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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860. 1. 29, 영국 링컨셔 웰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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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 1933. 2. 12, 런던 |
국적 | 영국 |
요약 영국의 육군원수.
제1차 세계대전중 대부분의 기간을 대영제국 참모총장으로 있으면서 프랑스에 파견된 영국군 총사령관 더글러스 헤이그 경을 지지해 서부전선에 병력을 집결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로버트슨은 11년간 사병으로 복무한 뒤 1888년에 장교로 임관되었다. 1896년까지 인도에서 복무하다가 사병 출신 장교로는 최초로 서리 주(州) 캠벌리에 있는 참모대학을 수료했다(1897). 보어 전쟁(남아프리카 전쟁, 1899~1902) 때는 정보부에서 일했으며, 그후 참모대학 총장(1910)과 육군성 군사훈련 국장(1913)을 역임했다.
제1차 세계대전초부터 그는 프랑스에 파견된 영국 원정군의 병참감으로 일했다. 1915년 1월 존 프렌치 경의 참모장으로 임명되었고, 같은 해 12월 대영제국 참모총장이 되었다. 참모총장으로서 그는 육군장관이 갖는 대부분의 권한을 갖게 되었다. 로버트슨과 헤이그는 서부전선에서 승리를 거둘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또 반드시 거둬야 한다고 주장한 반면, 1915년 후반에 육군장관을 역임한 데이비드 로이드 조지는 그들과 의견을 달리해 연합군이 중동전선에서 공격을 개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두 장군과 그들의 상관이었던 민간인 정치가 사이의 반목은 1916년 12월 로이드 조지가 총리로 임명된 뒤 더욱 심해졌다. 1918년 2월 마침내 로버트슨은 대영제국 참모총장을 사임하고 영국군 사령관으로 임명되었으며, 1919~20년에는 라인 강 지역에 주둔하고 있는 영국 점령군을 지휘했다.
로버트슨은 1919년 준남작의 작위를 받았고, 1920년 육군원수가 되었다. 그는 〈사병에서 육군원수까지 From Private to Field-Marshal〉(1921)·〈군인과 정치가 1914~18 Soldiers and Statesmen 1914~18〉(1926) 등의 회고록 2권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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