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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899. 8. 13, 런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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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 1980. 4. 29, 미국 캘리포니아 벨에어 |
국적 | 미국 |
요약 <사이코>, <새> 등 서스펜스 영화로 인기를 얻었다. 1926년 살인마 잭을 소재로 한 영화 <하숙생>을 감독하면서 히치콕과 동일시된 ‘스릴러’ 영화를 만들기 시작했다. 섬세하고 사실적이며 인간심리를 철저하게 파헤친 스릴러 영화로 유명하다. 1940년대부터 자신의 영화에 카메오로 출연했다. 런던에서 태어난 히치콕은 시나리오 작가와 조감독으로 일하다 1925년 첫 작품 <쾌락의 정원>을 감독했다. 1926년 첫 스릴러 영화 <하숙생>을 감독했다. 1939년 할리우드로 가 첫 작품 <레베카>로 아카데미 최우수 작품상을 수상했다. 이후 30년 동안 할리우드에서 1년에 1편 정도의 작품을 감독했다. 1948년부터 제작도 맡기 시작했으며 1950년대에는 유명한 할리우드 배우들을 기용하고 거액의 제작비를 들인 서스펜스 영화를 만들었다. 1960년대에는 <사이코>, <새> 등 새롭고 독창적인 스릴러 영화의 제작에 관심을 기울였다. 1979년 미국영화연구소로부터 공로상을 수상했다.
서스펜스 영화로 인기를 얻었다.
런던에서 가금류 거래상의 아들로 태어난 히치콕은 세인트 이그나티우스 칼리지와 런던대학교에서 공학을 전공했다. 1920년 패이머스플레이어라스키사를 위한 타이틀 카드 도안작업을 시작으로 영화산업에 첫발을 내디뎠다. 몇 년 후 시나리오 작가와 조감독이 되었으며 1925년 첫 작품 〈쾌락의 정원 The Pleasure Garden〉을 감독했다. 1926년 자기집 하숙생을 살인마 잭(1888년 런던에서 4개월 동안 5명을 살해한 수수께끼의 인물)으로 오해해서 벌어지는 사건들을 그린 영화 〈하숙생 The Lodger〉을 감독하면서 그와 동일시된 '스릴러' 영화를 만들기 시작했다.
1929년에 제작한 〈공갈 Blackmail〉은 영국에서 최초로 성공을 거둔 발성영화였다. 1930년대에는 서스펜스 영화의 고전이라 할 수 있는 〈너무 많이 아는 사람 The Man Who Knew Too Much〉(1934)·〈39계단 The Thirty-nine Steps〉(1935)·〈사보타주 Sabotage〉(1936)·〈부인 사라지다 The Lady Vanishes〉(1938) 등을 감독했다. 1939년 영국을 떠나 할리우드로 갔으며 그곳에서 첫 작품 〈레베카 Rebecca〉(1940)로 아카데미 최우수 작품상을 수상했다.
이후 30년 동안 할리우드에서 보통 1년에 1편 정도의 작품을 감독했다.
1940년대의 주요작품은 〈의심 Suspicion〉(1941)·〈의혹의 그림자 Shadow of a Doubt〉(1943)·〈구명 보트 Lifeboat〉(1944)·〈백색의 공포 Spellbound〉(1945)·〈로프 Rope〉(1948) 등이 있다. 1948년부터 제작도 맡기 시작했으며 1950년대에는 할리우드의 유명한 남녀 배우들을 등장시켜 거액의 제작비를 들여 여러 편의 서스펜스 영화를 만들었다. 그 가운데는 〈열차 속의 이방인 Strangers on a Train〉(1951)·〈다이얼 M을 돌려라 Dial M for Murder〉(1954)·〈이창(裏窓) Rear Window〉(1954)·〈도둑잡기 To Catch a Thief〉(1954)·〈너무 많이 아는 사람〉(1955, 개작)·〈현기증 Vertigo〉(1958)·〈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 North by Northwest〉(1959) 등이 유명하다.
1960년대에는 새롭고 독창적인 스릴러 영화의 제작에 관심을 기울였는데 그중에는 〈싸이코 Psycho〉(1960)·〈새 The Birds〉(1963)·〈마니 Marnie〉(1964) 등이 대표작이다. 〈찢어진 커튼 Torn Curtain〉(1966)·〈토파즈 Topaz〉(1969)는 전통적인 스파이물인 반면 그의 마지막 작품 〈광란 Frenzy〉(1972)·〈가족의 음모 Family Plot〉(1976) 등은 그의 원래 주제로 되돌아온 작품들이다.
히치콕은 1940년대부터 매번 그의 영화에 대사 없이 잠깐씩 모습을 내비쳤다.
히치콕의 영화는 대체로 살인사건과 스파이 활동을 중심으로 진행되며 속임수·정체오인·추격장면 등이 가미되어 줄거리가 복잡하고 활기있다. 이러한 영화적 요소의 혼합은 교묘하게 비트는 유머 감각과 이따금 등장하는 섬뜩한 장면과 어우러져 완벽한 영화를 이루게 된다.
히치콕 영화의 주요 테마는 3가지로 나눌 수 있다. 그 첫째는 범죄혐의자로 오인받는 인물이 자신의 결백을 밝히기 위해 진범을 추적하는 내용으로 그의 영화에서 가장 일반적인 테마이다. 〈하숙생〉·〈39계단〉·〈사보타주〉·〈열차 속의 이방인〉·〈나는 고백한다 I Confess〉·〈도둑잡기〉·〈오인된 사람 The Wrong Man〉·〈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광란〉 등이 이 범주에 속한다. 2번째 테마는 범죄를 저지른 여인이 남자주인공을 사건에 연루시켜 그를 파멸시키거나 그로부터 구원을 받는다는 이야기이다.
이러한 테마의 영화에는 〈공갈〉·〈사보타주〉·〈오명 Notorious〉·〈레베카〉·〈현기증〉·〈마니〉 등이 있다. 마지막으로 줄거리가 전개되면서 종종 정신병자인 살인자의 정체가 드러나는 영화들이 있다. 〈의혹의 그림자〉·〈로프〉·〈이창〉·〈싸이코〉등이 이 부류에 속하며, 〈광란〉처럼 정신병에 걸린 살인자라는 테마에 무고한 혐의자의 이야기를 결합시킨 경우도 있다.
히치콕의 가장 뛰어난 재능은 서스펜스를 조성하고 이끄는 기술적인 수단의 통제력이다.
그는 혁신적인 카메라의 구도, 카메라의 움직임, 정교한 영화 편집, 효과적인 사운드트랙 등을 사용했다. 일상생활을 다룰 때뿐만 아니라 보다 무시무시한 영화에서 긴장되고 악몽과 같은 상황을 연출할 때에도 분명히 드러나듯 그는 인간심리를 철저하게 파악하고 있었다. 위협·계략·공포 등을 설득력 있게 불러일으키는 능력으로 인해 그의 심리적인 스릴러 영화는 섬세함과 사실성을 유지하면서도 관객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히치콕은 1950, 1960년대 미국 텔레비전에 인기연속물 몇 편을 제작했는데 자신이 작품 소개를 하고 일부는 직접 감독했다.
또한 그의 이름은 추리물 선집에 실리기도 했다. 1979년 미국영화연구소(American Film Institute)로부터 공로상을 수상했으며 1980년에는 엘리자베스 2세 여왕으로부터 기사작위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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