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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영국의 극단.
셰익스피어가 극작가로 활동하던 대부분의 시기에 밀접한 관련을 맺었으며 엘리자베스 여왕과 제임스 왕의 재위기간에 중요한 배우들이 활동하던 극단이다.
이 극단의 초창기 역사는 다소 복잡하다. 헌즈던 남작 1세인 헨리 케어리가 후원자로 있던 헌즈던스 멘으로 알려진 극단의 역사는 1564~67년으로 추측할 수 있다. 헌즈던은 1585년에 체임벌린 경이 되는데 그가 후원자로 있는 다른 극단인 체임벌린스 멘은 1590년까지 있었다. 2년 후인 1592년 역병으로 극장들이 문을 닫고 1594년 다시 문을 열게 되었을 때 다양한 극단들 사이에서 재편성과 합병이 이루어져 강력한 체임벌린스 극단이 탄생했다.
1596년 후원자가 사망하자 극단은 후원자의 아들인 헌즈던 경 2세인 조지 케어리의 보호를 받게 되었고, 1597년 새 후원자가 체임벌린 경이 될 때까지 다시 헌즈던스 멘으로 불리게 되었다. 그뒤로는 체임벌린스 멘으로 알려졌으며 1603년 3월 제임스 1세가 등극하자 특허권에 의해 왕의 후원을 얻게 되어 이후로 킹스 멘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궁전에서 행해진 공연 기록에 따르면 이 극단이 가장 많은 혜택을 받은 극단이었음을 알 수 있다. 체임벌린스 멘의 유일한 경쟁상대는 엘리자베스 1세 치하에서는 애드미럴스 멘으로 알려진 극단이며, 그뒤에는 프린스 헨리스 멘으로 알려진 극단이었다.
1594년 여름부터 1603년 3월까지 체임벌린스 멘은 거의 지속적으로 런던에서 공연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1597년 가을에는 지방 공연을 가졌으며 1603년 런던에 역병이 퍼졌을 때 다시 순회공연을 가졌다. 그뒤로는 거의 매년 여름이나 가을에 지방 순회공연을 가졌다. 1594년 이 극단의 런던 본부는 얼마 동안 뉴잉턴버츠(런던교의 남쪽에서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은 마을)에 있는 극장이었고, 그뒤에는 런던 시내의 크로스키스 인에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후에 아마도 이들은 극단의 주역배우인 리처드 버비지의 아버지 소유의 쇼디치에 있는 '더 시어터'를 사용한 듯하다.
1599년 가을 리처드 버비지와 그의 동생인 커스버트가 템스강의 남쪽 강가로 런던교의 서쪽인 사우스웨크에 지은 글로브 극장에 다시 거처를 정했는데 이곳이 체임벌린스 멘 극단의 가장 유명한 본거지였다. 극장에서 얻은 이익은 극단의 구성원들과 극장 소유주들('가옥 관리인'이라고 불림)이 나누어 가졌는데, 버비지 형제와 셰익스피어를 포함한 5명이 소유주들이었다. 셰익스피어는 극단의 가장 중요한 극작가였으나 그의 작품 외에도 벤 존슨, 토머스 데커의 작품들, 프랜시스 보먼트와 존 플레처가 함께 쓴 작품들이 공연되었다.
1608년경 블랙프라이어스 수도원을 개조한 곳에 만든 또다른 극장이 극단의 겨울 시즌 본부가 되었는데, 이 극장도 버비지 집안이 운영했으며 이익은 글로브 극장에서와 비슷한 방식으로 분배되었다(→ 블랙프라이어스 극장).
고향인 스트랫퍼드로 은퇴한 셰익스피어는 1616년에 죽었고, 리처드 버비지는 1619년에 죽었다. 창단 단원 중 가장 오랫동안 생존한 사람은 존 헤밍으로 1630년에 죽었다. 1642년 내란(청교도혁명)이 발발하자 극단은 해체되었으며, 극장들은 폐쇄되어 18년 뒤인 왕정복고까지 문을 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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