경궁 홍 씨의 회갑연 상차림에 구증(狗蒸, 개고기찜)이 올랐다는 것을 보면, 임금님의 수라상에도 올라가는 음식이었음을 알 수 있으며, 《농가월령가》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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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계탕 초교탕, 醋鷄湯보이지 않지만 그 시절의 궁중연회를 기술한 『진연의궤』나 『진찬의궤』에는 그 이름이 버젓이 올라 있다. 정조의 어머니이자 사도세자의 비였던 혜경궁 홍씨의 회갑잔치를 기록한 『원행을묘정리의궤』에도 초계탕이 나오는 것을 보면 귀한 음식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일반의 기록에는 명월관 등을 통해 궁의 음식...
- 시대 :
- 조선
- 유형 :
- 물품
- 분야 :
- 생활/식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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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전 현판 壽靜殿 懸板를 위해 지은 것으로 본래는 전(殿)이 아닌 당(堂)이었다. 1794년(정조 18) 12월 18일에 영조 계비 정순왕후(貞純王后, 1745~1805)의 51세와 정조의 생모 혜경궁 홍씨(惠慶宮 洪氏, 1735~1816)의 회갑을 기념하여 존호와 함께 책보(冊寶)∙책인(冊印)을 올리고, 혜경궁의 환갑 잔치를 행하기 위해 전각의 명칭도 위계를...
- 분류 :
- 유물 > 현판
- 크기 :
- 가로: 152cmcm, 세로: 59cmcm
- 재질 :
- 나무 / 잣나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