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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경남도의 연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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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래 북부여(北夫餘)·숙신(肅愼)의 땅이었다가 뒤에 옥저의 영토가 되었다. 나중에 위만조선에 속했으며, BC 108년 한4군(漢四郡)이 설치되면서 현도군에 속했다가 313년 고구려의 미천왕에 의해 고구려의 영토로 수복되었다. 540~576년 신라 진흥왕에 의해 함주·이원 등 마운령과 황초령 남부일대가 신라의 영토가 되었으나 668년 고구려 멸망 후 북부는 한때 당(唐)의 점령하에 있었으며, 699년 발해의 건국과 함께 전지역이 발해의 영토가 되었다.

926년 발해가 멸망한 후 오랫동안 여진의 주거지로 방치되다가 고려의 북진정책으로 여진을 정벌하고 9성을 쌓는 등 이 지역을 수복했으나, 1115년 다시 여진족이 세운 금에게 예속되고 1258년 원(元)의 쌍성총관부(雙城摠管府) 치하에 들어갔다. 원이 멸망한 후 명이 3위(衛)에 속했으나 여전히 여진의 세력하에 있었다. 고려조를 통해 이 지역은 995년 삭방도(朔方道), 1029년 동계, 1047년 동북면, 1178년 연해명주도(沿海溟州道) 등으로 불렸으며, 1356년(공민왕 5)에 강릉삭방도라고 했고, 1388년(우왕 14)에는 삭방도를 분리했다.

조선시대에 들어와 1413년에는 영길도(永吉道), 1416년에는 함길도(咸吉道)로 부르다가 1477년 영안도(永安道)라고 했으며 1509년 함경도로 개칭되었다. 1895년 23부를 설치할 때 함흥과 갑산이 부가 되고, 1896년 13도로 분계할 때 함경북도와 갈라져 함경남도가 되었다. 1945년 8·15해방 당시의 행정구역은 함흥시·흥남시·원산시와 함주군·정평군·영흥군·북청군·고원군·문천군·안변군·홍원군·이원군·단천군·신흥군·장진군·풍산군·삼수군·갑산군·혜산군 등 3개시 16개군 10개읍 118개면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1946년 원산시와 안변군·문천군을 분리하여 강원도에 편입시키면서 14개군이 되었으나 1952년 북한 행정구역 개편 때 16개군을 신설하여 30개군이 되었다. 1954년 혜산군·운흥군·갑산군·삼수군·신파군·풍서군·풍산군·부전군 등이 신설되는 양강도로 통합되었으며, 낭림군을 자강도로 넘기고 평안남도의 대흥군을 편입했다.

1960년 흥남시·퇴조군·함주군의 일부와 오로군의 일부를 함흥시로 편입하여 직할시로 승격시켰으며, 신포군은 시로 개칭되었다. 1904년 양강도에서 부전군이 이관되고 1970년 덕산군과 퇴조군을 신설하고 1972년 대흥군은 다시 평안남도 소속이 되었다. 1974년 인흥군·신창군·흥삼군·수동군·덕산군·광천군이 폐지되었다. 1982년 단천군이 시로 승격되었으며, 퇴조군은 낙원군으로 개칭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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