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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대는 중국미술의 원형이 형성된 시기라고 할 수 있으며 중국미술사상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한대에는 궁정벽화가 성행했다. 전한대에 지어진 미앙궁(未央宮)의 승명전(承明殿) 벽화, 노(魯)나라 공왕(恭王) 때 완성된 영광전(靈光殿) 벽화, BC 51년(宣帝 3) 곽광(바광) 등의 공신상을 그려넣은 기린각(麒麟閣) 벽화, 후한 영평연간(永平年間:AD 58~75)에 명제(明帝) 유장(劉莊)이 남궁(南宮) 운대(雲臺)에 그린 개국공신의 초상화(雲臺 28將) 등이 있었으나, 현재 전하지 않고 다만 고고학 발굴을 통해 당시의 회화수준을 엿볼 수 있을 뿐이다.
한대 건축에 대한 대부분의 지식은 무덤의 돌방[石室]이나 사당에 만들어놓은 돌새김[浮彫]이나 선(線)으로 조각한 화상석(畵像石)에 의한 것이다. 중국 역사를 통해 한대만큼 무덤과 그 껴묻거리[副葬品]에 대한 관심이 지대한 시대는 없었다. 방대한 수의 무덤이 남아 있어서 많은 무덤이 발굴되고 있다.
창사[長沙] 마왕두이[馬王堆]와 린이[臨沂] 진췌 산[金雀山]에서 발굴된 전한시대 무덤에서 나온 백화(帛畵:비단바탕에 그린 그림)는 무덤 주인이 살던 시대의 생활상과 죽은 후 승천하려는 기도를 표현하고 있다.
이 백화는 형상이 정확하고 선 처리가 능숙하여 한대 초기 회화의 뛰어난 기예를 보여준다. 지금까지 적지 않은 한대의 무덤벽화가 발견되었다. 뤄양[洛陽] 사오거우[燒溝] 61호 무덤, 복천추(卜千秋)의 무덤 및 뤄양 바리타이[八里臺]에서 옮긴 공심전(空心磗) 벽화무덤 등은 모두 전한 후기에 속한 것으로 역사적인 사건, 신화·전설, 혼백이 승천하여 신선이 되는 이야기, 사악한 귀신을 쫓는 이야기, 해·달·별 모양 등의 내용을 담은 벽화가 있다.
산시 성[山西省] 펑링[平陵]과 산시 성[陝西省] 첸양[千陽]에서 발굴된 한대 무덤벽화에는 장원(莊園)의 오벽(塢壁)과 천상4신(天象四神)이 그려져 있는데, 대략 왕망(王莽)이 전한을 무너뜨리고 세운 신(新)나라 시기에 속한다. 허베이 성[河北省] 왕두[望都]·안핑[安平], 허난 성[河南省] 뤄양 및 미 현[密縣], 산둥 성[山東省] 량산[梁山], 랴오닝 성[遼寧省] 랴오양[遼陽] 및 진 현[金縣], 내몽골 등지의 후한시대 벽화에는 기마출병, 향연·제사, 악무·잡기(雜技), 효자·열녀 등의 내용이 그려졌다.
전한 후기에 출현한 화상석으로 만든 널빙[墓室]과 사당은 후한대에 더욱 성행했다. 화상석은 주로 산둥 성, 장쑤 성[江蘇省] 북부, 허난 성 남부, 산시 성[陝西省] 북부와 서부, 쓰촨 성[四川省] 등지에서 출토되었다. 지금까지 알려진 것 가운데 연대가 가장 이른 것은 소제(昭帝) 원봉연간(元鳳年間:BC 80~75)에 제작된 이수이[沂水] 바오자이 산[鮑宅山]의 봉황 화상석이다. 탕허 후양[湖陽]에서 발견된 18년(天鳳 5)의 화상석무덤은 구조가 웅건하고 조각품이 풍부하다. 후한시대의 화상석으로는 페이청[肥城] 란전춘[欒鎭村]에서 발견된 393년(建初 8)의 화상석, 페이청 샤오당 산[孝堂山]의 곽씨(郭氏) 사당, 자샹[嘉祥] 우자린[武家林]의 무씨(武氏) 사당, 난양[南陽]의 양관 사[楊官寺], 쑤이더[綏德]의 왕득원(王得元) 무덤, 양청[襄城] 츠거우[茨溝], 산둥 성 안추[安丘]와 이난[沂南], 쉬저우[徐州] 마오산[茅山], 청두[成都] 양쯔 산[陽子山] 1호 무덤 등에서 출토된 화상석이 비교적 중요하다.
화상전은 허난·쓰촨 성에서 출토된 것이 가장 많은데 주로 무덤을 쌓는 데 기초재료로 이용되었다. 뤄양·정저우[鄭州] 등지에서 출토된 전한 화상공심전에는 주로 문을 지키는 호위병, 기마·사냥, 주빈의 접견, 악무·잡기, 금수·초목, 신화인물 및 기하학적인 도안 등이 새겨져 있는데 매우 웅장하고 간결한 모습이다. 청두·더양[德陽] 등지에서 출토된 후한의 4각 화상전은 생산활동과 생활상을 반영한 그림이 많아서 짙은 향토색을 풍긴다.
한대에는 조각예술도 발달했다.
싱핑[興平]에 있는 곽거병 장군의 무덤(去病基) 앞에는 실물 크기의 말이 오랑캐 병정을 밟고 서 있는 석조(石彫)가 있다. 그외에도 누운 말, 엎드린 호랑이, 누운 코끼리, 소, 괴수, 양, 미개인이 곰을 잡는 모양의 돌조각품이 있는데 소박한 풍격에 웅대한 기세가 있다. 셴양의 돌다리와 산시 성[山西省] 안이[安邑]에서 발굴된 전한의 돌호랑이도 비슷한 풍격이 있다. 후한의 대형 석조인물상으로는 덩펑[登封] 중악묘(中岳墓) 앞과 취푸[曲阜] 낙안태수묘(樂安太守墓) 앞의 석옹중(石翁仲)과 쓰촨 성 관 현[觀縣]에서 출토된 이빙(李氷) 석상 등이 있다.
야안[雅安] 고이묘(高拂墓)와 난양 종자묘(宗資墓) 앞의 석천록(石天祿), 뤄양 이촨[伊川], 쑨치툰[孫旗屯] 및 셴양 선자춘[沈家村]에서 출토된 석피사(石避邪)의 당당하고 웅대한 형상은 조각예술이 성숙해져감을 보여준다. 셴양 양자완[楊家灣]의 전한 초기 무덤에서 대량 출토된 장사용(將士俑)·기사용(騎士俑)은 위풍당당한 느낌을 주며, 허난 성 멍진[孟津] 및 시안[西安]에서 출토된 전한대의 채색 무녀용(舞女俑)·여좌용(女坐俑)도 아름답다.
지난[濟南] 우잉 산[無影山]에서 출토된 전한시대 악무잡기도용반(樂舞雜技陶俑盤)과 뤄양 사오거우 추윈잔[儲運站] 제14호 무덤에서 출토된 후한시대 악무용(樂舞俑) 무리들은 수준 높은 기예와 즐거운 분위기를 충분히 표현해냈다. 쓰촨 성 피 현[郫縣]에서 출토된 후한시대 설창용(說唱俑)은 흥취가 가득한 표정과 자태를 생동감 있게 형상화해냈다.
청두 톈후이 산[天回山]에서 나온 후한의 흙으로 빚은 커다란 말, 후이 현[輝縣]에서 출토된 후한시대 흙으로 빚은 양과 개 조각도 마치 살아 있는 듯 생생하게 표현되어 있다. 이밖에 셴양에서 출토된 것으로 전한의 날개 달린 사람이 천마(天馬)를 타는 형상의 전한시대 옥 조각품, 진닝[晉寧] 스자이 산[石寨山]에서 출토된 두 호랑이가 싸우는 장면과 포로 획득의 그림이 그려진 전한대의 구리 장식, 우웨이[武威] 레이타이[雷臺] 후한대 무덤에서 나온 하늘을 나는 천마 등도 조각공의 독창적이고도 뛰어난 솜씨가 돋보이는 진품이다.
한대에는 도자기·직물 등의 공예도 높은 수준을 이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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