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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1858~93년 프랑스는 인도차이나연합을 만들어 베트남·캄보디아·라오스를 속국으로 만들었다. 1940~41년 일본이 베트남 북부 통킹 지역 및 인도차이나의 나머지 지역을 점령했으나, 베트남과 캄보디아 서부지방을 제외한 지역은 일본의 영향을 받지 않았다. 일본은 1945년 3월 베트남을 자치국으로 선포했으나 이 체제는 8월 일본의 항복으로 막을 내렸고, 북부에서는 베트남 민주공화국이 선포되었다. 라오스와 캄보디아는 프랑스가 재점령했다. 프랑스는 인도차이나연방을 만들어 프랑스연합에 가입시키고, 베트남 민주공화국을 독립국으로 인정했다. 제1차 인도차이나 전쟁이 소강상태가 되자 프랑스는 3국을 자치독립국으로 인정하고 프랑스령 인도차이나로 연합했다. 3국의 진정한 독립은 1954년 제네바 회의 이후 이루어졌다.
처음에는 프랑스 제국에, 나중에는 프랑스 연합에 소속되어 있었다. 인도차이나라는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 지역의 문화는 인도와 중국의 영향을 함께 받아 형성되었다. 1858~93년에 프랑스는 인도차이나를 점차 속국으로 만든 후 이곳을 통치하기 위해 첫 인도차이나 연합을 만들었다.
베트남 남단의 코친차이나(프랑스령 코친차이나)를 제외한 원래의 베트남·캄보디아·라오스 왕조 지배지역들은 연방의 형태로 중앙정부에 소속되었고, 프랑스 상무장관 휘하의 프랑스인 총독이 주도하는 중앙정부가 이들 지역의 외교·재정·국방·세무·공공사업을 독점 관리했다. 코친차이나의 행정은 지사 1명과 프랑스인으로 구성된 관료들이 맡았다.
1940~41년에 일본이 베트남 북부의 통킹 지역 및 인도차이나의 나머지 지역을 점령했으나, 일본이 동맹국인 타이에게 양도한 베트남과 캄보디아 서부지방을 제외한 나머지 지역의 행정체계는 일본 침략의 영향을 받지 않았다. 비시 프랑스에 소속된 현지정부가 계속 존속하도록 허용했던 일본은, 1945년 3월에 프랑스인 관리들을 억류하고 베트남을 자치국으로 선포했다. 이런 체제는 1945년 8월 일본의 항복으로 막을 내렸고, 북부에서는 베트남의 민족지도자 호치민[胡志明]이 이끄는 베트민[越盟]이 지체없이 베트남 민주공화국을 선포하고 정권을 잡았다.
라오스와 캄보디아의 군주들은 베트남 방식의 채택을 주저하다가 곧 프랑스에 재점령되었다. 그뒤 프랑스는 인도차이나 연방을 만들어 좀더 큰 규모로 새로 창설된 프랑스 연합에 가입시키고, 베트남 민주공화국을 이 연합 내의 독립국으로 인정했다. 그러나 프랑스 연합은 몇 해를 넘기지 못했고, 이 지역은 파리에서 직접 관할했다. 곧이어 벌어진 제1차 인도차이나 전쟁이 1949~50년 일시적 소강상태에 접어들자 프랑스는 인도차이나 지역을 계속 장악할 목적으로 베트남·라오스·캄보디아를 프랑스 연합 내의 자치적인 독립국으로 인정하는 3개의 조약을 비준하고 이 나라들을 '프랑스령 인도차이나'로 연합했다.
프랑스가 이들 나라를 자치 독립국으로 인정했다고 하지만 이 시기의 3개국 지도자들은 꼭두각시에 지나지 않았고, 진정한 독립은 1954년에 열린 제네바 회의에서 프랑스와 베트민 사이에 휴전협정이 체결된 이후 이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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