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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나라 시대, 이자성의 반란반란이 더욱 거세졌다. 도망친 백성들이 갈 곳은 반란 집단밖에 없었다. 백성들이 도망치면 농촌이 황폐하여 기근이 따르게 마련이고 이 기근은 많은 농민들을 더욱 반란 집단에 가세하게 하였다. 기근이 가장 심했던 곳은 하남과 섬서 지방이었다. 섬서 지방에서는 동원된 군대에게 군량을 공급하지 못함으로써 마침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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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한 타도를 외치며 일어난 농민 대반란, 황건의 난부담을 지고 있던 백성들은 살 방도를 찾을 수 없게 되었다. 결국 백성들은 유민이 되어 소규모 봉기를 일으키기 시작했다. 당시 곳곳에서 일던 소규모의 농민 반란을 조직화해 황건의 난을 일으킨 주도 세력은 태평도(太平道)라는 종교 단체의 교주 장각(張角)이었다. 그러나 장각이 처음부터 난을 계획하고 태평도를...
- 시대 :
- 18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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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경래의 난 洪景來─亂일어난 반란이다. 조선 후기 봉건사회는 17, 18세기에 이르러 커다란 변화를 겪게 되었다. 토지 겸병이 광범하게 진전되어 지주전호제(地主佃戶制)가 양적으로 팽창되어 갔다. 특히 이앙법(移秧法)·이모작으로 대표되는 농업 생산기술의 변화, 상품화폐경제의 발달로 농민층의 분해가 촉진되었다. 이 결과 지난날의...
- 시대 :
- 조선
- 발생 :
- 1811년 12월
- 성격 :
- 반란, 민란
- 유형 :
- 사건
- 종결 :
- 1812년 4월
- 분야 :
- 역사/조선시대사
- 관련 인물/단체 :
- 홍경래, 우군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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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나라 시대, 홍건군의 반란많았기 때문에 노동력을 동원하는 데는 어려움이 없었으나 공사가 완료된 뒤 이들을 해산시킬 일이 문제였다. 중국의 내란은 엄격히 말해서 농민 의거보다는 실업자에 의한 반란이 대부분이었다는 사실은 지금까지의 역사가 증명하고 있다. 다수의 노동자를 모았다가 해산시킬 때 어떠한 결과가 나올까 하는 것이 당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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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주의 시대의 정치민주 양당은 문제해결을 위한 노력을 하지 않았다. 따라서 문제해결의 방안으로 제3당의 출현을 기대했다. 제3당의 도전은 서부와 남부의 농민반란 형태로 나타났다. 1867년의 농민공제조합 운동에 이어 1875년과 1889년 사이에 농민동맹들이 결성되었다. 1890년에 캔자스를 선두로 지역별로 인민당이 결성되어 마침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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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진의 몰락, 영가의 난기용되었다. 그리고 팔왕의 난이 종결될 즈음 이들은 드디어 각각 독립된 세력을 확립했다. 304년, 팔왕의 난과 대기근을 겪으며 유민으로 전락한 농민들의 반란이 한창이던 시기, 산서 지역의 흉노족 유연(劉淵)이 대선우를 자칭하며 한(漢)을 세웠다. 유연은 후한 시대 말 무렵 남하한 흉노의 후손으로, 그의 아버지...
- 시대 :
- 311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