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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1701년(숙종 27) 희빈 장씨가 인현왕후를 무고(巫蠱:무술로써 남을 저주하는 일)한 사실이 발각되어 일어난 사건.
숙종은 오랫동안 아들이 없다가 1688년에 궁녀 장소의 소생의 왕자 균(畇:뒤의 경종)을 얻자, 이듬해 정월에 균을 세자로 책봉하고 장소의를 희빈으로 봉했다.
그해 5월에는 민비를 폐하고, 희빈 장씨를 왕비로 올렸다. 그런데 1694년 노론인 김춘택 등이 민비의 복위운동을 일으키자 숙종은 민비를 폐출한 것을 후회하고 민비를 복위시켰으며, 장씨를 희빈으로 다시 내렸다. 이때 희빈 장씨의 오빠인 장희재가 희빈에게 보낸 편지가 발각되었는데, 여기에는 민비를 해하려는 음모가 씌어 있었다. 따라서 그 죄를 물어 장희재를 죽이려 했으나, 정권을 잡고 있는 소론들이 세자에게 미칠 영향을 생각해 장희재가 화를 면하도록 했다.
그러나 1701년 민비가 원인 모를 병으로 죽었을 때 희빈이 취선당(就善堂) 서쪽에 신당을 차려놓고 민비를 저주했다는 사실이 발각되었다. 이에 숙종은 희빈 장씨를 자진하도록 하고, 장희재와 그 일파를 죽였다. 또한 그 일에 관련된 궁인(宮人)과 무녀도 죽였다. 이 사건을 '무고의 옥'이라 한다. 이때 세자를 생각해 희빈 장씨를 용서해주도록 청했던 남구만·최석정 등의 소론 대신들은 파직·유배당하는 등 몰락했고, 그 대신 노론이 다시 득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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