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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870(고종 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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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 1907(융희 1) |
국적 | 한말, 한국 |
요약 한말의 의병장.
자는 한유, 호는 지포. 1905년 을사조약이 강제체결되자 1906년 3월 정용기·정순기·손영각 등과 더불어 경상북도 영천에서 의병을 일으켰다. 의병진영을 산남창의진이라 명명하고, 인근의 24개 고을에 71명의 의병장을 배치하고 부서를 확정했다.
정용기가 대장이 되고 그는 중군장이 되었다. 정용기가 우각 전투에서 일본군에게 체포되자, 휘하의 의병을 인솔하여 주왕산으로 들어가 의병항쟁을 계속했다. 중과부적으로 의진을 해산했다가 1907년 4월 석방된 정용기와 함께 재차 의병을 일으켜 일본군 수비대가 주둔하고 있는 청하를 공격했다.
8월 자양과 신성으로 진격하여 일본군을 격파하고, 우재룡의 지휘하에 있던 해산군인들과 합류하면서 한결 강화된 무장력을 갖추었다. 이어 영천·경주·청하·청송 일대를 공략하다가 9월초 입암리에서 일본군의 기습공격을 당해 정용기·손영각·권규섭 등과 함께 전사했다. 1963년 건국훈장 국민장이 추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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