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과사전 상세 본문
요약 19세기에 번성한 수단 서부의 이슬람 신정국가(神政國家).
풀라니인들의 기원은 분명하지 않으며 14세기에 하(下)세네갈의 푸타토로에서 동쪽으로 영역을 확장했다. 16세기에 이미 마시나(나이저 강 만곡부로부터 상류 지역)에 자리를 잡고 동쪽의 하우살란드로 진출했으며 일부 집단은 19세기에 카메룬 북부의 아다마와에 정착했다. 많은 풀라니인들은 목축생활을 계속했으나 일부, 특히 하우살란드 사람들은 유목생활을 청산하고 도시에 정착해 이슬람으로 개종했다.
1790년대에 들어와 북부의 하우사족 국가 고비르(소코토의 북동쪽)에 사는 풀라니족 신학자 우스만 단 포디오(1754~1817)는 왕들과 불화를 빚었다. 그는 하우사족 통치자들을 이교도와 다를 것이 없다고 비난하고 반란을 촉구했다. 하우사족 평민과 목축생활을 하던 풀라니인들이 합세한 이 '지하드'[聖戰]는 하우살란드 전역을 휩쓸었으며 단지 동쪽에 있던 카넴-보르누 왕국에게만 격퇴당했을 뿐 남쪽으로 아다마와·누페·요루발란드를 수중에 넣었다.
풀라니족이 오요 제국의 북쪽 지방을 침략한 뒤 북동쪽의 일로린에 있는 토후국은 요루바인들에게 이슬람을 전파하는 근거지가 되었다. 정치가라기보다는 학자에 가까웠던 우스만은 제국의 동쪽 부분 가운데 쓸 만한 지역은 소코토에 자리잡은 아들 무하마드 벨로에게 주었고, 서쪽 부분(그완두에 수도를 둠)은 자신의 형제인 아브둘라히에게 주었다. 이 3명은 보르누에 대한 비난을 계속했다. 풀라니 제국은 무하마드 벨로 시대에 전성기를 이루었는데 그는 우스만처럼 이슬람 법의 원칙에 따라 국가를 운영했다. 그러나 이러한 체제가 쇠퇴하면서 19세기말 영국은 별로 힘들이지 않고도 뒤에 북부 나이지리아로 알려지게 된 지역에 대한 지배권을 확고히 할 수 있었다.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저자 또는 제공처에 있으며, 이를 무단으로 이용하는 경우 저작권법에 따라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