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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고려와 조선시대 중앙의 제반 경비 업무를 주관하던 관청.
고려 문종(1046~83 재위) 때 개경에 설치되어 국가재정을 주관했던 좌창(左倉)·우창(右倉) 가운데, 우창은 주로 공상미(供上米)를 관장하면서 전쟁과 가뭄·홍수 등 자연재해에 대비한 양곡을 관리했다.
우창은 1308년(충렬왕 34) 충선왕에 의해 풍저창으로 개칭되고, 공상미(供上米)를 관장하게 되었다. 관리로 사(使:정5품)·부사(副使:정6품)·승(丞:정7품)을 각 1명씩 두었다. 공민왕 때 관원의 품계를 각각 1등급씩 낮추면서 주부(主簿:종8품)를 새로 두었다. 조선 개국 뒤에도 설치되어, 전국에서 수납되는 미곡·종이·자리 등을 관리하면서 제사(祭祀)·빈객·전역(田役)·상황(喪荒) 등을 주관했다.
1405년(태종 5) 6조체제의 강화로 인해 호조의 관할이 되었다. 본창(本倉)은 한성부 북부 의통방(義通坊)에 있었고, 관원은 사·부사·승·주부를 두었다가, 1414년 수·주부·직장·봉사·부봉사 각 1명씩을 두게 했으며, 서리 10명이 딸려 있었다.
창고인 강창은 용산과 서강에 있었는데, 경비가 엄했으며 미곡을 출납할 때는 포도청에서 부장(部長)을 파견하여 경비하게 하고 공물을 바치는 사람에게는 부신을 발급하여 출입을 제한했다. 뒤에 장흥고(長興庫)에 폐합되었는데, 내시의 녹봉, 노인들의 세찬, 사신들의 사미(賜米)를 관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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