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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카소는 초현실주의 운동의 공식 회원이 되지는 않았으나 이 운동과 긴밀한 유대를 가졌다. 앙드레 브르통을 비롯한 초현실주의자들은 그를 그룹의 일원으로 받아들였고, 그의 예술은 초현실주의 작가들과 가깝게 지내면서 새로운 차원을 획득했다. 〈아비뇽의 처녀들〉 이래로 피카소의 작품에는 초현실주의가 주창한 많은 요소들이 내재해 있었다.
예를 들어 입체파 작품에서 불연속적인 윤곽선으로 인물을 묘사하거나 인물의 형상을 혼란스럽게 병치해놓은 것에서 확실히 기괴한 형상의 창조를 볼 수 있는데, 브르통은 특히 〈속치마 차림의 여인 Woman in a Chemise〉(1913)에 주목했다. 또한 어떤 것에서 다른 것을 해독해내는 종합적 입체주의의 개념은 초현실주의자들이 옹호한 꿈 같은 이미지와 상통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초현실주의 운동이 피카소에게 끼친 영향은 무엇보다도 새로운 주제, 특히 호색적인 주제의 선택이었다. 공공연히 관능적이고 왜곡된 형태들로 이루어진 목욕하는 여인이라는 주제의 수많은 작품들(연작 〈디나르 Dinard〉, 1929)은 분명히 초현실주의의 영향을 보여주며, 반면에 관람객들에게 왜곡된 정서를 불러일으키는 다른 작품들은 초현실주의의 심리적인 목표들 가운데 하나를 성취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예를 들어 1930~35년의 소묘 및 회화 연작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 Crucifixion〉).
1930년대에 그는 많은 초현실주의 작가들과 마찬가지로 변형이라는 개념을 종종 주제로 삼았다. 예를 들면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괴물인 미노타우로스는 인간과 짐승간의 투쟁을 상징했는데 피카소의 작품에는 그러한 생각을 구현하고 있는 동시에 일종의 자화상 구실을 한다.
마침내 피카소는 시를 써서 가장 강력한 초현실주의를 표현했다. 그는 1934년에 시를 쓰기 시작했고 1935년 2월에서 1936년 봄까지 1년간 사실상 회화를 포기한 상태로 시쓰기에만 매달렸다. 그의 시들은 〈카예 다르 Cahiers d'Art〉(1935)와 〈라 가세타 데 아르테 La Gaceta de Arte〉(1936, 테네리페)에 발표되었다. 몇 년 뒤에 그는 초현실주의 희곡 〈꼬리 잡힌 욕망 Le Désir attrapé par la queue〉(1941)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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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um백과] 피카소와 초현실주의 – 다음백과, Da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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