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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 이탈리아 베네벤토 공국 산세베리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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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 752. 3. 14/22, 로마 |
국적 | 바티칸시티 |
요약
축일은 3월 15일. 교황(741~752 재위).
(영). Zachary.
그리스 출신으로 741년 11(또는 12)월 교황 그레고리오 3세를 계승하기 전까지 로마 부제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재위기간에 롬바르디아, 프랑크 왕국, 비잔티움 제국과 외교관계를 수립하는 데 전념했다.
그는 비잔티움 관구 라벤나를 정복하지 못하도록 롬바르디아 통치자 리우트프란트와 라키스를 설득하는 한편 화해정책을 시도함으로써 성공적으로 롬바르디아와 평화를 유지했다. 또한 성상(聖像) 공경을 회복하도록 충고한 비잔티움 황제 콘스탄티누스 5세 코프로니무스와도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했다. 자카리아와 프랑크 왕국의 관계도 우호적이었다. 독일의 사도 보니파시오와의 친분은 당시 프랑크 왕궁에서 일어난 사건에 그가 얼마나 영향력을 끼쳤는가를 보여준다. 741년 그는 보니파시오를 교황 대사로 임명하여 프랑크 왕국 교회개혁의 임무를 맡겼다.
그는 메로빙거 최후의 왕 킬데리크 3세의 폐위를 지지했고, 단신왕 피핀 3세를 프랑크 왕으로 지명할 권한을 프랑크 교회에 주었다. 자카리아가 왕권을 메로빙거에서 피핀(카롤링거)가(家)로 옮기자 카롤링거가와 교황이 동맹을 맺게 되었고, 이로써 교회와 국가의 새 시대를 열었다. 이것은 장차 교황과 황제의 관계에 심대한 영향을 미쳤고, 11~12세기의 서임권 논쟁에 매우 중요한 쟁점이 되었다. 이 논쟁은 세속의 통치자가 주교와 수도원장을 임명할 수 있는 권한과 관련되어 있다. 이 권한은 교황청과 신성 로마 제국 사이의 권력투쟁에서 쟁점이 되었다. 동방에서 자카리아는 교황 그레고리오 1세가 쓴 〈대화 Dialogues〉를 그리스어로 번역한 것으로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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