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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현대 페르시아어(파르스어)로 씌어진 문학.
아랍어 글자와 아랍어에서 차용한 낱말로 씌어진 페르시아어 형태는 9세기에 나타났고, 지역적으로는 북동부 이란에서 이 경향이 두드러지며, 이란과 북부 인도에서 페르시아어의 문학적 형식이 확립되었다.
7세기에 아랍인의 이란 정복 이후 이슬람은 지배적인 종교로서 정통 조로아스터교 교리와 그 부류의 이단파를 대치시키는 한편 불교, 네스토리우스 그리스도교, 마니교(이들 종교는 후에 문학작품의 주제와 비유적인 표현에 눈에 띌 정도로 영향을 끼침) 등 소수파 종교를 쇠퇴시켰고 아랍어는 법과 문화의 언어가 되었다.
그러나 9세기에 페르시아인의 정치적 부활로 문학어로 페르시아어가 다시 사용되기 시작했고 특히 북동부 이란에서는 현대 페르시아어 또는 신페르시아어로 알려진 방언이 문학에 사용되기 시작하면서 이란과 북부 인도에서 사용하는 페르시아어의 문학적 형태로 자리잡았다. 이란인 사이에서 보존되어온 고유의 구어체 방언에 대한 연구와 지식인계층이 쓰는 아랍어(어휘가 훨씬 많은)에 대한 20세기 중반의 연구 조사로 이 언어의 초기 형태의 예들이 밝혀졌다. 현대 페르시아어로 씌어진 초기작품들은 칭송과 기쁨을 나타내는 수단인 시로 되어 있는데 아랍어 요소는 거의 없다. 아랍어를 번역한 산문들이 소개되면서 수사적 기법을 아랍 문학 관습에 기초를 두는 동시에 더 많은 아랍어 단어와 그 문학적 기법을 인용했다.
페르시아어 시의 가장 오래된 주요 장르는 칭송시와 애도시인데 카시다 형식을 따랐으며 이 장르의 최고 시인은 사만 왕조 나스르 2세(913~943 재위) 치하에서 활약했던 루다키였다. 곧이어 발달된 다른 시 형식은 짧은 서정시인 '가잘'인데 술을 주제로 한 송시와 뒤에 발달된 연애시로 이어진다. 이 두 카시다와 가잘 형식의 시는 단일 각운시였다.
각운의 2행 연구(連句)인 마스나위의 도입은 단일 각운의 제약에서 해방되는 효과와 서사시 및 긴 교훈시의 작성을 가능케 해주었다. 로바이, 즉 4행연구(四行連句) 시처럼 마스나위는 순전히 페르시아어에서 발달된 시로서 여타 시형식과는 달리 아랍 시에서는 알려져 있지 않다.
시와 마찬가지로 페르시아 산문의 기초는 사만 왕조 시대에 확립되었다. 963년에 알 만수르 1세 치하의 재상 발아미는 앗 타바리의 유명한 연대기의 페르시아어 요약 번역본을 출판했다. 같은 시기에 트란스옥사니아로부터 온 일단의 신학자들은 앗 타바리의 다른 위대한 작품인 〈코란 Qur'ān〉 해설서를 페르시아어로 발간함으로써 페르시아어도 종교서적 집필에 적합함을 입증시켰다.
알 만수르 1세는 또한 헤라트 출신인 아부 만수르 무와파크에게 최초의 페르시아어 의학서인 약학 사전의 출판을 의뢰하기도 했다. 방대하고 미묘한 전문용어를 새로 도입해야 하는 철학과 과학분야에 대한 페르시아어의 성공적인 접합은 사만 왕조 왕궁에서 창작생활을 보낸 이븐 시나의 위대한 업적 중 하나로 불린다.→ 이슬람 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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