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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적 이데올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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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올로기와 종교

이데올로기는 종종 종교와 동일한 범주에 속한다고 이야기된다.

2가지 모두 총체적 체계이며 진리 및 행위 문제와 관련이 있다. 그러나 그보다 중요한 것은 이데올로기와 종교의 차이이다. 종교이론은 신적 질서에 따라 세워지며 이데올로기처럼 현실세계에만 관심을 집중하지 않는다. 종교는 정의로운 사회의 이상향을 제시할 수 있지만 정치적 실천 프로그램을 가지기 어려우며, 믿음·예배를 강조하고 영성(靈性)에 호소하며 인간정신의 구원·정화를 목적으로 한다. 이데올로기는 집단·민족·계급을 향해 말하며, 계시에 의지하는 종교에 반해 판단을 그르치는 일이 있더라도 이성에만 의지한다고 믿는다.

근대 세계 최초의 이데올로기적 요소는 몇몇 종교운동에서 찾아볼 수 있다. 지롤라모 사보나롤라는 최초의 '이데올로기적'인 그리스도교도였으며, 프로테스탄트적 유토피아를 건설하려 했다. 그는 그리스도교 공동체의 이상향을 지금 우리가 실현해야 할 모델로 여겼고, 실현방법으로서 하층민에 호소해 국가를 지배하고 경제와 시민의 사생활을 감독하기 위해 국가권력을 이용하자고 주장했다. 그는 그리스도교에 이데올로기적 차원을 부여한 시도 때문에 수많은 추종자를 얻었으며, 칼뱅의 제네바 및 신대륙의 청교도 공동체에 영감을 주었다.

초기 정치철학에서 이데올로기

이탈리아의 정치철학자 니콜로 마키아벨리는 사보나롤라와 함께 근대 이데올로그의 선구자였다.

마키아벨리의 꿈은 근대 이탈리아에서 고대 로마와 같은 찬란한 공화제가 부활하는 것을 보는 것이었는데, 이는 혁명을 통해서만 달성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또 마키아벨리는 최초로 이데올로기를 테러와 결합했으나 이데올로그 역할을 하기에는 지나치게 정치학자의 성격이 강했다. 17세기 영국은 이데올로기 역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당시 영국에서 혁명세력의 신속한 움직임은 급진적 행동을 설명하고 정당화할 수 있는 이론을 요구했으며, 따라서 정치이론은 정치 자체와 마찬가지로 이데올로기의 성격을 띠게 되었다.

존 로크의 〈통치론 2편 Two Treatises of Government〉(1690)은 절대주의에 대항하는 인간권리를 정당화하기 위해 쓴 대표적 문헌이다. 17세기에 추상적 이론이 성장하고 이론체계의 확립과 정치를 원리에 따라 논의하는 경향이 증가한 것은 이데올로기적 양식의 출현을 두드러지게 보여준다.

헤겔과 마르크스

이데올로기가 헤겔과 마르크스의 철학에서 부여받은 특수한 의미를 주목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여기서 이데올로기란 '허위의식'을 나타내는 비난조의 의미를 지닌다. 헤겔에 따르면 인민은 역사의 도구로서 자신도 알지 못하는 외적인 힘이 자신에게 부여한 역할을 수행하며, 그리하여 역사의 의미는 인민의 배후에 숨어 있다. 현실을 이렇게 해석해서 현실과 타협하려는 헤겔의 시도는 현상유지 이데올로기를 제공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만일 개인이 외적 힘에 의해 자신의 행동을 결정하는 보잘것없는 존재라면 상황을 바꾸거나 개선하려는 노력은 거의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바로 이것이 헤겔에 대한 카를 마르크스의 비판이며, 〈독일 이데올로기 Die Deutsche Ideologie〉와 그밖의 초기저작에서 전개한 주장이다. 이런 의미의 이데올로기는 자기 자신을 속이는 일련의 믿음을 뜻한다. 마르크스에 따르면 진리와 반대되는 것을 생각하도록 이끄는 이론이 이데올로기이자 허위의식이다. 그러나 마르크스는 이 용어를 일관되게 비난조로만 사용한 것이 아니라 참된 이데올로기의 가능성을 내포하는 것으로도 사용했다.

종종 이데올로기의 경멸적 의미를 무시했던 20세기 마르크스주의자는 마르크스주의 자체가 이데올로기로 일컬어지는 데 만족했다. 몇몇 공산주의 나라에서 당 철학자는 보통 당 이데올로그라 불린다. 마르크스주의는 이데올로기의 훌륭한 전형이다.

지식사회학

독일의 사회학자 막스 베버와 카를 만하임을 필두로 하는 지식사회학자의 저작 속에서도 이데올로기는 허위의식이라는 비난적 의미로 사용된다.

이들의 접근방법의 특징은 이데올로기를 특정 이해관계의 결과나 표현으로 여기고 이런 이데올로기를 진짜 성격을 감춘 어떤 것으로 다룬다는 점이다. 그래서 지식사회학자들은 만하임이 말한 '이데올로기를 산출하는 생활조건'의 베일을 벗기는 일을 사회학의 임무라고 생각한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예컨대 애덤 스미스의 경제학은 독립된 지식 구성물로 인정할 수 없으며 그 자체의 진리 및 일관성에 따라 평가할 수 없고, 오히려 자본주의 이데올로기로써 부르주아의 이해관계를 표현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

최근의 지식사회학은 이데올로기가 계급이익의 무의식적 합리화임을 주장하기 위해 프로이트 심리학을 지지해왔다.

이때문에 지식사회학자들은 지식사회학 이론에서 비과학적이라고 노골적으로 비난받는 요소를 제거할 수 있었다. 왜냐하면 프로이트 심리학을 도입하면 지식사회학자들은 애덤 스미스를 부르주아 특질을 가진 고의적 투사로 더이상 낙인찍지 않고 그저 자본주의의 무의식적 대변인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와 동시에 지식사회학자들은 프로이트 심리학이 애덤 스미스의 경제학 못지 않게 이데올로기의 한 형태임을 주장해왔다.

본질적으로 프로이트의 정신분석방법은 반항적 성격의 소유자를 부르주아 사회의 요구와 속박에 적응시키는 기술이기 때문이다. 지식사회학에 대한 비판자들은 모든 철학이 이데올로기라면 지식사회학도 이데올로기임에 틀림없다고 주장한다. 한편 비록 베버와 만하임이 지식사회학자들의 견해에 강한 암시를 주기는 했지만, 두 사람 중 누구도 일관된 이데올로기론을 내놓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은 위의 비판에서 벗어날 수도 있다.

베버와 만하임은 이데올로기라는 낱말을 서로 다르게 사용했다. 베버는 경제구조가 이념체계의 산물이라는 점(예를 들면 프로테스탄트주의가 자본주의를 낳았지 그 반대가 아니라는 것)을 논증함으로써 이념체계가 경제구조의 산물이라는 마르크스의 이론을 뒤집는 데 관심을 가졌다. 반면 만하임은 이데올로기가 사회구조의 산물이라는 마르크스의 제안을 좀더 정교한 형태로 되살리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이데올로기라는 낱말은 다소 보수적인 관념체계에서, 유토피아라는 낱말은 좀더 혁명적인 또는 천년왕국적 성격을 가진 관념체계에서 사용해야 한다는 제안 때문에 만하임의 이러한 노력은 빛을 잃은 것 같다. 그는 〈이데올로기와 유토피아 Ideologie und Utopie〉에서조차 이러한 약정적 정의에 충실하지 못했다. 한편 모든 관념체계가 계급 기반과 계급 편견을 가진다는 원리가 함축하고 있는 딜레마에서 빠져나오는 길로서 만하임이 설정한 계급 아닌 계급인 지식인, 즉 '사회적 중립을 지키는 인텔리겐치아'의 가능성은 계급 이해나 제휴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생각해볼 만한 문제이다.

그러나 뛰어난 정신을 지닌 소수 엘리트를 이상으로 제시한 것은 만하임이 마르크스보다 플라톤에 더 가깝다는 인상을 주고 지식사회학이 과학이라는 주장에 새로운 의문을 던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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