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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와 인쇄술
중국에서는 오래 전부터 나무나 대나무 조각에 묵으로 글을 써왔다.
이것을 죽간(竹簡) 또는 목간(木簡)이라고 부른다. 책과 같이 분량이 클 때는 목간을 가죽끈으로 묶었다. 그후에 흰색의 비단이 사용되었으나 너무 비싸 일반인 사이에서는 전혀 사용되지 못했다. 이와 같은 어려움은 서방의 고대문명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이집트에서는 수초(水草)의 줄기에 글자를 썼는데 이것은 파피루스(papyrus)라 부르는 것으로 종이(paper)의 어원이 되었다. 메소포타미아에서는 기와 모양의 진흙판에 문자를 새긴 후 햇볕에 말리고 불에 구워 견고하게 만들었다.
로마와 중세 유럽에서는 양피지(羊皮紙)가 사용되었지만 가격이 매우 비싸 일반인들이 책을 구해 읽는 것은 어려웠다. 그렇지만 중국에서는 식물섬유를 이용해 종이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 통설에 의하면 종이의 발명자는 후한의 채륜(蔡倫)이라는 사람인데 그는 나무껍질, 삼베, 넝마, 고기 그물을 녹여 종이를 만들고 그것을 105년에 황제에게 바쳤다고 한다.
그러나 그 이전부터 중국에서는 종이가 사용된 듯하다. 후대의 중국에서는 다양한 식물섬유가 종이의 재료로 사용되었다. 종이의 발명은 인류문화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이러한 종이의 발명은 이웃 한국과 일본에 전래됨은 물론 서방에도 알려졌다.
종이와 인쇄술은 불가분의 관계이다. 인쇄술 역시 중국에서 가장 먼저 시작된 기술이다. 그 기술이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 분명하지 않지만 늦어도 8세기 전반의 당대에 행해졌다. 그러나 당대의 인쇄물은 불교경전이나 역서(曆書) 같은 아주 간단한 것들이 많았다.
10세기초의 오대(五代)와 그것을 이은 송대(宋代)에 오면 인쇄물의 간행이 급격하게 증가한다. 처음에는 유교경전류의 서적이 주로 출판되었다. 특히 송대에는 각종 고전의 출판이 성행해서 정부 주도의 출판 이외에도 민간에 의한 출판이 많았다. 이것은 학문의 대중적 보급과 그로 인한 서민문화의 향상에 크게 기여했다. 중국의 인쇄술은 목판인쇄가 주류였지만 11세기경에는 필승(畢昇)이라는 공인(工人)이 활자인쇄를 개발했다.
당시의 활자는 흙으로 구워낸 것으로 그것을 납(蠟)을 부어놓은 철판에 고정시킨 후 종이를 그 위에 대고 복사해내는 인쇄방식이었다. 그후 곧 목활자가 만들어졌고 한국에서는 금속활자가 발명되었다.
자석의 지극성(指極性)
자석이 쇠를 끌어당기는 성질이 있다는 것은 동서양 모두 전부터 알고 있었다.
중국에서는 자석(慈石)이라고도 썼는데 이는 마치 갓난아기가 어머니(慈母)를 따르는 것과 같기 때문이라고 한 고전에서 밝히고 있다. 자석이 남북을 가리킨다는 사실, 즉 지남성(指南性)은 중국에서 가장 먼저 발견되었는데 이미 기원전후였다. 연이어 쇠바늘에 자성을 부여하는 방법과, 더 나아가 그것을 자침으로 활용하는 방법이 고안되었다. 간단한 것으로는 자침을 실로 매달거나 손톱 위에 얹어놓는 방법이 있었지만 보다 진전된 형태의 것으로는 가벼운 나무로 물고기 모양을 만들고 그 배 속에 자침을 넣어 물 위에 띄운 것이 있다.
이것이 바로 지남어(指南魚)라고 부르는 것이다. 자침은 풍수가들이 택지나 묘자리를 고를 때 처음으로 활용했으나 1100년 전후부터는 항해에 사용되기 시작했다. 당시 중국에 왔던 아라비아 상선들에게 자침이 알려졌고 결국 유럽의 선원들에게까지 알려졌다. 11세기가 끝날 무렵 송의 심괄(沈括)은 그의 저서 〈몽계필담 夢溪筆談〉에서 자침이 정확한 남북을 가리키지 않는다는 것을 밝혔다.
이것은 편각의 발견으로, 이는 유럽에 앞서서 중국에서 이루어졌다. 15세기초의 30년 동안 명(明) 왕조는 환관인 정화(鄭和)로 하여금 모두 7차례의 대항해를 하게 했다. 그때 사용했던 항해도에는 자석을 사용해서 배의 항로를 도시해놓았다.
화약의 발명
화약의 발명과 사용에서도 중국이 가장 앞서 있었다.
초기의 화약은 황·초석·목탄을 혼합해서 만든 흑색화약이었다. 초석을 제외한 2가지 물질의 연소성을 전쟁에 활용한 것은 서방에서도 그리스 불이라는 이름으로 기원전부터 사용되었다. 그러나 초석을 망초(芒硝) 등에서 분리해낸 것은 중국이 처음으로, 늦어도 6세기경에 이루어졌다. 7세기말의 약물학자 손사막(孫思邈)은 초석과 황의 혼합물이 격렬하게 연소한다는 것을 알아내고 거기에 목탄을 부가해서 흑색화약을 발명해냈다.
화약이 전쟁에 사용된 것은 12세기초 북송시대부터였다. 당시의 화기(火器)는 현대의 대포나 소총 등의 화포와는 다르다. 화약을 넣은 구형의 탄을 투석기로 날려보내 폭발하도록 한 것이었다. 몽골군이 일본을 공격할 때 사용했던 화기도 이러한 형태의 것이었다. 화살에 화약을 매달아 공격물에 불을 지르는 것, 화약의 힘으로 화살을 날려보내는 화포와 유사한 형태의 것도 고안되었다.
13세기초 몽골군은 유럽을 침공했는데 이때 사용한 화기를 통해 유럽인들은 화약을 알게 되었으며, 그 이후 화포를 발명했다. 유럽에서는 14세기 중반경 대포가 발명되었고 조금 늦은 15세기초에 초보적 형태의 소총인 화승총(火繩銃)이 발명되었다. 이와 같은 대포의 발명은 유럽에서 시작, 유럽인의 아시아 진출과 함께 중국에 전래되었다고 이해했으나, 최근에는 원대 1351년에 만들어졌다고 하는 대포가 발견되어 의문이 제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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