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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641경, 아라비아 야마마 지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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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 728경/730 |
국적 | 이슬람 |
요약
아라비아의 시인.
본명은 Tammām ibn Ghālib Abū Firās.
시가 정치도구였던 시기에 풍자시를 써서 유명해졌다. 경쟁자 자리르와 함께 그는 전통적인 베두인 문화에서 당시 형성단계에 있던 새로운 이슬람 사회간의 전환로의 대표적인 인물이다(→ 자리르).
파라즈다크는 바스라에 살면서 바누 나샬과 바누 푸카임 부족들에 대한 풍자적인 작품들을 썼다. 바누 푸카임 부족의 일원인 알 파라즈데크 지야드 이븐 아비히가 669년에 이라크 총독이 되자 파라즈다크는 메디나로 도망가 그곳에서 5~6년을 살았다. 지야드가 죽자 바스라로 돌아왔고 다행히 지야드의 아들 우바이드 알라의 후원을 받았다. 알 하자즈가 총독이 되자(694) 그가 알 하자즈와 그의 가족들을 찬양하는 시를 헌정했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소외되었다. 이는 아마도 총독의 총애를 받고 있던 자리르가 그에 대한 적대감을 품고 있었기 때문으로 여겨진다.
파라즈다크는 칼리프 알 왈리드(705~715 재위)의 공식 시인이 되어 그에게 많은 칭송의 시를 바쳤다. 그는 칼리프 술라이만(715~717 재위)의 총애도 받았으나 717년 우마르 2세가 칼리프가 되자 다시 밀려났다. 반란이 일어나고 그가 반군 지도자를 몹시 비난하는 시들을 쓰고 나서야 야지드 2세(720~724 재위)의 후원을 얻게 되었다.
기인이었던 그는 공적, 시, 자리르와의 분쟁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토론의 주제가 되고 있다. 그의 시모음집 〈디완 Diwān〉은 찬가·풍자시·비가 등을 포함하여 수천 편의 시를 담고 있다. 전성기의 유목민 시를 대표하고 있는 그의 시는 대부분이 행복과 진지함이 특징이지만 풍자시 중 일부는 매우 외설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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