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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건국준비위원회

다른 표기 언어 朝鮮建國準備委員會 동의어 조건

요약 1945년 8월 15일 여운형이 건국준비를 위해 자신의 지하조직인 '건국동맹' 을 중심으로 건설한 정권 예비기관.

여운형은 이에 앞서 조선총독부 엔도 정무총감과 정치범 석방 및 3개월간의 식량확보, 건국을 위한 정치활동에 대한 불간섭 등 5개항을 조건으로 치안권을 인수했다.

여운형(呂運亨)

조선건국준비위원회의 위원장.

ⓒ Sienic~commonswiki/wikipedia | CC0

그해 8월 16일 여운형은 휘문중학교 교정에서, 안재홍은 경성방송을 통해 치안권 인수와 건국준비위원회(건준)의 결성을 알리는 연설을 했다. 이 연설에서는 경위대(警衛隊)와 정규군 편성, 식량확보, 통화 및 물가 안정, 정치범 석방 등이 언급되었다. 건준은 8월 17일 제1차 부서 결성을 하여 위원장 여운형, 부위원장 안재홍, 총무부장 최근우, 재무부장 이규갑, 조직부장 정백, 선전부장 조동호, 무경부장 권대석 등을 임명했다. 산하단체로는 치안확보를 위한 건국치안대, 식량확보와 보급을 위한 식량대책위원회가 결성되어 활동했다. 중앙조직 간부들은 처음에는 대체로 여운형·조동호·최근우 등의 조선건국동맹 계열, 안재홍·이규갑·권태석 등의 신간회(新幹會) 계열, 정백 등의 장안파(長安派) 조선공산당 계열 등으로 구성되었다.

그러나 조직 개편에 따라 점차적으로 조선건국동맹 계열과 장안파 조선공산당 계열이 강화되었고, 신간회 계열이 이탈하여 좌파가 강화되었다. 지방에서도 건준 지부들이 중앙조직의 지시 아래, 또는 독자적으로 결성되어 지방의 치안을 관장했다. 1945년 8월말에는 전국적으로 145개의 건준 지부가 결성되었다.

이후 건준이 해체되고 조선인민공화국이 수립됨에 따라 대부분의 건준 지부들은 인민위원회로 명칭을 바꾸어 활동을 계속했다. 건준은 8월 25일 선언과 강령을 채택했는데, 선언에서 당시의 사회적 요구에 의해 국가건설의 준비기관과 진보적 민주주의 세력의 집결체로서 결성되었음을 밝혔다.

강령은 ① 완전한 독립국가의 건설을 기함, ② 전민족의 정치적·사회적 기본요구를 실현할 수 있는 민주주의 정권의 수립을 기함, ③ 일시적 과도기에 있어서 국내질서를 자주적으로 유지하여 대중생활의 확보를 기함 등의 3가지를 채택했다. 중앙 건준의 간부들은 친일파 민족반역자 처리문제나 토지문제에 대한 견해가 일치하지는 않았지만, 대체로 친일파 민족반역자를 배제시킨 진보적 민주주의를 지향하고 있었다. 중앙 건준 간부들의 구성 및 이념적 지향을 살펴볼 때 건준에는 자유민주주의, 프롤레타리아 민주주의, 사회주의적 민주주의를 추구하는 정치세력들이 공존했고, 조직개편에 따라 변화가 있었지만 중도세력과 좌파를 망라하고 있었다.

또한 건준은 지부를 통해 국민들의 지지도 확보하고 있었다. 따라서 건준은 국민들의 지지하에 진보적 민주주의를 표방하면서 반민주적 반동세력을 제외한 민주세력의 통일전선적인 정권예비기관이었다. 건준은 1945년 9월 7일 조선인민공화국이 수립됨에 따라 10월 7일에 공식적으로 해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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