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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치 | 경기도 동남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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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 | 221,693 (2024) |
면적 | 461.3㎢ |
행정구역 | 2개읍 8개면 4개동 |
사이트 | http://www.icheon.go.kr/site/ic/main.do |
요약 경기도 동남부에 있는 시. 1996년 행정구역 개편때 이천군에서 시로 승격되었다. 남한강의 지류 연안에 넓은 평야가 펼쳐져 있으며, 경기미를 대표하는 이천쌀이 재배되고 있다. 도자기공업이 관광산업으로 행해진다. 영동고속도로와 중부고속도로가 서로 연결되어 교통이 편리하다. 도예촌과 함께 이천온천, 용풍·성호·용면저수지가 대표적인 관광지이다. 면적 461.3㎢, 인구 221,693(2024).
경기도 동남부에 있는 시. 1996년 시로 승격했다. 경기도 중서부의 평야지대와 강원도·충청북도의 내륙산간지대를 연결하는 교통의 요지이다. 농산물이 풍부하고 서울에 가까운 수도권지역으로 제조업도 발달했다. 장호원읍·부발읍·신둔면·백사면·호법면·마장면·대월면·모가면·설성면·율면·창전동·증포동·중리동·관고동 등 2개읍 8개면 4개동이 있다(행정동 기준, 법정동 기준은 15개). 시청소재지는 경기도 이천시 부악로 40이다. 면적 461.3㎢, 인구 221,693(2024).
연혁
지금의 이천시는 옛 이천도호부(利川都護府)와 음죽현(陰竹縣)이 합하여 이루어진 시이다. 옛 이천도호부는 삼국시대에 백제의 남매현(南買縣) 또는 고구려의 남천현(南川縣)이었으나 신라의 북진에 따라 신라의 세력권에 들어 568년(진흥왕 29)에는 이곳에 남천정(南川停)이 설치되었다. 통일신라 757년(경덕왕 16)에 황무현으로 개칭, 한주의 영현이 되었다.
고려초에 이천현(利川縣)으로 이름을 바꾸고 광주의 속현이 되었다. 1413년(태종 13)에 군현제 개편에 따라 이천현이 되고, 1444년(세종 26)에 도호부로 승격했다. 지방제도 개정에 의해 1895년에 충주부 이천군, 1896년에 경기도 이천군이 되었다. 1914년 군면 폐합으로 음죽군이 폐지되어 이천군에 합병됨으로써 면적이 넓어졌다. 이때 면의 폐합도 이루어져 읍내면·신둔면·백사면·부발면·대월면·모가면·호법면·마장면 등으로 통합되었다. 음죽군의 8개면은 청미면·설성면·율면의 3개면으로 폐합되어 이천군에 편입되었다.
1938년에 읍내면이 이천읍으로, 1941년에 청미면이 장호원읍으로 승격되었으며, 1989년에 부발면이 부발읍으로 승격되었다. 1996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이천군이 시로 승격했다. 이때 이천읍은 폐지되고 창전동·관고동·중리동 등 3개 행정동으로 분할되어 11개 법정동을 관할하게 되었다. 같은 해 5월, 대월면의 초지출장소가 폐지되었고 대월면에 속한 단원리·장록리·대포리·고담리는 중리동에 편입되었다. 2003년 창전동에서 안흥동·갈산동·증포동·송정동이 분리되어 증포동으로 재편되었다. (→ 음죽현).
인구
수도권 공장의 지방분산정책에 따라 1980년대초부터 많은 제조업체들이 입주하기 시작한 인구유입지역이다. 1980년대 이후의 인구를 보면 1980년 11만 168명, 1985년 12만 4,872명, 1990년 14만 8,600명으로 꾸준히 증가하여 1980~90년의 10년 동안 35%의 인구증가율을 보였다. 그러나 이 기간 동안 공장이전으로 공업이 발달한 부발읍은 121%의 인구증가를 보인 반면에 대부분의 면지역은 오히려 인구가 감소했다. 특히 율면은 약 35%의 인구감소를 보였다. 1990년대 들어서는 인구증가율이 둔화되어 시로 승격한 1996년의 시인구는 15만 5,622명으로 1990~96년 동안 불과 4.7%의 인구증가율을 보였다.
2000년대 이후에도 미약하게 증가추세가 이어져 2005년 19만 4,130명, 2010년 20만 6,920명, 2023년 인구는 22만 2,451명으로 1996년 대비 약 30%가 증가했다. 인구증가와 더불어 가구수도1996년 5만 1,120가구에서 2020년 9만 7,771가구로 증가했다. 전체인구의 57%가 읍·면 지역에 거주하고, 나머지 43%의 인구가 이천읍이었던 동지역에 거주한다. 2만 명 이상의 인구가 거주하는 지역은 증포동(5만 7,554명)·부발읍(3만 6,430명) 등이며, 율면(2,549명)에는 인구가 적게 분포한다. 신둔면 수광리·수하리·남정리와 사음동에는 도요지를 중심으로 형성된 도예촌이 있다. 가구수는 102,517가구이다.
연혁
지금의 이천시는 옛 이천도호부(利川都護府)와 음죽현(陰竹縣)이 합하여 이루어진 시이다. 옛 이천도호부는 삼국시대에 백제의 남매현(南買縣) 또는 고구려의 남천현(南川縣)이었으나 신라의 북진에 따라 신라의 세력권에 들어 568년(진흥왕 29)에는 이곳에 남천정(南川停)이 설치되었다가 604년(진평왕 26)에 폐지되었다.
백제 멸망 후인 662년(문무왕 2)에 남천주를 두었다. 삼국통일 후 지방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757년(경덕왕 16)에 황무현으로 개칭, 한주의 영현이 되었다. 고려초에 이천현(利川縣)으로 이름을 바꾸고 광주의 속현이 되었다가, 1143년(인종 21)에 감무를 둠으로써 독립했다. 1257년(고종 44)에 영창현(永昌縣)으로 개칭하고, 1392년에 남천군(南川郡)으로 승격되었으나, 고려가 망하고 조선이 건국됨에 따라 1393년(태조 2)에 다시 이천현으로 복구되었다.
이어 시행된 군현제 개편에 따라 1413년(태종 13)에 이천현이 되고, 1444년(세종 26)에 도호부로 승격했다. 그러나 1613~23, 1644~53, 1729~37, 1776~95년에 현으로 강등되기도 했다. 지방제도 개정에 의해 1895년에 충주부 이천군, 1896년에 경기도 이천군이 되었다. 1914년 군면 폐합으로 음죽군이 폐지되어 이천군에 합병됨으로써 면적이 넓어졌다. 이때 면의 폐합도 이루어져 이천군의 읍면·둔면(일부)이 읍내면으로, 신면·둔면(일부)이 신둔면으로, 사면·백면이 백사면으로, 부면·발면이 부발면으로, 대면·월면·초면이 대월면으로, 모면·가면이 모가면으로, 호면이 호법면으로, 마면·장면이 마장면으로 통합되었다.
음죽군의 8개면은 청미면·설성면·율면의 3개면으로 폐합되어 이천군에 편입되었다. 1938년에 읍내면이 이천읍으로, 1941년에 청미면이 장호원읍으로 승격되었으며, 1989년에 부발면이 부발읍으로 승격되었다.1996년 행정구역개편으로 이천군이 이천시로 승격했다. 이때 이천읍은 폐지되고 창전동·관고동·중리동 등 3개 행정동으로 분할되어 11개 법정동을 관할하게 되었다. 같은 해 대월면 초지출장소를 폐지하고 대월면의 4개리인 단월리, 장록리, 대포리, 고담리를 중리동으로 편입했다. 2003년 창전동에서 안흥동, 갈산동, 증포동, 송정동이 분리되어 증포동으로 분동했다. (→ 음죽현).
자연환경
시의 북부와 서부는 광주산맥, 남부는 차령산맥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동부는 비교적 낮고 평탄한 지형을 이루고 있다. 북쪽의 천덕봉(630m)을 중심으로 정개산(461m)·양각산(386m)·건지산(411m)·봉의산(325m)·마옥산(445m) 등이 서쪽 경계를 따라 솟아 있으며, 동남부에는 백족산(402m)·임오산(341m)·팔성산(378m) 등이 충청북도와 경계를 이룬다.
남한강의 지류인 복하천이 시의 중앙부를 북동쪽으로 흐르며, 신둔천·표교천·원두천 등이 복하천에 흘러든다. 시의 남동쪽을 북동류하는 청미천과 동부를 북류하는 양화천이 남한강에 흘러든다. 평야는 주로 동부에 분포하며, 특히 복하천과 신둔천의 합류지점, 복하천과 표교천·원두천 등이 합류하는 지점에 넓은 평야가 펼쳐져 있다.
기후는 중부 내륙에 자리잡고 있어 기온의 연교차가 크다. 연평균기온 11.1℃ 내외, 1월평균기온 -5.1℃ 내외, 8월평균기온 25.3℃ 내외이다. 연평균강수량은 1,340.5㎜ 정도이며, 여름철인 6~8월에 전체 강수량의 60%인 798.2㎜ 정도가 내린다. 주요수종은 소나무·떡갈나무·진달래나무 등이다.
인구와 취락
수도권 공장의 지방분산정책에 따라 1980년대초부터 많은 제조업체들이 입주하기 시작한 인구유입지역이다.
1980년대 이후의 인구를 보면 1980년 11만 168명, 1985년 12만 4,872명, 1990년 14만 8,600명으로 꾸준히 증가하여 1980~90년의 10년 동안 35%의 인구증가율을 보였다. 그러나 이 기간 동안 공장이전으로 공업이 발달한 부발읍은 121%의 인구증가를 보인 반면에 대부분의 면지역은 오히려 인구가 감소했다. 특히 율면은 약 35%의 인구감소를 보였다. 가구수는 같은 기간에 2만 2,676가구에서 3만 6,059가구로 59%가 증가했다.
1990년대 들어서는 인구증가율이 둔화되어 시로 승격한 1996년의 시인구는 15만 5,622명으로 1990~96년 동안 불과 4.7%의 인구증가율을 보였다. 2020년 인구는 21만 9,525명으로 1996년 대비 24.8%가 증가했고 가구수는 9만 7,771가구였다. 전체인구의 60.5%가 읍·면 지역에 거주하고, 나머지 39.5%의 인구가 이천읍이었던 동지역에 거주한다. 2만 명 이상의 인구가 거주하는 지역은 부발읍(3만 6,430명)·증포동(5만 7,554명)·창전동(1만 5,972명) 등이며, 율면(2,549명)에는 인구가 적게 분포한다. 2024년 기준 인구는 221,693명이며, 이중 내국인 214,237명 외국인 8,214명이다. 가구수는 102,517가구이다.
신둔면 수광리·수하리·남정리와 사음동에는 도요지를 중심으로 형성된 도예촌이 있다.
산업과 교통
농업이 중심 산업이나 최근 제조업의 비중이 높아지고 있다. 총 경지면적 173.49㎢ 가운데 논 94.39㎢, 밭 79.11㎢이며, 논·밭의 면적은 경기도 내 시·군 가운데 화성시·평택시·파주시 다음으로 넓다(2014). 경지율은 38%이다. 쌀·고추 등 각종 농산물과 산수유·인삼·잎담배·참깨·땅콩 등 특용작물의 생산이 많다. 이천쌀은 경기미를 대표하는 쌀로 유명하다. 사과는 장호원읍·설성면이 주산지이고, 백사면은 산수유의 전국적인 산지이다.
젖소·돼지·사슴·오리·개 등을 사육하며, 양봉도 이루어진다. 임야는 전체면적의 40%를 차지하고, 밤·호두·잣·대추·도토리·은행·표고버섯 등이 생산된다. 1980년 80여 개소에 불과하던 제조업체는 2019년 1,956개소로 늘어났고, 종업원도 4만 2,934명에 이르는데, 부발읍과 마장면, 대월면에 주로 분포한다. 기계공업·섬유공업·화학공업·식품공업·도자기공업이 발달했으며 SK하이닉스·OB맥주·한국야쿠르트 등이 규모가 큰 공장이다.
그러나 시 전체가 수도권 상수원의 수질 보전을 위한 자연보존권역에 들어 있어 제조업체의 입주에 제약이 많다. 신둔면 수광리·수하리·남정리·소정리와 사음동 일대를 중심으로 하는 도자기공업이 관광산업으로도 큰 몫을 하고 있다. 정기시장으로 이천장과 장호원장이 있으며, 특히 이천장은 농산물 집산시장일 뿐 아니라 경기도 동남부와 충청북도 일부까지 상권이 형성되었던 소시장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영동고속도로가 중북부지역을 동서로, 중부고속도로가 서부지역을 남북으로 관통하고 있고, 이 두 고속도로는 호법면의 호법분기점을 통해서 서로 연결된다. 서울-충주를 잇는 국도가 북쪽으로는 넋고개를 넘어 광주시 방면, 남쪽으로는 장호원을 지나 충청북도의 충주방면으로 뻗어 있고, 안성-제천을 잇는 국도와 용인-여주를 잇는 국도가 시의 남부와 북부에서 동서 방향으로 통과한다.
특히 용인-여주를 잇는 국도는 중부고속도로·영동고속도로와 함께 이 시의 제조업체 입지에 큰 몫을 담당하고 있다. 그밖에 장호원읍 동쪽으로 여주-음성을 잇는 국도가 지난다. 서울과는 2시간 이내의 거리이며 시외 버스가 수시로 운행된다. 도로총길이 426.3km, 도로포장률 77.8%이다. 전체도로 중 국도는 65.2km, 지방도는 144.11km, 시군도는 183.7km, 고속도로는 46.4km이다(2019).
유물·유적·관광
시내에는 국가지정문화재(보물 3, 천연기념물 2, 중요민속자료 1, 사적 1), 지방지정문화재(유형문화재 3, 기념물 2, 민속자료 1, 무형문화재 4), 문화재자료 3점, 등록문화재 4점이 있다. 선사 유물인 고인돌이 신둔면 지석리·소정리·장동리에서 발견되었다.
불교문화재로는 관고동의 영월암마애여래입상(映月庵磨崖如來立像, 보물)과 마장면의 태평흥국명마애보살좌상(太平興國銘磨崖菩薩坐像, 보물)이 있으며, 그밖에 이천중리동3층석탑(利川中里洞三層石塔,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06호), 이천어석리석불입상(利川於石里石佛立像,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07호), 이천관고동5층석탑 및 3층석탑(利川官庫洞五層石塔─三層石塔) 등이 있다.
사찰로는 원적봉의 영원사(靈源寺), 설봉산의 영월암(映月庵)·은성사(隱聖寺) 등이 있다. 유교문화재로는 이천향교(利川鄕校)·음죽향교지(陰竹鄕校址)·설봉서원지(雪峰書院址)·현암서원지(玄巖書院址)와 충성공사묘(忠成公祠廟)·효산사(孝山祠)·충장사 등이 있다. 그밖에 백사면 신대리에 이천의 백송(천연기념물), 율면 산성리에 어재연장군생가(魚在淵將軍生家, 중요민속자료) 등이 있다.
주요 관광지로는 연중 크고 작은 축제가 열리는 설봉공원, 국내 최대의 도자예술촌인 이천도예촌과 예스파크, 이천온천과 낚시터로 널리 알려진 용풍·성호·용면 저수지가 있다. 이천도예촌은 신둔면을 비롯한 시의 북서부, 서울-충주를 잇는 국도 주변에 40여 개의 도요지가 밀집되어 형성된 전통적인 도예촌이며, 예스파크는 2017년 신둔면에 12만 3천평 규모로 새로 형성된 도자예술촌으로, 400여 도예공방이 자리잡고 있다. 이천온천은 부인병·피부병·신경통 등에 효과가 있다고 알려져 있다.
유엔교육과학문화기구(유네스코)는 2010년 많은 도자 예술인 및 관련 산업인구가 밀집되어 있고 관련 인프라가 잘 구축되어 있는 도자예술 전문 도시로, 세계도자 비엔날레 및 도자기 축제 등 내실 있는 축제운영과 전담조직이 잘 갖추어져 있는 점 등을 인정하여 한국에서는 처음으로 이천시를 공예 및 민속예술분야 유네스코 창의도시로 지정했다.
교육·문화·의료·복지
전통 교육기관으로 이천향교·음죽향교·설봉서원·현암서원·안흥정사 등이 있었다. 최초의 근대 교육기관은 1907년 개교한 양정여학교와 특신학교이다. 양정여학교는 미국인 선교사 클라크 여사가 설립한 것으로 지금의 이천양정여자중학교와 양정여자종합고등학교로 발전했으며, 특신학교는 1911년 이천초등학교로 바뀌었다.
중등학교는 1950년대에 이천·장호원·경남·배영 중학교와 장호원·경남종합·이천 고등학교가 개교했다. 2020년 기준 유치원 51개소, 초등학교 31개소, 중학교 15개소, 고등학교 12개교, 전문대학 2개교, 대학원 2개교가 있다.
이천문화원은 1963년 개원한 이래 각종 문화예술행사를 주관·후원하여 향토문화발전에 공헌하고 있으며, 1990년 한국 최초의 도자기전문미술관인 해강도자미술관이 개관했다. 매년 10월초에 열리는 설봉문화제는 도예문화의 보급과 발전 및 관광객 유치에 이바지하고 있다. 민속놀이는 쩍쩍이 가락으로 유명한 이천농악과 이천거북놀이가 있다. 거북놀이는 한가윗날 밤에 행하는 놀이로 한 해의 풍요한 수확에 감사하고 태평함을 기원한다.
설화로는 <효양산금송아지전설>·<심인연전설>·<사슴의 보은설화>·<두무고개전설>·<남이장군과 백족산지네퇴치전설> 등이 전하며, 구전되는 민요로는 이곳의 특유한 논매기소리인 <대허리>를 비롯해 다수의 <논매기 소리>와 <모내기 소리>가 있다.
2019년 기준 의료기관으로는 종합병원 1개소, 병원 4개소, 의원 1016개소, 특수병원 2개소, 요양병원 6개소, 치과병원 56개소, 한의원 44개소, 부속의원 2개소, 보건소 관련 의료기관 23개소가 있다. 사회복지시설로는 노인여가복지시설 410개소, 노인주거복지시설 3개소, 노인의료복지시설 22개소, 재가노인복지시설 21개소, 장애인복지생활시설 11개소, 어린이집 166개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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