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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천 사이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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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1879년 메리 베이커 에디가 미국에 세운 교단.

크리스천 사이언스(Christian Science)

ⓒ Maksim/wikipedia | CC BY-SA 3.0

에디는 이 교단의 가르침을 〈성서에 비추어본 과학과 건강 Science and Health with Key to the Scriptures〉에서 명확히 진술했다. 이 교단에는 거의 3,000개가 넘는 교회들이 속해 있고, 이 가운데 1/3가량이 미국 밖의 56개국에서 개신교 전통이 강한 지역들에 자리잡고 있다(→ 신앙치유).

크리스천 사이언스는 다윈의 진화론, 성서비평학, 그밖의 세속화 영향이 개신교 정통신앙의 초자연적 구조를 잠식하던 19세기말 미국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에디 부인의 추종자들은 1866년 크리스천 사이언스를 탄생시켰다. 당시 에디는 〈신약성서〉에서 예수의 병고침 이야기를 읽고 있는 동안 과거에 큰 사고로 얻은 것으로 보이는 후유증이 씻은 듯이 낫는 경험을 했다. 이 사건의 세부 내용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으나 에디는 이 사건을 계기로 삶의 방향을 바꾼 듯하며, 이때부터 오랫동안 성서 연구와 집필에 정열을 쏟았고 치유실습을 심도 있게 함으로써 자신이 이끌어낸 결론들을 시험했다.

1879년 에디 부인과 추종자 15명은 '초기 그리스도교와 후대에 상실된 치유요소'를 회복한다는 목표를 내걸고 '과학자 그리스도의 교회'(크리스천 사이언스 제1교회)를 설립했다. 그뒤 1882~89년에 이 운동은 안정되고 항구적인 성장을 계속했는데, 주로 에디 부인이 1881년에 설립한 '매사추세츠형이상학대학' 출신 학생들이 벌인 치유사역에 힘입었다.

1880년대말에는 거의 100개나 되는 크리스천 사이언스 교회들이 대서양 연안 주들과 중서부 주들에 설립되었고, 1895년까지는 250개, 1910년까지는 1,200개의 교회들이 설립되었다. 1910년경 크리스천 사이언스 교회들은 1,213개에서 2,400개로 증가했다. 에디 부인 자신은 교인수가 영적 생명력의 척도가 될 수 없다고 강하게 느꼈으며, 교회가 이미 급속히 성장해 있던 어느 시기에 교인수를 공식적으로 집계하지 못하도록 규율로 정해놓았다. 그러나 1936년 미국인구조사국은 크리스천사이언스 교회의 교인수를 26만 9,000명으로 보고했다. 다른 조사자료들은 1930, 1940년대 교인수 증가율이 수평을 유지하다가 1970년대에 교인수가 증가한 몇몇 지역들(특히 제3세계 일부 국가)을 제외하고는 그때부터 감소하기 시작했음을 지적한다.

신조와 의식

크리스천 사이언스는 그리스도교와 마찬가지로 인간과 구분되고 계획을 갖고 있는 전능한 하느님을 믿고, 성서의 계시적 권위를 받아들이며(비록 문자적 무류성을 받아들이지는 않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형과 부활을 인류 구원에 없어서는 안 될 역사의 중심 사건으로 믿는다.

그러나 정통 그리스도교와는 달리 예수의 신성(神性)을 부정하고, 예수의 생애를 하느님 자녀의 신분(모든 사람에게 해당되는)에 대한 뛰어난 모범으로 본다. 또한 개신교의 일부 자유주의 형태와는 달리 예수를 단지 도덕적인 모범자로만 보지 않는다. 오히려 예수가 사람들의 병을 고쳐주고 몸소 죽음을 이김으로써 필멸(必滅)의 인간이 '그리스도의 마음'을 갖는 정도만큼, 즉 인간이 영적 신분을 깨달은 정도만큼 모든 질병과 제약을 극복할 수 있음을 뚜렷이 보여준 것으로 본다. 크리스천 사이언스는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지려면 물질적인 겉모습 이면의 영적 존재질서를 깨달아야 한다고 보았다. 이 영적 존재질서를 정통 신앙은 내세의 천국과 관련지어왔으나, 크리스천 사이언스는 과학적으로 인간의 삶에서 드러날 수 있는 현실적 사실로 보았다.

이런 시각에서 볼 때 겉으로 나타난 인간과 우주의 물리적 외형은 실재에 대한 철저한 오해나 잘못된 감각으로 이루어져 있다. 크리스천 사이언스는 물질을 하느님이 창조한 실재가 아닌 인간 인식의 제한된 양상으로 본다. 에디 부인은 주장하기를, 물질이 하느님에 의해 창조되었다는 전제를 일단 받아들이면, 결정적으로 우주 안에 있는 모든 고통의 책임을 하느님에게 돌리는 유물론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게 된다고 한다.

또한 그리스도교도의 구속에는 모든 필멸성, 즉 '육체'의 양상에서 다시 태어나는 것이 포함된다고 한다. 이 구속 과정의 기초가 되는 것은 죄로부터의 구원이다. 욕정에서부터 사소한 게으름에 이르기까지 모든 죄는 생명·의지·정신이 성령이 아닌 조야한 물질에서 진화한다는 주장으로써 하느님의 주권을 부정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 본질적인 오류는 파괴적인 결과를 초래하며, 마치 지구가 평평한 네모라든가 당구공만한 원자들로 이루어져 있다는 신념이 생각과 행동을 제약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실질성이나 적법성 또는 논리적 당위성도 없으면서 최면상태에서 작용된다고 한다. 동시에 에디 부인은 비교적 낙관적인 견해를 갖고 있던 일부 추종자들과는 달리 다시 태어나는 과정을 인내, 겸손, 회개, 십자가를 짊어짐 등 어려운 그리스도교도의 덕목들을 실천해야 하는 길고 고된 과정으로 보았다.

의미

종교사적 관점에서 볼 때 크리스천 사이언스는 소규모 종교운동이었으나, 그 규모에 비해 큰 의미를 지녀왔다.

크리스천 사이언스가 종교세계에 준 충격은 주로 급진적인 입장에 서서 영적 치유사역을 통해 활동했다는 사실에 있다. 20세기가 시작된 이래 이 교회가 간행물들을 통해 발행한 5만 부가 넘는 치유증명서는 주로 의사의 진단을 받지 않은 질환, 정신질환, 분명히 심신증이거나 그럴 가능성이 높은 질환들에 관한 것이다.

반면에 치유증명서들 가운데 상당수는 의사가 선천성, 퇴행성, 또는 시한부성으로 진단한 질병에서 고침을 받은 경우이다. 이런 치유들에 대해 종교적인 방법으로든 의학적인 방법으로든 체계적인 평가가 이루어진 적은 없다. 그러나 이런 치유현상은 많은 주요교단들 사이에 영적 치유에 대한 관심을 다시 일깨우는 데 선도적인 역할을 했다. 사회적인 면에서는 크리스천 사이언스 운동이 종교계에 여권신장운동의 발전을 선도했다는 평가가 점차 두드러져왔다.

에디 부인은 이러한 의미의 여권신장론자는 아니었으나 분명히 자신을 '해방'시켰으며, 남성과 여성의 영적인 동등성이 반드시 정치적·사회적인 결과들로 나타나야 한다고 가르쳤다. 또한 여러 가지 이유에서 그녀는 많은 논쟁의 대상이 되어왔는데, 초기 비평가들과 전기작가들이 그녀를 평가할 때 강하게 갖고 있던 여성에 대한 전통적인 고정관념이 학문적으로 깨지기 시작한 것은 1960년대에 접어들어서였다.

크리스천 사이언스 운동에서는 전체적으로 여성들이 요법가와 교사로서 중요한 역할을 맡아왔다. 이 교회가 보스턴에서 발행되는 국제적 일간지 〈크리스천 사이언스 모니터The Christian Science Monitor〉는 널리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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