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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브리즈

다른 표기 언어 Tabriz
요약 테이블
위치 이란 북서부, 동아제르바이잔 주
인구 1,611,000명 (2020년 추계)
면적 45,481㎢
언어 페르시아어
대륙 중동
국가 이란

요약 이란에서 4번째로 큰 도시.
(페). Tauris.

타브리즈(Tabriz)

ⓒ Matyas Rehak/Shutterstock.com | 저작권자의 허가 없이 사용할 수 없습니다.

이란 북서부 끝, 해발 1,367m의 고지대에 자리잡고 있다. 대륙성기후로 여름에는 무덥고 건조하며 겨울에는 몹시 춥다. 3면이 산으로 둘러싸인 골짜기에 있으며, 강한 지진이 자주 일어나는 지진대에 속한다.

타브리즈라는 이름은 이 지역에 많이 있는 온천을 일컫는 타프리즈('뜨거운 열이 흐르게 한다'라는 뜻)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가자카라고도 불리는 타브리즈는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장군인 아트로파테스의 이름을 딴 아트로파테네 왕국의 도읍이었다. 지진으로 파괴된 뒤 791년에 다시 세워졌으며 858, 1041, 1721, 1780년에도 비슷한 지진을 겪었다. 몽골족이 세운 일 한국의 군주인 마흐무드 가잔(1295~1304)과 그 후계자의 수도가 되기도 했다.

1392년 투르크 정복자인 티무르에게 점령되었고, 수십 년 뒤 카라 코윤루 투르크멘족의 수도가 되었다. 그들이 다스리는 동안, 이 도시에는 '푸른 사원'이 세워졌다. 사파위 왕조시대에도 수도의 지위를 유지했지만, 1548년 타마스프 1세가 서쪽의 카즈빈으로 도읍을 옮겼다. 그후 200년 동안 이란과 투르크에게 교대로 점령되었으며, 1826년에는 러시아에게 점령되었다. 바브교(이슬람교의 일파이며 바하이교의 전신)의 창시자인 바브가 1850년대에 이곳에서 4만 명의 추종자와 함께 처형당하기도 했다.

1908년 민족주의 운동의 중심지가 되었으며 제1차 세계대전 당시 투르크군과 소련군에게 잇달아 점령되었다. 그후에도 이 도시는 이란 정치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타브리즈에는 유명한 몇 개의 고대 건축물이 남아 있다. 무스제드에카부드라고 하는 '푸른 사원'(1465~66)은 화려한 푸른색 타일 장식으로 오래전부터 유명했고, 아르크라고 하는 성채는 1322년 이전에 모스크로 세워졌는데, 단순하고 웅장한 구조와 벽돌을 쌓아올린 솜씨가 뛰어나기로 유명하다. 이란에 세워진, 몽골 왕조의 통치자인 마흐무드 가잔의 12각형 무덤도 중요한 유적이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근대화 작업이 활발하게 이루어져 도로를 넓히고 건물을 세웠으며, 분수와 연못이 있는 공원을 조성했다. 새로운 건물로는 기차역과 타브리즈대학교 등이 있으며, 근교에는 여름휴양지가 있다. 상업 중심지이며, 주요생산품으로는 양탄자·직물·시멘트·농기계·모터사이클·가전제품 등이 있다. 철도를 통해 테헤란 및 아제르바이잔과 이어지며, 공항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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