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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치 | 전북특별자치도 남서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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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 | 103,590 (2024) |
면적 | 692.78㎢ |
행정구역 | 1개읍 14개면 8개동 |
사이트 | http://www.jeongeup.go.kr/ |
요약 전북특별자치도 남서부에 있는 시. 동학농민혁명의 발상지이며 백제가요 <정읍사>로 알려진 지역이다. 시기동과 초산동 일대에는 정읍사문화거리·공원·국악원·예술회관·시립미술관 등이 조성되어 있고, 덕천면에는 동학농민혁명기념관·기념탑 등이 세워져 있다. 면적 692.78㎢, 인구 103,590(2024).
대한민국 전북특별자치도 남서부에 있는 시. 1995년 정주시와 정읍군이 통합되어 정읍시가 되었다. 백제가요 <정읍사(井邑詞)>의 고장이며 동학농민혁명의 발상지이다. 전북특별자치도 서남권의 교통요지이며 미곡집산지이다. 행정구역은 신태인읍·북면·입암면·소성면·고부면·영원면·덕천면·이평면·정우면·태인면·감곡면·옹동면·칠보면·산내면·산외면·수성동·장명동·내장상동·시기동·시기3동·연지동·농소동·상교동 등 1개읍 14개면 8개동이 있다(행정동 기준, 법정동 기준은 27개). 시청소재지는 충정로이다. 면적 692.78㎢, 인구 103,590(2024).
연혁
지금의 정읍시는 옛 정읍현(井邑縣)·고부군(古阜郡)·태인현(泰仁縣)이 합쳐져 이루어진 시이다. 삼국시대에 이곳은 백제의 영역으로서 고부군은 고사부리군(古沙夫里郡), 태인현은 대시산군(大尸山郡)과 빈굴현(賓屈縣), 정읍현은 정촌현(井村縣)이었다. 신라의 삼국통일 후 757년(경덕왕 16)에 각각 고부군(古阜郡)·태산군(太山郡 또는 泰山郡, 大山郡)·정읍현(井邑縣)으로 개칭되었다. 고려초에 고부군은 영주(瀛州)로 이름이 바뀌었다. 태산군과 정읍현은 1018년에 고부군의 속현이 되었다가 뒤에 현으로 강등되었으나 감무가 파견됨으로써 독립되었다. 조선시대에도 고부군과 정읍현은 그대로 유지되었으며, 1409년(태종 9)에 태산현과 인의현은 태인현으로 병합되었다.
고부군은 1894년 동학농민혁명의 발원지로서 우리나라 근대사에서 가장 뚜렷한 발자취를 남긴 지역 중의 하나이다. 지방제도 개정에 의해 1896년에 모두 전라북도에 소속되었다. 1914년 군면 폐합 때 고부군과 태인군이 폐지되고, 고부군의 15개면이 7개면으로, 태인군의 18개면이 8개면으로 폐합되어 정읍군에 병합됨으로써 면적이 크게 넓어졌다. 1930년에 정읍면이 정주면으로 되었고, 1931년에 정주면이 읍으로 승격되었다. 1935년에 우순면·정토면이 정우면으로 통합되었으며, 보림면이 없어지고 태인면과 북면에 이관되었다.
1940년에 용북면이 신태인읍으로 승격되었고, 1976년에 정주읍에 동부·서부·남부 출장소가 세워졌다. 1981년에 정주읍이 정주시로 승격·분리되었으며, 1983년에 내장면 일원과 소성면의 일부, 덕천면의 일부가 정주시에 편입되었다. 1995년 지방자치선거를 앞두고 실시된 전국행정구역개편으로 농촌지역이던 정읍군과 중심도시기능을 담당했던 정주시가 하나로 통합되어 새로운 형태의 도농통합시인 정읍시를 이루었다. 1998년 관할 행정동 12개동을 8개동으로 통폐합했다(→ 고부군, 인의현). 2024년 1월 18일 전라북도가 전북특별자치도로 출범함에 따라 관할 도의 명칭이 변경되었다.
인구
통합 이전 정주시의 인구는 1981년 시로 승격되기 전부터 지속적으로 증가해왔다. 1970년 4만 9,667명, 1980년 6만 6,009명, 1990년 8만 6,850명으로 1970~90년 20년 사이에 약 85%의 증가율을 나타냈다. 이러한 인구증가는 이촌향도에 의한 인구유입과 함께 영역의 확장을 통해 주변의 인구를 흡수한 결과였다. 한편 통합 이전의 정읍군은 한국의 다른 농촌지역과 마찬가지로 지속적인 인구감소지역이었다. 1970년 25만 9,570명, 1980년 22만 964명, 1990년 9만 8,434명으로, 10만 명 이하로까지 줄어들었다.
그러나 1995년 통합 이후의 정읍시의 인구는 15만 2,446명으로 증가했다. 이후 2000년 15만 2,574명의 정체기 이후 인구하락세가 지속되어 2005년 12만 9,868명, 2010년 12만 3,512명, 2015년 11만 5,977명으로 감소했다. 2024년 기준 인구는 10만 3,590명, 가구수는 5만 4,746가구, 가구당 인구는 1.89명이다. 내장상동(2만 868명)에 가장 많은 인구가 거주하며, 읍면 지역에서는 신태인읍(5,063명)·북면(3,956명)·태인면(3,277명) 순으로 인구가 분포한다.
정읍시 연혁
지금의 정읍시는 옛 정읍현(井邑縣)·고부군(古阜郡)·태인현(泰仁縣)이 합쳐져 이루어진 시이다. 삼국시대에 이곳은 백제의 영역으로서 고부군은 고사부리군(古沙夫里郡), 태인현은 대시산군(大尸山郡)과 빈굴현(賓屈縣), 정읍현은 정촌현(井村縣)이었다. 신라의 삼국통일 후 757년(경덕왕 16)에 각각 고부군(古阜郡)·태산군(太山郡 또는 泰山郡:大山郡)·정읍현(井邑縣)으로 개칭되었다.
고려초에 고부군은 영주(瀛州)로 이름이 바뀌었고, 951년(광종 2)에 부로 승격되었다가 1018년(현종 9)에 다시 군으로 강등되었으나, 1개의 속군과 6개의 속현을 거느린 큰 고장이었다. 태산군과 정읍현은 1018년에 고부군의 속현이 되었다가 뒤에 현으로 강등되었으나 감무가 파견됨으로써 독립되었다.
조선시대에도 고부군과 정읍현은 그대로 유지되었으며, 1409년(태종 9)에 태산현과 인의현은 태인현으로 병합되었다. 고부군은 1894년 동학농민혁명의 발원지로서 우리나라 근대사에서 가장 뚜렷한 발자취를 남긴 지역 중의 하나이다. 지방제도 개정에 의해 1895년에 전주부 관할의 고부군·태인군·정읍군이 되었다가, 1896년에 모두 전라북도에 소속되었다.
1914년 군면 폐합 때 고부군과 태인군이 폐지되고, 고부군의 15개면이 7개면으로, 태인군의 18개면이 8개면으로 폐합되어 정읍군에 병합됨으로써 면적이 크게 넓어졌다. 1930년에 정읍면이 정주면으로 되었고, 1931년에 정주면이 읍으로 승격되었다. 1935년에 우순면·정토면이 정우면으로 통합되었으며, 보림면이 없어지고 태인면과 북면에 이관되었다. 1940년에 용북면이 신태인읍으로 승격되었고, 1976년에 정주읍에 동부·서부·남부 출장소가 세워졌다.
1981년에 정주읍이 정주시로 승격·분리되었으며, 1983년에 내장면 일원과 소성면의 일부, 덕천면의 일부가 정주시에 편입되었다. 1995년 지방자치선거를 앞두고 실시된 전국행정구역개편으로 농촌지역이던 정읍군과 중심도시기능을 담당했던 정주시가 하나로 통합되어 새로운 형태의 도농통합시인 정읍시를 이루었다(→ 고부군, 인의현).
정읍시 자연환경
시의 지세는 동부에서 남부로 걸쳐 있는 노령산맥에 의해 이루어진 산지를 제외하고는 구릉지와 평야가 대부분이다. 상두산(象頭山:575m)·묵방산(墨方山:538m)·장군봉(將軍峰:780m)·국사봉(國師峰:655m)·고당산(高堂山:640m)·내장산(內藏山 : 763m)·상왕봉(象王峰 : 741m)·입암산(笠巖山:626m)·방장산(734m)에 걸쳐진 산맥은 시경계를 이루며 높이 솟아 있고, 시의 중앙에는 구릉성 산지들이 분포한다.
주요 하천인 동진강은 내장동 내장산의 까치봉 북동쪽 계곡에서 발원하여 시의 중앙을 지나 서해로 흘러드는데 유역에는 충적지가 발달해 있어 벼농사가 활발히 이루어진다. 동남부산지에서 시작한 칠보천(七寶川)과 도원천(桃源川)이 동진강에 합류하고, 그 유로를 따라 발달한 소규모 농경지에 관개용수를 공급하고 있다.
시의 북부에는 화봉천과 용호천(龍虎川)이 흐르고 있으며, 중심시가지를 지나 시의 중앙을 북류하여 동진강에 흘러드는 정읍천(井邑川)은 공평동에서 내장천과 합류한다. 정읍천 유역은 대표적인 곡창지대를 이룬다. 시의 서부에는 고부천(古阜川)이 북류하고 있어 인근의 넓은 평야에 농업용수를 공급하고 있다.
시의 동부 임실군과의 경계에는 호남 제일의 내륙호수인 갈담저수지가 있어 농업용수·전력용수·상수원으로 이용되고 있다. 낚시터로도 잘 알려져 있어 최근에는 인근의 수청저수지와 함께 관광개발지로 부각되고 있다. 이밖에도 내장저수지·부전제·용산저수지·내조제·입암저수지·원천저수지·주동저수지·석우제·두승저수지 등이 관개용수로 이용되고 있다.
우리나라 기후구로 볼 때 남부서안형에 속하여 기후가 비교적 온난하다. 연평균기온은 12.7℃ 내외, 1월평균기온은 -1.1℃ 내외, 8월평균기온은 25.9℃ 내외이며, 연평균강수량은 1,282.4㎜ 정도이다. 노령산맥의 지형적인 영향으로 인한 지형성 강수가 많으며 겨울에는 북서계절풍의 영향으로 눈이 많이 내린다. 식생은 온대남부의 낙엽활엽수림대에 속하며, 소나무·노간주나무·오미자·굴피나무와 지역특산물인 복분자딸기 등이 자란다.
정읍시 인구
통합 이전 정주시의 인구는 1981년 시로 승격되기 전부터 지속적으로 증가해왔다. 1970년 4만 9,667명, 1975년 5만 4,864명, 1980년 6만 6,009명으로, 1970~75년, 1975~80년에 인구가 각각 10.5%, 20.3%로 크게 증가했다.
시로 승격된 이후 인구증가가 계속되어 1985년은 7만 9,332명으로 1980년에 비해 20.2%가 증가했고, 1990년에는 증가율이 둔화되어 1985년 대비 9.5%가 증가한 8만 6,850명이 되었다. 이러한 인구증가는 이촌향도에 의한 인구유입과 함께 영역의 확장을 통해 주변의 인구를 흡수한 결과였다. 1990년 인구이동상황을 보면 전출이 1만 4,300명, 전입이 1만 7,980명으로 전입이 더 많았으며, 전입·전출 모두 도외 이동이 많았다.
1995년 통합 이전의 정읍군은 한국의 다른 농촌지역과 마찬가지로 지속적인 인구감소지역이었다. 1970년 25만 9,570명이던 인구는 1975년 24만 8,156명으로 5년 동안 4.4%가 감소했으며, 1980년 22만 964명으로 1975~80년에는 무려 11.0%가 감소했다. 1981년에는 정주시가 분리되면서 인구가 15만 4,765명으로 크게 감소했으며 1985년에는 12만 476명이 되었다. 1990년에는 1985년에 비해 18.3%가 감소한 9만 8,434명으로, 10만 명 이하로까지 줄어들었다. 그러나 1995년 인구증가지역이던 정주시와 통합되어 인구는 15만 2,446명으로 증가했다. 1996년에는 인구가 다소 줄어 15만 979명이 되었는데, 15개 읍·면지역에서 모두 인구감소를 보였다.
2024년 기준 인구는 10만 3,590명으로 1996년 대비 약 15.6%가 감소했다. 행정동별로 인구분포를 보면 읍·면지역에 시 전체인구의 42%가, 동지역에 58%가 거주하고 있다. 1만 명 이상의 인구가 거주하는 지역은 내장상동·수성동 등이다.
정읍시 산업과 교통
주요하천인 동진강·정읍천·고부천 유역에 넓게 발달한 충적평야는 김제평야의 일부로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곡창지대를 이루고 있다. 경지율은 38.1%로 매우 높은 편이며, 총경지면적 254.83㎢ 가운데 논이 180.03㎢, 밭이 74.80㎢로 논이 2배 이상 많다(2006).
주요농산물로는 쌀을 비롯하여 김장 무·배추 등의 채소, 감곡면·옹동면의 고추·참깨, 북면·소성면의 땅콩과 북면의 사과, 산내면의 감 등 과일생산이 활발하다. 양송이·입담배 등도 생산되며 과교동·수성동에는 양잠업이 발달했다. 축산업은 산외면·덕천면·이평면을 중심으로 한우·젖소·돼지의 사육이 활발하나 대부분 농가부업형 축산으로 매우 영세하다.
그동안 공업의 발달은 매우 부진했으나 최근 서해안개발정책의 추진에 힘입어 공업단지 및 농공단지의 개발을 통해 공업화가 진전되고 있다. 총공장수는 184개소, 종업원수는 4,408명에 이른다(2006). 공장은 주로 농소동의 공업단지와 북면의 정읍공업단지와 농공단지 그리고 입암면의 입암직물단지에 입지해 있다. 농소동의 공업단지에는 중소시범단지와 농공단지가 있는데, 중소시범단지에는 제지·식료공업, 농공단지에는 기술집약업종인 전기전자공업소가 입지해 있다. 이밖에 음식료품·조립금속·석유화학 업체 등이 있다.
과거에는 상권이 고창군·순창군·부안군까지 미쳤으며, 특히 고부면 일대는 인근의 줄포·염포 등의 나루를 통해 운반된 농산물과 수산물의 집산지로 상업이 발달한 전라북도 서해안지방의 중심지였으나 인구감소와 교통의 발달 등으로 전주시 등에 상권을 빼앗겨 상업기능이 매우 위축되었다. 시기동의 제1시장, 연지동의 제2시장, 공평동의 가축시장 등이 있으며, 신태인읍·태인면·칠보면 등에서 정기시장이, 신태인읍에서는 가축시장이 열린다. 또한 연지동과 수성동에 청과시장이 있다.
호남선이 시의 중서부에 북-남서 방향으로 뻗어 있고, 호남고속도로가 시의 중앙을 북동-남서 방향으로 지나고 있는 교통의 요지이다. 전주-광주를 잇는 국도가 호남고속도로와 나란히 달리고, 목포·영광·담양·부안·임실·광주 등을 잇는 국도가 지난다. 또한 서해안고속도로가 시의 서부를 통과한다. 호남선 개통 이후 철도와 국도의 통과지점이었고, 근래에 와서는 철도복선화와 고속도로의 4차선 확장으로 명실공히 교통의 요충지가 되었다.
또한 지방도도 이곳을 중심으로 사통팔달하고 있어 각 지역과의 연계가 양호하다. 그러나 도시 내부의 교통망 체계와 도로사정 및 부속 교통시설의 수준은 크게 미흡하다. 특히 순환 우회도로가 적어 통과교통의 처리가 비효율적이고, 도심의 가로망이 좁아 교통혼잡과 주차난이 가중되고 있다. 도로총길이 585.91km, 도로포장률 75.6%이다(2006).
정읍시 유물·유적·관광
시내에는 국가지정문화재(국보 1, 보물 8, 사적 3, 천연기념물 1, 중요민속자료 1), 도지정문화재(유형문화재 17, 기념물 19, 민속자료 2, 무형문화재 8), 문화재자료 15점이 있다.
그밖에 문화재의 보고라고 할 만큼 일반 문화유적도 풍부하다. 선사시대 유적으로는 북면에 장학리입석·승부리입석 등이 있다. 고분군은 영원면의 은선리고분군(隱仙里古墳群 : 전북특별자치도 기념물 제57호)·운학리고분군(雲鶴里古墳群 : 전북특별자치도 기념물 제58호) 등 7개소가 있으며 거의가 삼국시대에 축조된 것으로 추정된다. 읍성과 산성으로는 고부면의 고부구읍성(古阜舊邑城:전북특별자치도 기념물 제53호)·두승산성(斗升山城:전북특별자치도 기념물 제54호), 덕천면의 우덕리산성(優德里山城 : 전북특별자치도 기념물 제51호), 영원면의 금사동산성(金寺洞山城 : 전북특별자치도 기념물 제55호) 등이 있다.
불교문화재로는 영원면의 정읍은선리3층석탑(井邑隱仙里三層石塔 : 보물 제167호), 천곡사지7층석탑(泉谷寺址七層石塔 : 보물 제309호), 소성면의 정읍보화리석불입상(井邑普化里石佛立像 : 보물 제914호), 고부면의 장문리5층석탑(長文里五層石塔 : 전북특별자치도 유형문화재 제13호)·내장사이조동종(內藏寺李朝銅鐘 : 전북특별자치도 유형문화재 제49호)·남복리5층석탑(南福里五層石塔 : 전북특별자치도 유형문화재 제95호)·남복리미륵암석불(南福里彌勒庵石佛 : 전북특별자치도 유형문화재 제99호), 영원면의 후지리탑동석불(後池里塔洞石佛 : 전북특별자치도 유형문화재 제98호)·망제동석불입상(望帝洞石佛立像 : 전북특별자치도 유형문화재 제118호) 등이 있다.
그밖에 내장동의 영은사지(靈隱寺址:전북특별자치도 기념물 제63호)·내장사지(內藏寺址 또는 碧蓮寺址:전북특별자치도 기념물 제73호) 및 내장사·정재암(淨齋庵)·월조암(月照庵)·대원사(大圓寺) 등이 있다. 유교문화재로는 1398년(태조 7)에 창건된 장명동의 정읍향교대성전(井邑鄕校大成殿 : 전북특별자치도 문화재자료 제73호), 상평동의 고암서원묘정비(考巖書院廟庭碑:전북특별자치도 문화재자료 제81호), 흑암동의 정충사지(旌忠祠址:전북특별자치도 기념물 제74호), 과교동의 유애사(遺愛祠:전북특별자치도 기념물 제18호), 수성동의 충렬사 등의 사우와 태인향교대성전(泰仁鄕校大成殿 : 전북특별자치도 문화재자료 제75호)·고부향교대성전(古阜鄕校大成殿 : 전전북특별자치도 문화재자료 제74호)이 있으며, 서원으로는 사액서원인 무성서원(武城書院:사적 제166호)·동죽서원(東竹書院:전북특별자치도 문화재자료 제77호)·도계서원(道溪書院:전북특별자치도 문화재자료 제79호) 등이 있다.
그밖에 연지동의 의안백이화개국공신녹권(義安伯李和開國功臣錄券:국보 제232호), 가야금산조(전북특별자치도 무형문화재 제5호), 수성동의 송우암수명유허비(宋尤菴受命遺墟碑:전북특별자치도 유형문화재 제50호), 내장동의 영보단유지(永報壇遺址), 영파동의 영파정, 삼한시대의 산성으로 알려진 초산성(礎山城), 태인면의 태인동헌(泰仁東軒 : 전북특별자치도 유형문화재 제75호), 동학유적인 덕천면 하학리의 황토현전적지(黃土峴戰蹟地 : 사적 제295호), 이평면 장내리의 전봉준장군고택지(全琫準將軍故宅地 : 사적 제293호) 등이 있으며, 산외면 오공리에는 정읍김동수씨가옥(井邑金東洙氏家屋 : 중요민속자료 제26호)이 있다.
정자와 누각으로는 태인면의 피향정(披香亭:보물 제289호)과 태인향교만화루(泰仁鄕校萬化樓 : 전북특별자치도 유형문화재 제121호) 등이 있다. 천연기념물로는 내장동의 내장산 굴거리나무군락(천연기념물 제91호)이 있다. 또한 이 고장은 돌아오지 않는 남편을 애타게 기다리다가 망부상(望夫像)이 된 여인을 노래한 백제가요인 〈정읍사 井邑詞〉로도 유명하다. 동학을 비롯한 신흥민족종교의 유적 등 많은 역사·문화 관광자원을 보유하고 있으며, 내장산국립공원과 인근지역의 관광자원과 연계가 다양하여 관광개발의 잠재력이 매우 크다.
내장산국립공원은 가을단풍으로 유명해 전국에서 해마다 많은 관광객이 모이며, 최근 사계절 관광지로 도약하고자 주변 연계관광지의 거점이 되도록 개발을 서두르고 있다. 특히 내장동의 내장저수지와 과교동의 용산저수지 주변에 관광위락단지 건설과 관광농원 등의 조성을 계획하고 있다. 이곳의 산딸기로 빚은 복분자술은 특히 유명하다. 이밖에 변산반도, 도립공원인 선운산·모악산을 비롯해 상록해수욕장·장성호·담양호 등 연계관광자원이 풍부하여 관광개발 잠재력이 매우 높다.
그러나 황토현전적지·전봉준장군고택지·만석보지 등에는 관광편익시설이 미비한 편이다. 앞으로 동학유적과 유교 및 불교 유적을 이용한 학습수련 위주의 관광개발과 숙박위락시설 및 인근관광지와의 연계도로에 대한 투자가 이루어지면 관광산업이 활기를 띨 것으로 보인다.
정읍시 교육과 문화
전통 교육기관으로는 창건 연대를 알 수 없는 고부향교와 1398년(태조 7)에 창건되었다가 1638년(인조 16)에 현재의 장명동으로 이전된 정읍향교, 1421년(세종 3)에 창건된 태인향교 및 상평동의 고암서원이 있었다.
근대 교육기관은 1906년 설립된 사립 광화학교를 시작으로 1908년 고부보통학교가 설립되었고 그후 태인·화호·칠보 초등학교와 초남학교(楚南學校)·정읍공립농업학교·정읍공립여학교 등이 차례로 세워졌다. 2006년 현재 유치원 49개소, 초등학교 38개교, 중학교 20개교, 고등학교 13개교, 전북과학대학이 있다. 문화단체로는 정읍문화원과 예총정읍지부가 있고, 문화시설로는 시립도서관·청소년수련관·여성회관·실내체육관 등이 있다. 특히 정읍사의 예맥을 전승하여 지역예술의 저변을 넓히고 지역문화공간을 확보하기 위한 정읍사문화제 행사가 매년 10월에 개최된다.
민속놀이로는 정우면 대산리에서 행해지는 대산밟기를 비롯해 윷놀이·연등놀이·쥐불놀이·화전놀이·널뛰기·줄다리기·강강술래 등이 있다. 또한 가을 단풍놀이 관광객을 위한 민속행사로서 단풍제가 매년 열린다. 지금까지 행해지고 있는 대표적인 동제로는 옹동면 매정리 내동마을의 당산제가 있다. 설화로는 〈정읍사와 망부석 전설〉이 유명하고, 그밖에 〈불출암전설〉·〈금선폭포전설〉·〈최숙빈과 대각교(大脚橋) 전설〉·〈율지전설 栗池傳說〉 등이 있으며, 민요로는 상업이 발달했던 지역의 특색을 나타내는 〈장사노래〉가 많으며 이 고장을 대표하는 〈파랑새요〉가 있고, 그밖에 길쌈 노동요와 〈베틀노래〉·〈새타령〉·〈흥타령〉 등이 전한다.
이 지역은 지리적 명당으로 일찍이 신흥종교의 발달이 많았던 곳이다. 2006년 현재 의료기관으로는 종합병원 1개소, 병원 5개소, 의원 72개소, 요양병원 1개소, 치과의원 25개소, 한의원 22개소, 보건소 관련 의료기관 42개소가 있으며, 사회복지시설로는 아동복지시설 1개소, 노인복지시설 7개소, 장애인복지시설 7개소가 있다(→ 정읍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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