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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신라 때부터 전해지던 당악은 고려 때는 더욱 풍성해져 광종 때 송나라에 사신을 보내 악공을 청하고 1076년(문종 30)에는 대악관현방(大樂管絃房)을 정했다. 이때 들어온 당악정재는 포구락(抛毬樂)·구장기별기(九張機別技)·왕모대가무(王母隊歌舞)·헌선도(獻仙挑)·수연장(壽延長)·오양선(五羊仙)·연화대(蓮花臺)·답사행가무 등이며, 향악정재와는 달리 죽간자(竹竿子) 2명이 무원을 인도하여 구호(口號)를 읊으며 입퇴장하는 것이 특징이다.
송나라의 새 음악을 받아들인 후 당나라 속악은 폐용되고 1114년(예종 9) 송나라의 등가(登歌)·헌가(軒架) 악기가 수입되고 1116년 대성아악이 수입되었다. 또 음악에 수반되는 일무(佾舞)와 무의·의관·의물이 함께 들어왔는데 이로써 고려의 음악은 크게 재편되었다. 이는 송나라 휘종에게 주청하여 받아들여진 것으로 아악을 청하러 간 사절단은 송나라에 머물면서 아악을 교습받고 대성부에서 펴낸 악보를 받아왔다. 그러나 음악과 일무가 우리나라에 잘 맞지 않아 형식만 따르는 폐단이 있기도 했다. 후에 이 음악은 원구(圓丘)·사직(社稷)·선농(先農)·선잠(先蠶)·공자묘(孔子廟) 등의 제향악에 채택되었다. 고려의 향악은 속악(俗樂)이라 불렸는데 〈고려사〉 악지에 통일신라의 전통을 계승하여 신라악·고구려악·백제악 각각 5곡이 이때까지 전해졌음을 알 수 있다(→ 향악). 특히 사뇌의 전통이 계승되었고 중기에는 〈정과정 鄭瓜亭〉이라는 금곡(琴曲)이 나타난다. 〈정과정〉은 진작(眞勺)의 전반부와 같아서 그 음악내용도 비슷할 것으로 추측된다. 고려 후기 향악의 가장 큰 특징은 별곡(別曲)이라는 독특한 형식의 음악이 생겨난 것인데 8장의 〈한림별곡〉이나 13장의 〈청산별곡〉에 이르기까지 여러 장으로 된 음악이 나타났다. 또 하나의 특징은 1장의 음악으로 반복되는 유절형식의 장가(長歌)가 생겨난 것이다. 그러나 〈서경별곡〉·〈만전춘〉·〈이상곡〉·〈쌍화점〉 등의 속악은 조선 초기에 가사가 남녀상열지사라는 이유로 잡스럽게 여겨져 가사를 잃었고 다만 그 음절이 조선 초기 궁중음악으로 차용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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