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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세기 헝가리는 여전히 3개의 지역으로 분할되어 있었다. 투르크의 지배하에 있던 곳은 헝가리 문학의 발전에 어떠한 역할도 하지 못했다. 합스부르크 치하의 헝가리는 이탈리아 및 독일의 로마 가톨릭 문학을 접하고 있었으며 트란실바니아는 네덜란드와 영국의 프로테스탄트 사상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었다. 17세기 대표적인 프로테스탄트 학자이자 작가는 야노슈 오파차이 체레였다. 그의 주요작품은 당대의 지식을 망라하고자 했던 헝가리어 백과사전으로, 1653년 위트레흐트에서 출판된 이 책은 기술 어휘의 발전을 말해준다.
16세기말경 반종교개혁이 서부 헝가리에서 활발히 일어났다. 예수회 추기경이자 헝가리 산문의 거장인 페테르 파즈마니는 웅변가이자 평론가로 두각을 나타냈다. 〈거룩한 진리의 길잡이 Isteni igazságra vezérl kalauz〉(1613)는 비가톨릭적 교리에 대한 반박이며 바로크 산문의 걸작이다. 예수회의 영향으로 많은 헝가리 귀족은 가톨릭으로 귀의하고 자식들을 오스트리아의 가톨릭대학교나 로마로 보냈다. 이탈리아 바로크, 특히 타소와 마리노의 영향은 헝가리의 위대한 정치가이자 군사령관인 미클로슈 즈리니의 작품에 분명히 나타난다. 그의 가장 큰 문학적 업적은 15편으로 이루어진 서사시 〈시게트의 운명 Szigeti veszedelem〉(1651)이다. 또다른 시인 이슈트반 디왼디외시는 장편 이야기체시와 많은 축혼가를 썼다.
1700~70년의 헝가리 문학은 쇠퇴하면서 서서히 확립되어갔다. 회고록은 이 시기 산문문학에서 가장 뛰어난 형식이다. 트란실바니아의 지도적 정치가인 미클로슈 베틀렌의 자서전과 유배당한 트란실바니아의 공(公)이자 1703~11년의 반합스부르크 봉기의 지도자인 페렌츠 라코치 2세가 각각 라틴어와 프랑스어로 쓴 고백록과 회고록이 흥미있다. 이 시기 시에 관해서는 라슬로 오모데의 로코코 양식 시와, 다재다능한 시인이자 번역가인 페렌츠 폴루디의 민요를 채용한 시를 빼면 별로 언급할 것이 없다. 문학이 쇠퇴한 이 시기에는 단지 역사서나 역사소설이 주목할 만하며 일부 작품은 라틴어로 씌어졌다.
헝가리 최초의 문학사가인 다비트 츠비팅게르는 300여 명의 헝가리 작가들의 전기를 썼고 페테르 보트가 그의 작업을 이어받아 〈헝가리 아테나이움 Magyar Athénás〉(1766)에서 500명 이상의 헝가리 문인을 다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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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um백과] 17세기 헝가리 문학 – 다음백과, Da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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