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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100, 모로코 사브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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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 1165/66, 시칠리아 또는 사브타 |
국적 | 아랍 |
요약
아랍의 지리학자.
본명은 Abū ⁽Abd Allāh Muḥammad ibn Muḥāmmad ibn ⁽Abd Allāh ibn Idrīs Al-Ḥammūdī al-Ḥasanī al-Idrīsī.
시칠리아의 노르만 왕 루지에로 2세의 조언자이기도 했다.
그는 중세 지리학의 위대한 저서인 〈세계의 여러 지역들을 횡단하려는 사람의 즐거운 여행 Kitāb nuzhat al-mushtāq fῑ ikhtirāq al-āfāq〉을 저술했다.
이드리시는 왕자·칼리프·성자 등으로부터 예언자 마호메트에 이르는 오랜 혈통의 가문에서 태어났다. 스페인과 북아프리카의 칼리프(1016~58)로서 짧은 기간 동안 통치했던 그의 직계 조상 함무디드 가문은 마호메트의 맏손자인 하산 이븐 알리에서 시작된 왕조인 모로코의 이드리시드 가문(789~985)의 한 분파였다(함무드 왕조, 이드리스 왕조).
이드리시의 생애에 대해서는 알려진 것이 별로 없다.
그는 함무디드 가문의 선조들이 그들의 마지막 터전이었던 스페인 말라가(家)가 몰락한 후 도망쳐나와 정착한 사브타(지금의 세우타로 모로코에 있는 스페인 고립 영토)에서 태어났다. 어린시절의 대부분을 북아프리카와 스페인을 여행하며 보냈는데, 이러한 여행을 통해 자세하고 정확한 지리 지식을 얻었던 것 같다. 코르도바에서 여러 해 동안 공부했고, 모로코의 마라케시와 알제리의 콩스탕틴에서 살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포르투갈, 북부 스페인, 프랑스의 대서양 연안, 영국 남부를 포함하는 서유럽의 많은 지역들을 여행했고, 불과 16세의 어린 나이에 소아시아를 방문했다.
1145년경 이드리시는 시칠리아의 루지에로 2세 밑에서 일하게 되었는데, 이것은 그의 성공의 디딤돌이 되었다.
그후 그의 모든 위대한 업적들은 그가 여생 내내 살고 일했던, 팔레르모에 있는 노르만 왕궁과 밀접한 관계가 있었다. 이드리시가 그리스도교도인 왕 밑에서 일하면서 그 왕을 지나치게 칭송했기 때문에, 다른 이슬람교도들은 그를 변절자로 생각했다고 일부 서양학자들은 주장해왔다. 이때문에 이슬람교의 문헌 속에는 이드리시의 일대기에 대한 자료가 거의 없다.
이드리시가 시칠리아에 가게 된 이유는 확실하지 않다.
일설에 의하면 시칠리아에 정착한 함무디드 가문의 권유로 시칠리아에 온 것이라고 한다. 스페인계 아랍인 여행자 이븐 주바이르(1145~1217)에 따르면, 시칠리아에 오도록 권유한 그의 친척은 그곳 이슬람교도들 사이에서 큰 권력과 신망을 얻고 있던 사람이었다고 한다. 14세기 아랍 학자 앗 사파디에 따르면, 루지에로 2세는 세계지도를 만들기 위해 그를 초청하면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당신은 칼리프 가문의 일원이다. 그렇기 때문에 당신이 이슬람교 속에 있게 되면 그들의 왕이 당신을 죽일 것이다.
그러나 당신이 나와 함께 있으면 신변에 대한 안전은 보장한다."
이드리시는 머무르기로 했고, 루지에로 왕은 그에게 연금을 주었다. 그는 시칠리아에 있는 동안 3개의 중요한 지리학적 작품들을 완성시켰다. 그중 하나가 세계지도가 그려진 '은제평면천구도'(銀製平面天球圖)이다. 2번째는 세계지도로, 이 지도에는 적도 북쪽의 지역이 동일한 너비를 갖는 7개의 기후대(氣候帶)로 나누어지고, 각 기후대는 다시 10개의 경선(經線)으로 나누어진 뒤 70개의 구역들로 표시되어 있다.
3번째는 천구도에 대한 해설서로 사용하기 위해 만들어진 지리학 교본이다. 이것은 〈세계의 여러 지역들을 횡단하려는 사람의 즐거운 여행〉으로 알려진 기재지리학(記載地理學)에 관한 위대한 저서이며, 이것은 〈루지에로 왕의 책 Kitā Rujār(또는 al-Kitāb ar-Rujārῑ)〉이라는 이름으로도 알려져 있다.
그는 아랍·그리스의 지리학 저서들로부터 얻은 기존의 자료들에 자신의 관찰과 목격자의 보고서를 통해 얻은 정보들을 추가해 이 책을 편찬했다. 왕과 그의 아랍인 지리학자 이드리시는 그림에 소질있는 사람들을 포함한 많은 사람들을 선발한 뒤 여러 나라에 파견하여 그들이 본 것을 관찰하고 기록하도록 했다. 이드리시는 루지에로 왕이 죽기 직전인 1154년 1월에 그 책을 완성했다.
은제평면천구도는 유실되었지만, 지도와 교본은 보존되었다.
독일의 학자 콘라트 밀러는 그의 저서 〈아랍 지도 1926~31 Mappe Arabicae 1926~1931〉에 그 지도들을 수록하여 출판했고, 그후 이라크 학술원(바그다드, 1951)은 밀러의 저서에 근거하여 개정된 세계지도를 출판했다. 국제 전문가 그룹과 협력하여 이탈리아 학자 위원회에 의해 시작된 이드리시의 〈세계의 여러 지역들을 횡단하려는 사람의 즐거운 여행〉에 대한 비평연구판의 첫 단편들이 1970년대초에 나타나기 시작했다.
〈세계의 여러 지역들을 횡단하려는 사람의 즐거운 여행〉은 기재지리학과 천문지리학(天文地理學)을 결합시키려는 중요한 시도를 보여준다.
그러나 물리학적·수학적 측면에 대한 저자의 미숙성으로 이런 노력은 성공하지 못했다. 11세기의 아랍의 학자 비루니와 같은 당대의 다른 과학자들이 만든 중요한 지리학적 업적들을 이용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그리스·아랍의 문헌들을 무비판적으로 사용한 점을 지적받았다. 그러나 이드리시의 교본은 불후의 지리학적 기념물로서 지중해 분지, 발칸 제국과 같은 지역들에 대한 많은 자료들을 포함하고 있어서 매우 가치 있는 것이다.
여러 중요한 개정판들과 축약판들뿐만 아니라, 1154~66년 통치한 루지에로 왕의 아들이자 후계자인 윌리엄 1세(악인왕)를 위해 씌어진 저서(지금은 유실됨)를 포함한 많은 지리학적 저술들이 이드리시의 것으로 추측된다.
로마에 있는 메디치출판사는 1592년에 〈세계의 여러 지역들을 횡단하려는 사람의 즐거운 여행〉의 축약본을 출판했다. 라틴어 번역판은 〈게오그라피아 누비엔시스 Geographia Nubiensis〉라는 잘못된 제목으로 출판되었다. 그의 저서는 여러 언어로 번역되었으나, 그 저서에 대한 유일한 완역판은 P. A. 조베르가 쓴 〈이드리시의 지리학 Géographie d'Édrisi〉(2권, 1836~40)인데, 이 책은 틀린 내용이 많은 사본을 번역한 것이므로 신뢰할 수 없다.
이드리시는 의학적인 문제들에도 관심을 가졌는데, 12개의 언어로 약제(藥劑)들의 이름을 기록해놓은 〈간단한 약제들에 대한 책 Kitāb al-adwiya al-mufradah〉이라는 저서는 그의 폭넓은 언어학적 능력을 보여준다.
그는 아랍 문학에 조예가 깊었던 것 같으며, 지금까지 전해오는 그의 몇몇 시들은 그가 완숙한 시인이었음을 보여준다. 그의 생애 말년에 대해서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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