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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현왕후

다른 표기 언어 仁顯王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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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1667(현종 8)
사망 1701(숙종 27)
국적 조선, 한국
종교 유교(성리학)
본관 여흥(驪興, 지금의 경기도 여주시)

요약 조선의 제19대 왕 숙종의 계비. 인경왕후가 죽고 서인들이 집권한 뒤 1681년 숙종의 계비가 되었으나, 왕자를 낳지 못해 왕과의 관계가 원만하지 못한 데다가 숙원 장씨가 왕자를 낳자 서인과 남인 간의 권력다툼 과정에서 희빈 장씨와 함께 희생양이 되었다. 1689년 2월 송시열 등 노론이 윤을 원자로 책봉하는 데 반대하면서 인현왕후는 그해 5월 폐위되었고, 다음해 10월 희빈 장씨가 왕비로 책봉되었다. 그러나 1694년 폐비복위운동을 계기로 갑술환국이 일어나 다시 남인이 밀려나고 소론이 정권을 장악하자, 장씨는 희빈으로 강등되고 그녀는 왕비로 복위되었다.

서인과 남인 간의 권력 다툼 과정에서 희빈 장씨와 함께 희생양이 되어 요절했다. 여흥민씨(與興閔氏)로 아버지는 노론인 여양부원군 유중(維重)이며, 어머니는 서인의 거두 송준길(宋浚吉)의 딸이다.

1680년(숙종 6) 김만기(金萬基)의 딸 인경왕후(仁敬王后)가 죽고 5월 경신대출척으로 서인들이 다시 집권한 뒤, 1681년 가례를 올리고 숙종의 계비가 되었다. 왕자를 낳지 못해 왕과의 관계가 원만하지 못했는데, 1688년 숙원 장씨(淑媛張氏)가 왕자 윤(昀 : 뒤의 경종)을 낳았다. 1689년 2월 송시열(宋時烈) 등 노론이 윤을 원자로 봉하는 데 반대하면서 숙종과 대립한 결과 기사환국으로 남인이 다시 집권하면서 장씨는 희빈이 되었다.

민씨는 그해 5월 남인들의 주장으로 폐위되었고, 다음해 10월 희빈 장씨가 왕비로 책봉되었다. 그러나 1694년 김춘택(金春澤)·한중혁(韓重爀) 등의 폐비복위운동을 계기로 갑술환국이 일어나 다시 남인이 밀려나고 소론이 정권을 장악하자, 장씨는 희빈으로 내려지고 민씨가 다시 왕비로 복위되었다. 1701년 8월 원인 모를 질병으로 죽었고, 이와 관련되어 희빈 장씨도 무고사(巫蠱事)로 사사되었다.

존호는 효경숙성장순(孝敬淑聖莊純), 휘호는 의열정목(懿烈貞穆), 능호는 명릉(明陵)이다. 그녀의 일대기를 그린 소설 〈인현왕후전〉이 전한다.

명릉(明陵)

조선 제19대 왕인 숙종과 계비 인현왕후, 인원왕후의 능이다.

ⓒ Naturehead/wikipedia | CC BY-SA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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