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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적·신화적 설화
예배용 그림의 주제 해석과 범위는 인간과 신의 관계에 대한 특별한 태도를 반영한다.
예를 들어 그리스도교와 불교의 벽화는 전지전능하고 신비한 존재를 형상화해 사원과 성당, 성소 내부를 지배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 그리스도교적 최후의 심판과 동양의 지옥도는 신도들에게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고자 했던 것이며 옥좌의 성모, 승천, 극락에서 내려오는 부처 등의 주제들은 구원에 대한 소망과 지복의 영원한 생명을 갖게 되리라는 믿음을 뒷받침해준다.
르네상스 인문주의 아래 서양회화를 지배했던 전제적 교회통치가 수그러들었을 때, 종교 설화는 천상세계보다 지상세계를 보여주는 창이 되었다(내러티브). 인물들 간의 관계가 사실적으로 표현되었고 옛날 옷을 입었으나 당대의 모습을 배경으로 서 있는 그리스도·사도들·성인의 살아있는 듯한 표현을 볼 수 있다. 비유적 설화 주제는 미술에서 감각적인 특성을 강조할 수 있는 것으로 푸생과 루카 시뇨렐리가 묘사한 상징적 뮤즈와 15세기 프랑스 필사본 삽화가들의 낙원동산에서 그 예를 볼 수 있다.
한편 인간에게 경고하기도 하는데, 16세기에 대(大) 피테르 브뢰헬은 〈죽음의 승리 The Triumph of Death〉·〈낙원〉 같은 그림에서 그로테스크한 상징과 준엄한 교훈을 주는 미묘한 시각적 은유를 결합했다. 〈농부의 춤〉·〈사육제와 사순절의 싸움〉같이 풍속적 주제가 뚜렷한 그림에서조차 인간의 우매함과 죄에 대한 비유를 드러내는 한편, 히에로니무스 보스는 〈성 안토니우스의 유혹〉·〈방탕아 The Prodigal Son〉 같은 전통적인 설화에 난해한 비유적 풍경을 결합시켰고 〈쾌락의 동산 Garden of Delights〉을 기쁨보다 혐오스러운 표현으로 나타냈다.
보티첼리의 말기 그림들은 염세주의적 비유를 보여 주는데 15세기 수도사이며 개혁가였던 지롤라모 사보나롤라의 영향을 받아 제작된 것으로 보인다.
〈버지니아 로마나의 이야기〉·〈루크레티아의 비극〉은 죽음에 의해서만 이룰 수 있는 덕을 표현하며, 〈아펠레스의 비방 The Calumny of Apelles〉에서는 시기·의심·비난·배신·회개·진실들이 의인화되어 중세의 배우 같은 의상과 몸짓으로 표현된다. 19세기의 유명한 우의화는 페르디낭 빅토르 들라크루아의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과 피에르 폴 프뤼동의 〈죄악을 뒤쫓는 복수와 정의〉이다. 현대의 서사적 회화의 예는 오스트레일리아의 민족적 영웅 네드 켈리를 그린 시드니 놀런의 설화 시리즈가 있다.
고대 그리스·로마 신화는 서구의 화가들에게 풍부한 이미지와 주제, 그리고 누드화를 그릴 기회를 주었다. 역사적 설화 회화는 당대사건에 대한 표현일 뿐만 아니라 고전 신화와 영웅적 전설을 표현했던 것이다. 대표적 예로는 테오도르 제리코의 〈메두사호의 뗏목〉, 프란시스코 호세 드 고야의 〈마드리드의 5월 3일〉 등이 있다.
인물
특정 개인을 묘사한 가장 오래된 인물 초상은 이집트 왕조의 석관에 그려진 엄숙하고 이상화된 얼굴들이다.
그러나 고대 로마의 미라 초상은 실물과 어느 정도 비슷한 경향을 보여준다. 초상이 회화에서 가장 커다란 성과를 거두고 있다고 할지라도 예술가가 동시대인을 그릴 때 전체적인 주제는 특수한 문제점을 야기한다. 라파엘로, 루벤스, 앙투안 장 그로, 자크 루이 다비드 등의 화가들이 그린 후원자의 초상은 고상함·품위·권위를 표현할 것을 요구받았던 것이다.
그러나 로베르 캉팽, 알브레히트 뒤러, 얀 반 에이크, 디에고 로드리게스 벨라스케스, 고야, 귀스타브 쿠르베같이 객관적 사실주의자들이 그린 설득력 있는 초상에서는 모델의 자존심과 사회적 지위에 대한 배려가 무시되어 있는 것 같다. 초상화와 평범한 사람들을 그린 습작 중 가장 훌륭한 것은 렘브란트와 반 고흐의 작품으로, 심리적 통찰, 감정이입, 미적 가치 등이 돋보인다. 그러나 사진이 발달하면서 세잔과 조르주 브라크가 대상에 대한 구조적 탐구를 위해 주제를 사용하거나, 아메데오 모딜리아니, 섕 수틴, 프랜시스 베이컨같이 카메라의 범위를 넘어 개인적 시각의 표현으로 주제를 사용한 것 외에는 진지한 예술형태로서의 목적으로 그려진 초상화는 크게 줄어들었다.
풍속
풍속화는 일상의 장면들을 그린 것이다.
선사시대 바위그림에는 사냥 장면이나 종족 번성을 위한 주술적 장면이 그려져 있다. 극동지방의 부채, 병풍 그림에는 궁정의 예식, 마을의 혼잡함, 시골의 궁핍함이 탁월하게 나타나 있다. 세상사에 대한 묘사는 그리스도교 교회의 엄격한 규정에 따라 금지되었으나 중세의 기도서에 그려진 삽화에는 북유럽 사회의 축제와 일상을 아름답게 기록하고 있다. 르네상스 회화에서 통속적 주제들은 초상과 역사 설화의 배경으로 제한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가상적 장면들은 브뢰헬에게는 도덕적 비유의 주제가 되었으며 렘브란트에게는 극적인 종교주제의 감정을 대비적으로 강조하는 데 사용되었다.
북유럽에서 미술에 대한 교회의 후원이 줄어들자 화가들은 세속적 주제에 관심을 쏟게 되었다. 17세기 홀란트에서 전성기를 맞은 풍속화는 실내에서 대화하는 모습이나 일 또는 놀이 장면을 그린 소(小)다비드 테니르스, 프란스 할스, 얀 스텐, 피테르 데 호흐, 아드리안 반 오스타데, 얀 베르메르 등의 작품으로 대표된다. 전원생활을 그린 그림들은 18세기 프랑스와 영국에서 수집가들을 매혹시켰는데 장 바티스트 그뢰즈, 부셰, 조르주 모를랑, 토머스 게인즈버러가 그린 아름다운 농촌생활이었다.
그러나 장 바티스트 시메옹 샤르댕의 그림에 나타난 하인과 아이들은 시대를 초월한 위엄과 당당함을 보여준다. 일하는 사람들을 그린 화가로는 장 프랑수아 밀레, 오노레 도미에, 쿠르베, 반 고흐, 드가 등이 있으며, 카페나 연예장의 쾌활함은 로트레크, 존 슬론, 에버렛 신, 월터 리처드 시커트가 포착했고 친근한 가정의 모습은 보나르와 뷔야르가 그렸다. 현대의 풍속화 경향으로는 미국 풍경화가들, 애시캔파, 키친싱크파, 캠던타운 그룹, 유스턴로드 그룹, 영국과 미국의 사회사실주의 등이 있다.
풍경
고대 로마의 대저택 장식에는 이상적인 풍경을 그린 프레스코가 많이 쓰였다.
풍경화는 극동아시아 지역에서 오래전부터 크게 발달했는데, 특히 중국의 화가들은 계절의 변화와 자연의 힘 등에 정신성을 부여했다. 유럽 최초의 자연주의적 풍경화는 뒤러와 브뢰헬에 의해 그려졌다. 그러나 대체로 르네상스 미술에서 풍경은 초상 등 주제의 배경으로서만 나타났다. 서양에서 풍경이 독립된 주제로서 두드러지게 사용되었던 것은 네덜란드 및 플랑드르 회화에서였다. 19세기 회화의 가장 획기적인 발전은 인상주의, 신인상주의, 후기인상주의 등의 풍경화를 통해 이루어졌다.
현대의 풍경화로는 도시와 강을 그린 오스카 코코슈카, 빛의 표현을 위해 풍경화를 그린 모네, 에두아르 마네, 피에르 오커스트 르누아르, 알프레드 시슬레, 쇠라, 세잔 등 여러 인상주의 화가들과 바실리 칸딘스키의 상상적 풍경화, 비에이라 다 실바, 니콜라 드 스탈 등의 추상적 풍경 등을 들 수 있다.
정물
회화에서 정물은 종종 구도에 있어서 부차적 요소로 나타난다.
극동예술에서는 이미 오래 전부터 있었지만 서구에서는 17세기에 이르러서야 정물화가 독자적인 장르로 발전했다. 특히 네덜란드에서 널리 그려졌던 바니타스가 그 좋은 예이다. 당시 화가들은 정물 소재를 선택함에 있어서 종교적·문학적 의미와 연결시켰는데, 일반적으로 포도주·물·빵은 수난을, 해골·모래시계·촛불은 인생의 덧없음을, 꽃과 과일은 계절을 상징했다. 특히 일본의 화가들과 오딜롱 르동, 폴 고갱, 반 고흐를 비롯한 19세기 유럽 화가들은 꽃에 정신적·감정적 의미를 부여했다(플라워 페인팅). 정물은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되어왔는데, 윌리엄 하네트의 눈속임 환각주의, 앙리 루소, 세라핀, 마티스, 라울 뒤피 같은 현대화가들의 장식적 형태, 피카소, 후안 그리스, 윌리엄 스콧의 반추상적 구성, 샤르댕, 세잔, 조르주 모란디의 위풍당당한 정물 등을 들 수 있다.
기타
고대로부터 동물과 새는 회화의 기본 주제로서 상징적 중요성을 나타냈다.
예를 들어 선사시대 동굴과 이집트 왕조의 분묘회화에서는 동물이 인간보다 더 사실적으로 그려져 있다. 다른 사람의 작품을 유명한 화가가 재해석하여 그리는 경우 이는 고전적 의미에서의 모사보다는 창조적인 개작으로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젠틸레 벨리니의 〈질투심 많은 남편〉을 드가가, 또한 마네의 〈풀밭 위의 식사 Déjeuner sur l'herbe〉와 벨라스케스의 〈시녀들 Las Meñinas〉과 들라크루아의 〈알제리의 여인들〉을 피카소가 개작한 것 등은 그 나름대로 독창적인 작품으로 감상될 수 있다.
추상회화는 아무런 재현적 의미도 갖지 않는 순수한 형식요소로서의 선·형태·색채를 통해서만 표현된다.
그러므로 추상회화의 주제는 창조적인 회화 자체에 관한 제안이거나, 병치된 색채, 형태, 그리고 이러한 요소들 사이의 상호적인 운동감, 긴장, 시각적 변형과 공간적 다의성을 보여주는 회화의 형식요소에 관한 제안일 수 있다. 추상회화는 시각적·형식적인 측면에 주로 의존하며 상승·하락, 전진·후퇴, 균형, 부동, 해체, 재편성하는 듯이 보이는 환영적 형태와 색채를 통해 관람자에게 물리적·감정적 반응을 불러일으킨다.
즉 기쁨·슬픔·평화 등의 전조를 만들어내는 분위기나 빛의 효과, 진동하는 운동감이 주는 효과이다. 특정한 시간·장소·사건의 분위기를 연상하게 하는 추상회화에서는 그 제목도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예를 들면 〈판초 빌라, 죽음과 삶〉(로버트 머더웰)·〈늦은 아침〉(브리짓 라일리)·〈브로드웨이 부기우기〉(피테르 몬드리안)·〈변하기 쉬운 형태〉(칸딘스키) 등이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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