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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598. 4. 23, 홀란트 브레일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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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 1653. 8. 9, 스헤베닝겐 근처 테르헤이데 인근 해상 |
국적 | 네덜란드 |
요약 네덜란드의 해군제독.
17세기 전반 네덜란드가 스페인 및 영국과 전쟁을 벌일 때 총독 휘하에서 해군의 최고지휘관(1636)으로 활약했다.
1639년 다운스 해전에서 그가 스페인에 거둔 승리는 해상강국인 스페인의 쇠퇴를 알리는 신호였다.
소형 군함 함장이던 아버지 하르페르트 마르텐스존을 따라 9세의 나이에 항해를 시작했다. 아버지가 상선으로 옮겨가자 그 역시 아버지를 따라갔다. 1609년 그들 부자가 승선했던 상선이 영국 해적의 공격을 받아 아버지는 목숨을 잃고 트롬프는 그후 2년 동안 해적선의 선장 밑에서 일했다.
홀란트로 돌아온 후 1617년 해군에 복귀했으며 알제리 해적 소탕작전에 참가해 전과를 올렸다. 1619년 해군을 떠나 지중해로 향하는 상선단에 합류했으나 1621년 다시 해적에 붙잡혔다. 1년간의 억류생활 끝에 풀려나 네덜란드의 해군 대위가 되었다. 1621년 네덜란드와 스페인 사이에 12년 휴전협정이 만료됨에 따라 전쟁에 대비한 함대 편성의 필요성이 대두한 가운데 1624년 그는 처음으로 함장직을 맡았으며, 5년 후에는 해적을 소탕하기 위해 오스텐데로부터 출항한 함대의 기함을 지휘했다.
1634년 다시 해군을 떠났으나 1636년 복귀한 후 홀란트 해군 중장에 임명되었다. 이 지위는 당시 네덜란드 해군대장을 겸하던 총독(stadholder) 다음 가는 해군 내 최고의 위치였다. 1639년 2월 됭케르크의 사략선 선단을 무찔렀으며 그후 약 1만 3,000명의 스페인 신병을 플랑드르로 수송중이던 스페인의 대함대와 마주쳤다.
안토니오 데 오켄도 제독과 몇몇 노련한 함장들이 지휘하는 스페인 함대는 45척의 군함과 병력수송선으로 차출된 30척의 상선으로 편성되어 있었다. 같은 해 9월 15일 트롬프가 스페인 함대를 비치헤드 인근에서 발견했을 때 그가 지휘하던 함정은 13척이었으며, 다른 분견대들은 도버 해협과 됭케르크 인근 해상을 순항중이었다. 다음날 네덜란드 함정 5척이 추가로 현지에 도착하자 네덜란드의 함장들은 전투를 개시하기로 결정했다.
전투 발발 6시간 후 스페인 함대는 파괴된 함정의 수선을 위해 퇴각해야 했다. 당시 스페인 선박에는 신병들이 과도하게 승선해 있었으며 이들 신병은 사상자의 압도적 다수를 차지했다. 다음날은 바람이 불지 않아서 교전도 없었다. 젤란트의 분견함대로 전력이 보강되자 9월 18일 이른 아침 트롬프는 도버 해협에서 스페인 함대를 공격했다.
오후 무렵 오켄도 제독은 다운스의 중립정박지로 퇴각했다. 트롬프는 칼레에서 화약을 새로 보충한 후 오켄도를 추격했으나 존 페닝턴 경 휘하의 영국 분견함대에 의해 차단되었다. 10월 10일 네덜란드 함대는 스페인 함대를 공격할 만큼 충분히 전력이 보강되었다. 10월 21일 트롬프는 오켄도를 공격했으며 오켄도를 엄호하려던 페닝턴 경의 노력은 성과가 없었다. 다운스 해전에서 스페인 함대는 완패했고 엄청난 함선 파손과 인명 손실을 겪었다.
1640년 트롬프는 프랑스의 루이 13세로부터 기사작위를 받았으며, 1642년 영국의 왕비 헨리에타 마리아와 메리 공주를 홀란트까지 호위하는 임무 수행차 도버를 방문했을 때 찰스 1세에게서도 기사작위를 받았다.
이후 수년 간 그가 맡은 주요임무는 네덜란드 상선을 계속 공격하는 됭케르크 해적들을 소탕하는 것이었다. 1646년 프랑스의 됭게르크 점령을 도왔으며 그 공로로 생미셸 훈장을 받았다. 1648년 30년전쟁을 마무리짓는 베스트팔렌 조약이 체결되자 네덜란드 해군의 활동은 뜸해졌다.
그러다가 1651년 스칸디나비아에서 지브롤터에 이르는 해역에 사략선들의 횡포가 심해지자 네덜란드 함대를 보강해 해상무역을 보호해야 할 필요성이 절실해졌다. 영국이 자국령과 네덜란드와의 교역을 제한하는 항해조례(1651)를 선포함에 따라 두 나라 사이의 긴장이 고조되었으며, 또한 영국이 해상 지배권을 주장함으로써 네덜란드 내에 영국에 대한 반감이 크게 일었다.
1652년 5월 도버 해협 인근에서 로버트 블레이크 제독과의 사소한 다툼 끝에 제1차 영국-네덜란드 전쟁이 발발했는데 이 전쟁은 세계무역의 주도권을 둘러싼 두 나라의 경쟁관계에서 나타난 위기 국면이었다.
트롬프는 그해말 영국 제독들을 전투로 유인하지 못함으로써 네덜란드 정부의 비난을 받고 수개월 동안 지휘권을 박탈당하기도 했지만 그해 12월 던즈네스 인근에서 블레이크를 무찔렀다. 그러나 영국 함대는 네덜란드보다 전력이 뛰어났으며 트롬프는 계속 전쟁을 승리로 이끌지 못했다. 이듬해 3월 포틀랜드와 칼레 사이에서 벌어진 3일간의 해전에서 패배했으며 6월의 가바르드 해전에서도 패했다. 결국 그 자신도 스헤베닝겐 근처 테르헤이데 인근 해상에서 전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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