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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861. 6. 19, 에든버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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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 1928. 1. 29, 런던 |
국적 | 영국 |
요약
제1차 세계대전 때의 프랑스 주둔 영국군 총사령관, 육군 원수.
Viscount Dawick Baron Haig of Bemersyde라고도 함.
그의 소모전술('독일군을 더 많이 죽여라'로 요약됨)은 1916~17년에 별 소득 없이 엄청난 수의 영국군 희생자를 내 그를 논쟁에 휩싸이게 했다.
샌드허스트에 있는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한 뒤, 수단(1898) 및 보어 전쟁(1899~1902)에 참전했으며 인도에서는 행정직을 맡았다. 1906~09년에 육군부 군사훈련국장으로 근무하는 동안 리처드 버든 홀데인 국방 장관을 도와 참모부를 설립했고 국방 의용군을 쓸모 있는 예비군으로 만들었다. 또한 유럽 본토에서 앞으로 일어날 전쟁에 대비해 원정군을 조직했다.
1914년 8월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자 제1군단을 이끌고 북부 프랑스로 진격했으며, 1915년초에 제1군 사령관이 되었다. 같은 해 12월 17일 존 프렌치 경(뒤에 이프르 백작 1세)의 뒤를 이어 영국 원정군의 총사령관이 되었다. 1916년 6~12월에 솜 강에서 대규모 공격전을 감행했으나 42만 명의 영국군 희생자를 내고 실패로 끝났다.
다음해 프랑스는 미국이 대규모로 참전(1917. 4. 6)할 때까지 수비 태세를 취하기로 결정했다. 헤이그는 프랑스와 벨기에의 플랑드르 지방에서 영국군 단독의 공격으로 독일군을 격파하기로 결심했다. 그 결과 패스상델 전투라고도 불리는 제3차 이프르 전투(1917. 7~11)에서 엄청난 전사자를 내어 솜 강 전투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영국민들을 경악시켰다.
그는 공격 목표인 벨기에 해안에는 도달하지 못했으나, 독일군의 전력을 약화시키고 1918년 독일군을 패배시키는 결정적인 기틀을 마련했다. 1916년말 육군 원수로 승진한 뒤 계속해서 영국 왕 조지 5세의 꾸준한 후원을 받았지만 그해 12월 총리가 된 데이비드 로이드 조지의 지지는 받지 못했다. 1916년 12월부터 1917년 5월까지 서부전선 연합군 최고사령관인 프랑스의 로베르 니벨르 장군 휘하에 예속된 것을 못마땅하게 여겼다.
그러나 1918년 3월 헤이그는 또다른 프랑스 장군인 페르디낭 포슈를 연합군 총사령관으로 임명시키는 데 성공했다. 이 2명의 장군은 서로 협력했고, 헤이그는 니벨 휘하에 있었을 때와는 달리 영국군에 대한 완전한 작전지휘권을 행사했다. 1818년 3~7월에 있었던 독일군의 마지막 총공세를 저지하는 데 일조했으며, 8월 8일에 시작되어 연합군의 승리로 이끈 대반격에서 뛰어난 지도력을 보여주었다. 전쟁이 끝난 뒤에는 영국 재향군인회를 조직해 궁핍한 상이군인을 위한 돈을 모금하려고 대영제국 도처를 돌아다녔다.
1919년 백작작위를 받았다. 그의 전기로는 존 차터리스가 쓴 〈육군 원수 헤이그 백작 Field Marshal Earl Haig〉(1929), 더프 쿠퍼의 〈헤이그 Haig〉(2권, 1935~36), 로버트 블레이크가 편집한 〈더글러스 헤이그의 개인 문서, 1914~19 The Private Papers of Douglas Haig, 1914~1919〉(1952)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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