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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BC 423 이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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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 BC 401, 바빌로니아(지금의 이라크) 쿠낙사 |
국적 | 페르시아 |
요약
키루스는 페르시아 아케메네스 왕조의 둘째 아들로 왕위를 물려받은 형 아르사케스의 왕위를 찬탈하기 위한 전쟁을 벌였다. 이 전쟁에서 적대국인 그리스인들을 용병으로 이용했다. 키루스가 왕위를 잇기를 바랬던 어머니 파리사티스 덕택에 젊은 나이에 카파도키아 등지의 총독에 임명되었다. 더불어 소아시아에 있는 아케메네스 군대의 총사령관이 되었다(BC 407).
BC 405년 그는 아버지의 임종을 보기 위해 페르시아로 돌아왔고 이듬해 아르사케스는 아르타크세르크세스 2세로 왕위에 올랐다. BC 401년 봄 그는 대부분이 그리스인 용병으로 구성된 2만 명의 군대를 이끌고 왕위 찬탈에 나섰다. 그리스인들은 키루스가 보여준 용기와 능력에 대해 찬사를 보냈으나, 그는 목적달성을 위해 적국 그리스인들을 이용해 페르시아 제국을 공격한 반역자였다.
맏아들인 아르사케스 대신 키루스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싶어한 어머니의 극진한 보살핌을 받았다. 다리우스가 아테네와의 전쟁을 계속하고 스파르타를 원조하기로 결정하자 파리사티스는 그를 설득해 젊은 키루스를 리디아·프리지아·카파도키아의 사트라프(총독)로 임명하고 소아시아에 있는 아케메네스 군대의 총사령관으로 앉히도록 했다(BC 407). 키루스와 스파르타의 해군 함대 지휘관 리산드로스 사이의 우호적인 동맹 관계로 스파르타의 승리는 확실했다. BC 405년 키루스는 아버지의 임종을 보기 위해 페르시아로 돌아왔다. 이듬해 아르사케스는 아르타크세르크세스 2세로 왕위에 올랐다.
카리아의 사트라프인 티사페르네스는 국왕 암살 음모를 꾸몄다고 키루스를 고발했으나 파리사티스가 개입해 키루스는 용서를 받고 자신의 사트라프 영지로 돌아갔다. 그러나 다시 돌아올 때는 왕위를 빼앗기 위해 만반의 준비를 갖추었다. 그는 대규모의 군대를 충원한다는 구실로 이오니아의 도시들을 놓고 티사페르네스와 다툰 뒤 이를 이용해 타우루스 산맥에 있는 피시디아로 원정을 떠날 준비를 하는 체했다. BC 401년 봄 키루스는 대부분이 그리스인 용병으로 구성된 2만 명의 군대를 이끌고 왕위 찬탈에 나섰다.
키루스는 군대가 유프라테스 강가에 있는 타프사코스에 이르자 아르타크세르크세스와 싸우기 위해 진군하겠다고 선언했다. 바빌로니아까지는 방해를 받지 않고 진군할 수 있었다. 티사페르네스로부터 마지막 순간에 전갈을 받은 아르타크세르크세스는 급히 군대를 모았다. 양쪽 군대는 바빌론 북쪽에 있는 쿠낙사에서 전투를 벌였다. 키루스의 그리스인 용병 부대는 지휘관들이 티사페르네스에게 붙잡히자 어쩔 수 없이 흑해 쪽으로 방향을 돌렸다.
키루스가 보여준 용기와 능력은 그리스인들로부터 큰 찬사를 받았다. 특히 역사가인 크세노폰은 이 전투에 용병으로 직접 참가했던 경험을 토대로 〈아나바시스 Anabasis〉에서 그리스군이 퇴각하게 된 이야기를 서술하고 있다. 그러나 키루스는 자기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적대국인 그리스인들을 이용해 페르시아 제국을 공격한 반역자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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