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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청상민수륙무역장정의 성립 이후 조선 내정에 대한 청의 간섭이 본격화되어 이홍장의 추천으로 정치·외교 고문으로 마건상과 묄렌도르프를 초빙하고, 외교·통상 사무를 관장하는 통리아문을 설치했다.
군제도 청의 군제와 위안스카이[袁世凱]의 지휘에 따라 친군 4영제로 개편되었다. 그리고 1883년 10월 청의 총판조선상무 진수당이 부임하여 각 개항장에 공서와 분서를 설치하고 상권의 확대를 도모했다. 그러나 서구 열강 및 일본 등은 청의 대조선 종주권 주장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일본은 1883년 6월 조일통상장정을 체결하여 최혜국 대우를 규정했고, 영국과 독일도 통상장정의 체결에서 자국상인들의 조선에서의 상행위를 인정받았다. 이에 따라 다음해 2월 청도 무역장정의 4조를 개정하여 내치채판이 허용되었다. 청상인들은 영국제 면제품을 들여와 비싸게 팔고 조선의 곡물과 금은 헐값에 수출됨으로써 조선의 무역수지 적자가 늘어났고, 개항장과 서울을 거점으로 한 청상인들의 내지시장 침투는 시전상인·개항장객주 들의 상권을 침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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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um백과] 조청상민수륙무역장정의 영향 – 다음백과, Da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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