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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평양특별시 낙랑(樂浪)구역 정백동에 있는 낙랑의 무덤떼(낙랑고분).
대동강 남안의 오봉산(五峰山)에서 동북쪽으로 뻗어나간 두 줄기의 구릉 가운데 서북쪽 구릉에 260기가량의 무덤들이 있다.
1930년대에 일본인들에 의해 일부 무덤이 발굴·조사되었으며 1961~71년까지 북한 학자들에 의해 발굴·조사가 진행되었다. 무덤떼의 서북쪽으로 1.5km 떨어진 지점에는 낙랑군의 치지(治址)로 전하는 토성(土城)이 있다. 무덤 구조는 덧널무덤[土壙木槨墓]과 벽돌무덤[塼築墳]이 대부분이고 그밖에 독무덤[甕棺墓]이 몇 기 있다. 무덤 속에서는 중국 한(漢)나라 계통의 유물과 북방계 및 토착계 유물들이 함께 나오고 있어 한군현(漢郡縣)으로 출발한 낙랑의 사회구성과 문화성격이 단순하지 않았음을 말해주고 있다.
대표적인 무덤으로는 정백동1호분·정백동2호분·정백동3호분·정백동37호분이 있다.
정백동1호분은 덧널무덤으로 봉분 중심부 지하에 판 무덤구덩이에 덧널을 설치하고 그 안에 널을 넣었다. 널 안팎에는 좁은놋단검을 비롯하여 좁은놋창끝·쇠단검·쇠가지창과 같은 청동제 및 철제 무기류와 말관자·말재갈 등의 마구류, 화분형단지를 포함한 질그릇류와 유리장식 등의 장신구류 및 은제도장[龜紐銀印] 등 110여 점의 유물이 수습되었다.
은제도장에는 '부조예군'(夫租濊君)이라는 글이 새겨져 있어 부조예군묘로 불리기도 하며 묘 주인이 부조(夫租)의 군장(君長)이었고 예(濊) 계통의 인물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무덤의 축조시기는 낙랑군이 함흥·원산 일대에 동부도위(東部都衛)를 설치하는 BC 75년 이전에서 그리 멀지 않은 시기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정백동3호분은 2개의 덧널에 각각 하나씩 널이 안치된 이곽합장형덧널무덤[異槨合葬形土壙木槨墓]이다.
무덤구덩 바닥의 서쪽 부분이 동쪽 부분보다 10cm가량 높은 것으로 보아 2개의 덧널이 각기 다른 시기에 설치되었을 가능성이 많다. 서쪽 덧널의 크기는 3.00×1.35×0.60m이며 동쪽 덧널의 크기는 3.00×1.25×0.70m이다. 껴묻거리의 내용으로 보아 서쪽 널은 남자, 동쪽 널은 여자의 것으로 추정된다. 무덤 안에서는 좁은놋창끝과 놋창집, 쇠칼 등 청동제 및 철제 무기류, 바닥에 '주'(周)자가 쓰인 칠잔과 칠쟁반 등 여러 가지 옻칠그릇과 화분형단지와 같은 질그릇류, '대주명'(大周銘) 옻칠화장품통, 은가락지, 구슬과 같은 장신구류, 성운문경(星雲文鏡)·소명경(昭明鏡) 등의 동경(銅鏡), 명도전(明刀錢), 오수전(五銖錢) 등의 동전, 견직물조각과 은제도장 등의 유물이 200여 점 발견되었다.
은제도장에는 '주고'(周古)라는 새김글이 있어 이 무덤은 주고묘로도 불린다. 유물내용과 무덤구조로 보아 BC 1세기 후반경에 축조된 무덤으로 추정된다.
정백동37호분은 2개의 덧널이 각기 다른 무덤구덩에 설치된 이곽합장형덧널무덤으로 남자가 묻힌 북쪽 덧널에는 껴묻거리 상자가 덧붙어 있다. 피장자는 모두 동침(東枕)이다. 무덤 안에서는 청동제 및 철제 무기류와 거여구, 마구류, 여러 가지 옻칠그릇과 질그릇, 일광경(日光鏡)·소명경·명광호문경(明光弧文鏡) 등의 동경과 옥으로 만든 장신구류, 놋솥과 같은 제사용품, 비단과 모직물 조각들이 출토되었다.
칠갑(漆匣)의 묵서명문에 '지절4년2월'(地節四年二月)이라는 글이 있어 이 무덤이 BC 1세기 중엽에 축조된 것임을 알려주고 있다.
정백동2호분은 한 덧널 안에 2개의 널이 나란히 안치된 동곽합장형덧널무덤[同槨合葬形土壙木槨墓]이다. 덧널의 크기는 2.8×2.5×0.56m이며 피장자는 모두 북침이다. 덧널의 안팎에서는 좁은놋단검과 검집, 쇠뇌·도끼와 같은 청동제 및 철제무기, 공구류, 말관자·말굴레장식·양산대꼭지와 같은 거여구와 마구류, '부성군'(富成君)이라는 묵서가 있는 귀잔[耳杯]·칠상(漆床)·칠반(漆盤) 등 여러 가지 옻칠그릇과 화분형단지, 배부른 단지와 같은 질그릇, 일광경·소명경 등 동경과 장신구들, 견직물조각과 도장, 복숭아씨 등이 발견되었다.
양산대에 새겨진 '영시3년12월탄정씨작'(永始三年十二月呑鄭氏作)이라는 글과 '부조장인'(夫租長印), '고상현인'(高常賢印)이라는 도장새김글을 통해 BC 14년 이후에서 멀지 않은 시기에 죽은 부조현장(夫租縣長) 고상현의 무덤임을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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