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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이 한국의 과학전통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상당히 최근의 일이다.
과학이라는 인간활동이 어느 정도 독자적 분야로 인정되고 또 그 중요성에 눈뜨기 시작한 개화기 이후에서야 부분적이나마 한국과학사에 대해 지식인들이 관심을 갖게 되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1880년대에 집필되어 1895년에 출판된 유길준의 〈서유견문 西遊見聞〉에는 조선의 과학기술이 낳은 성과로 고려자기·거북선·금속활자를 들고 있다. 그는 만약 후손들이 이런 전통을 연구·발전시켰더라면 지금 세계의 영광이 조선에 돌려졌을 것이지만, 후손들이 그렇게 하지 못했음을 안타까워하고 있다.
그후 애국계몽의 시대에서 일제강점기까지 한국과학사에 대한 관심은 대체로 2~3갈래에서 진행되었다. 첫째, 서양 선교사 등 서양 아마추어들에 의해 여러 부분의 한국 과학유물이 주목을 받기 시작하는 경우였다. 부츠의 화포, 언더우드의 선박, 루퍼스의 천문학연구 등은 서울의 왕립학회 한국지부를 중심으로 발표되었다. 둘째, 일본인 학자들에 의해 호기심이나 한국의 행정 관여 속에 취미삼아 한국과학사에 관심을 갖게 되는 경우였다. 인천측후소에 근무하던 일본인 기상학자 와다 유지[和田雄治]가 한국 역사에 많이 남아 있는 자연현상에 대한 기록을 주목하고, 첨성대와 측우기에 대해 간단한 논문을 쓴 경우가 이에 속한다.
셋째, 이 시대 한국인들의 활동을 들 수 있다. 학문적 접근에 미숙했던 한국인 관심자들이 제대로 구성된 논문으로 한국과학사를 다루는 일은 적었지만, 때로는 아주 강력하게 한국의 과학전통에 애착심을 보였고, 또 이를 드러냈다. 최남선이나 그밖의 조선 문화를 자랑하려던 당시의 한국인들은 대개 비슷한 경우였다. 단편적이던 한국과학사에 대한 이런 관심의 표현은 1944년 홍이섭의 〈조선과학사 朝鮮科學史〉로 정리되기에 이른다.
원래 일본어로 씌어졌던 이 책은 해방과 함께 1946년 한국어로 번역되어 정음사에서 간행되었다. 홍이섭은 백남운(白南雲)의 〈조선사회경제사 朝鮮社會經濟史〉를 인용하면서 삼국시대를 노예제사회라 설명하고 고려 이후를 봉건사회라 규정한다. 그러나 실제로 그의 사회경제적 입장이 그의 과학기술사 서술에 그리 중요한 영향을 미친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그의 공헌은 주로 사료의 시대별 발굴과 정리에 그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의 뒤를 이어 나온 대표적 한국과학사의 저작으로는 전상운의 〈한국과학기술사 韓國科學技術史〉(1966)와 이를 보충해서 출판한 같은 이름의 책(1975)을 들 수 있다. 이 책은 그후 일본어 번역판이 나왔고, 1974년에는 미국에서 영어판이 나오기도 해 한국과학사의 국제화에 크게 이바지했다.
그런데 홍이섭과는 대조적으로 전상운은 시대구분 없이 한국의 과학기술 전통을 몇 가지 영역으로 구분해 기술하고 있다. 역사적 개관보다는 과학기술의 유물 등을 소개하는 데 강점이 있다. 그 대신 전상운은 문고판으로 〈한국의 과학사〉(1977)를 출판해 그의 저술을 시대별로 요약, 재구성해냈다. 1982년 출간된 박성래의 〈한국과학사 韓國科學史〉는 첨성대, 세종대의 과학, 실학 속의 과학 등 한국과학사의 중요한 주제 10여 가지를 다루고 있다.
1982년 출간된 전병기 편저의 〈한국과학사〉도 홍이섭·전상운의 저서와 〈한국문화사대계 Ⅲ : 과학기술사편〉(1968)을 엮어낸 것이다. 이 책에는 농업기술·어업기술·생물학·체신·천문기상·지리·의학·조선·인쇄·수학 등이 들어 있어 한국과학사의 분야별 서술을 함께 모은 업적으로 꼽을 수 있다.
1977년 출판된 〈한국현대문화사대계 Ⅲ : 과학기술사편〉에는 과학교육·수학·물리학 등 모두 21개 분야에 결친 현대 과학기술사가 기술되어 있는데 주로 최근의 각 분야 전개 과정이 소개되어 있다. 그밖의 분야별 업적으로는 의학의 김두종과 삼목영, 조선의 김재근, 수학의 김용운, 천문학의 이은성과 유경로, 도량형의 박흥수 등을 들 수 있다. 한국의 과학사 연구는 아직도 아마추어의 단계에 머물고 있는 형편이다.
북한의 경우 과학기술을 대단히 중시해서 역사연구소의 〈조선문화사〉(1977)는 모든 장을 과학기술에 대한 서술로 시작해 미술·문학·음악·무용으로 이어진다. 그러나 이처럼 과학기술을 중시하면서도 실제로 과학기술사 연구에서 뚜렷한 학문적 성과를 낸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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